한국영화,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양 경 미

영화는 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의 부분을 담고 있으며 그에 대해 정치적 발언을 한다. 반면, 영화는 현실을 은폐하고 호도함으로써 현실에 안주하게끔 한다. 따라서 개별 영화의 성격과 무관하게 모든 영화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지닌 대중적 영향력이다. 대중 매체로서 영화는 막대한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동안 끊임없이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아왔고 자신의 목적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영화를 검열했다.

검열은 인간의 생각과 표현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재하고 억압한다. 그러므로 검열은 특정 사회나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관습과 정관에 따라 어떠한 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또한 지배 권력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는 통치의 직접적인 기제로도 사용된다. 검열제도는 국가 권력의 행정적 통제로서 개인과 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는 의지가 구체화된 제도이다. 그리고 지배 권력이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통제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로 나타난 것이 영화검열제도이다.

한국의 영화검열제도는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1920년대 조선영화가 대중적 인기를 얻자, 일제는 「흥행 및 흥행장 취체규칙」(1922)과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1926)을 통해 사전검열 형식으로 영화에 대한 사상적 통제를 가했다. 1940년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영화령」을 제정했고 해방 이후의 영화 업무는 조선총독부에서 미군정으로 이관되면서 필름의 사전검열제를 명문화했다. 1962년 「영화법」이 제정된 군사정권에서는 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정권의 정책을 전파하고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영화검열제도를 사용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의 검열은 정부가 문제 삼을 만한 작품을 없애기 위한 제도로 사용하여, 공권력과 거대권력을 통해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제한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정부기관에 의한 필름 사전검열제는 비로소,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영화검열제도는 영화등급제도로 전환되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검열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형태로는 존재한다. 각종 집단의 힘에 의한 검열, 시장 논리에 따른 경제적 검열 그리고 자기 검열 등이 그렇다. 한국의 영화검열제도는 완화되었지만 영화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법과 제도를 통한 직접적인 방식의 통제가 아닌 우회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검열로 작동한다.

영화계 내부의 갈등, 정치적 외압 그리고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작금의 한국영화계의 현실을 두고 영화인들은 보이지 않는 검열의 시대라고 지적한다. 특히 자본을 이용하여 길들이려는 지배 권력의 경향은 일종의 ‘위장된 검열’로서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옭아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더욱이 지배 권력이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로 인해 한국의 영화산업은 성장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한다.

공교롭게도 2015년 한국영화계 성적은 좋지 않다. 상업영화부터 독립예술영화 그리고 국제영화제까지 그동안 쌓아올렸던 한국영화의 위상이 무너지게 생겼다. 뿐만 아니라, 제작 및 배급, 상영부문의 불균형으로 영화산업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성적은 통계가 작성된 2004년 이래 최저치를 보였다. 한국영화 관객점유율도 41%에 그쳤다. 2011년도를 기준으로 꾸준히 상승세를 타며 관객점유율 50%를 넘겼던 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부진한 성적이다. 상반기 한국 상업영화 중 200만 관객을 넘은 작품은 단 4편뿐이다. <조선명탐정2>은 387만 명, <스물>은 304만 명 그리고 <강남1970>과 <악의 연대기>만이 각각 219만 명을 기록했다. 반면, 외화는 <어벤져스2>가 1,049만 명을 동원하며 천만 관객의 기록을 세웠고, 뒤를 이어 <킹스맨>이 612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그 밖의 2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도 무려 5편에 이른다. <쥬라기 월드>는 450만 명, <매드맥스>는 380만 명, <분노의 질주>는 324만 명, <빅 히어로>는 280만 명, <스파이>가 230만 명 등이 그러하다.

상업영화 성적만 나쁜 것이 아니다. 독립예술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한국영화계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대기업들이 영화제작을 주도하면서 역량 있는 제작자 및 영화감독에게만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성 영화 및 독립예술영화가 제작되는 기회가 점점 줄고 있다. 작가주의를 비롯한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홀대는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3년 연속 실패’라는 결과로 바로 나타났다.

지난 5월부터 메르스(MERS)가 한국을 강타하면서 문화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 당국의 안일한 대처 및 초기 대응 미숙으로 메르스 감염자가 확산되었고 대중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이 여파로 문화예술계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극장도 관객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한국영화 흥행 성적은 더욱 나빠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몇 한국영화는 외화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개봉 시기를 늦추는 사태가 생겼다. 작은 영화들은 메이저 투자배급사에 밀려 개봉자체가 불투명해지는 경우도 발생했다. 심지어 메이저 투자배급사에 밀린 영화가 독립영화상영관에서 상영을 하게 되자, 같은 영화계 식구들끼리 집안싸움을 벌였다. 불똥은 대기업 극장으로 넘어갔고 극장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게다가 독립영화상영관 지원 문제로 독립영화계와 영화진흥위원회 간의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영화계 내부의 마찰은 국내 국제영화제에서도 일어났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자리 잡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곤경에 빠진 것이다. 지난해, <다이빙 벨>상영을 놓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부산시가 갈등을 빚었다. 결국, 영화진흥위원회는 14억 6천만 원의 예산 신청 금액 중 40%가량을 삭감한, 8억 원의 금액을 책정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항의의 뜻으로 제68회 칸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인의 밤’ 행사에 불참했고, 해외 영화인들에게 국내 영화계 갈등 상황을 국제적인 장소에서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다.

영화는 정치 및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제작된다. 기업은 정치적 이해집단으로 지배 권력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상호작용을 한다. 영화기업에서의 정치적 관계성은 CJ E&M과 NEW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CJ E&M은 2012년 <광해>를 배급한 뒤, 2014년 <국제시장>을 제작하고 배급했다. 그리고 영화배급사인 NEW는 2013년 <변호인>을 배급한 뒤, 2015년 <연평해전>의 배급을 맡았다. 그런데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영화를 제작 및 상영해야 하는 기업에게 영화의 정치성이나 검열 등의 논란은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논리에 의해 영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영화산업의 성공적인 발전 배경에는 영화 시장개방(1988년 직배 및 2006년 스크린쿼터제의 축소)에 따른 영화계 자생력과 정부의 지원정책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 한국영화산업의 생태계가 선순환적인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주류 상업영화에서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적하기 위해 자본력을 바탕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며 많은 관객을 동원시켰다. 소규모 독립예술영화에서는 주류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측면을 부각시키며 작가주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여러 국내 국제영화제들은 한국에서 제작되는 다양한 영화들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이러한 결과, 한국영화의 위상은 높아졌고 한국영화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2014년도에는 극장매출액이 역대 최대 액수인 1조 6,641억 원을 기록했고 전체 영화산업 매출액도 2조 276억 원을 기록하며 한국영화산업사상 처음으로 2조 원대를 돌파했다. 인구 1인당 평균 관람횟수도 세계 최고 수준인 4.2회를 기록하며 내수시장에서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50%를 상회했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좁은 내수시장으로 인해 지속적인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졌다. 한해 평균 개봉되는 한국영화는 200여 편이다. 외화는 800편에 이른다. 이미 전국의 스크린 수가 2,281개로 포화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좁은 내수시장에 비해 너무 많은 영화가 제작 및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업이 수익이 된다는 소리에 투자배급사들이 무분별하게 생기면서 함량 미달의 영화들은 끊임없이 개봉되고 있다. 그동안 쌓아왔던 한국영화의 대한 관객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런 사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관객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제작을 주도하는 대기업은 다른 영화들과 경쟁하며 다양한 관객들의 욕구에 맞는 영화를 제작하고 흥행에도 성공해야 한다. 정치 및 사회적인 영향도 받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업, 작가 및 감독, 영화기관은 각자 속한 지배 권력에 의해 정치적 영향을 받거나 시장논리에 따른 경제적 검열과 자기검열을 요구받는다.

현재 한국영화계는 선순환적인 생태계가 위협받으며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영화산업에서 정치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정치를 포함한 현실을 나타내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 있어 지나치게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면 그렇게 해서 시장논리를 우선한다면 이는 영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영화산업은 그동안 크게 발전해왔다. 검열을 폐지했으며 시장논리에 의해 관객들의 수요에 부응해서 영화가 제작 배급되었던 것이다. 현재 침체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앞으로 위기가 예상되는 한국영화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도한 정치성을 배제하는 영화계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