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를 금지하라

장성규

어떤 시대, 어떤 사회이건 간에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 간의 충돌은 항상 있어 왔다. 이 문제는 ‘원론적으로는’ 매우 간단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전자와 후자가 배치되는 것이 아닌 ‘상황’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가 곧 공공의 이익에 합치되는 사회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문화예술이 본질적으로 지배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회구조가 어떤 특성을 지니더라도 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공공의 이익에 완벽히 합치되는 ‘표현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화예술은 ‘공공의 이익’을 추동하는 사회구조 자체에 대한 미적 회의를 가능케 하는 매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부분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특정한 것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점은 보다 주의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예컨대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단 X를 제외하고’와 같은 형식이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론’이다. 이러한 언술은 얼핏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해 저 언술은 바로 ‘X’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X’를 배제하는 것이 국가권력일 때 우리에게 가능한 표현의 자유는 오직 ‘서랍장’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이미 1960년 시인 김수영은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김수영, 「김일성 만세」 전문)

김수영은 살아있을 때 결국 이 시를 발표하지 못했다. 그가 죽은 후 40년이 지난 후에야 이 시는 비로소 활자화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김수영이 실제로 “김일성”을 추종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이쯤 되면 정말 코미디일 것이다!), 그러한 ‘X’를 제외한 “자유”의 허위성을 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그가 결국 ‘서랍장’에 숨겨둔 채 두어야 했던 ‘X’가 여전히 표현의 자유의 ‘외부’로 추방당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런 퍼포먼스가 ‘대를 이어’ 행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정일 만세! 만만세!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1944년에 태어난 작곡가 김정일의 호는 예산이며

가수 김상아의 아버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랑했어요>, <못 잊을 건 정>, <흙에 살리라> 등이 있다!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1908년에 태어난 독립운동가 김정일의 호는 황파이며

평양점원상조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했다!

1935년 평양 형무소에서 순국하셨고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권용만, 「김정일 만세」 전문, 『실천문학』, 2011)

물론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반문할 것이다. 남북이 대치중인 상황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고무 · 찬양’ 하는 표현은 유보되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이는 위에서 든 사례와 정치적으로 정반대에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누군가가 ‘히틀러 만세’, 혹은 ‘이완용 만세’라는 표현을 담은 텍스트를 생산했다고 가정하자. 아마 다른 의미에서의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반문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천황제 파시즘을 겪었으며, 이후에도 유신 체제 등을 통해 유사-파시즘을 체험한 상황에서 ‘히틀러’와 ‘이완용’을 ‘고무 · 찬양’하는 표현은 유보되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당장 누구를 위한 ‘공공의 이익’인가, 그리고 그 ‘기준’은 누구에 의해 설정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반문은 ‘대중’을 텍스트를 판단할 수 없는 수동적이고 무지한 존재로 설정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니까 텍스트를 읽게 되는 대중이란 텍스트를 ‘시민’적 덕성에 입각하여 판단하고 재구성하여 수용할 능력이 없는 ‘백지’와 같은 존재라는 가정이 저 반문에는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김수영과 권용만의 시를 읽고 곧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게 되며, 이는 그 자리에 ‘히틀러’나 ‘이완용’을 넣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87년 이후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고 이를 꾸준히 학습해온, 그리고 문화적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를 부족하게나마 체감하고 있는 대중들이 지닌 지성을 너무 쉽게 폐기하는 엘리티즘적 편견은 아닌가? 결과적으로 이러한 관점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또 다른 ‘X’를 만들어내는 매트릭스로 수렴될 것이다.

나는 ‘X’를 금지하는 행위는 대중을 판단의 주체가 아닌 계몽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예술 텍스트를 둘러싼 뿌리 깊은 엘리티즘적 편견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예술 텍스트는 ‘전문가’들에 의해 그 의미가 온전히 해석될 수 있으며, 그 판단에 따라 대중에게 권장되거나 혹은 격리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는 관념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빈번히 국가권력과 결합하여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텍스트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대중에게 공급되는 텍스트는 엘리티즘과 정치권력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극히 소수의 ‘정전(canon)’으로 한정된다. 이를 통해 대중은 텍스트의 민주적인 향유의 가능성 자체를 애초에 봉쇄당하고 만다. 그리고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주체’로서 호명될 기회 역시 박탈당하고 만다.

물론 대중이 텍스트 향유와 해석의 ‘주체’로 형성되는 과정은 그에 상응하는 미적 고양의 노력을 요구한다. 말이 거창해서 미적 고양이지, 사실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삶과 우리의 공동체에 대한 깊은 성찰을 수행하는 일련의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어린이의 시를 보고 무엇을 할 것인가? ‘동심천사주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어린이의 글이니 폐기 처분해야 하는가? 아니면 입시전쟁에 아이를 등 떠미는 자신과 우리 사회에 대해 성찰할 것인가? ‘X’의 귀환이 어려운 ‘진짜’ 이유이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퍼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이순영, 「학원가기 싫은 날」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