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박물관이라고 하면 우리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들을 모아 놓은 웅장한 건축물이라는 선입관을 갖는데 그렇지 않은 박물관도 있다.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옛 서민들의 삶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곳, 그러나 세상 어떤 보물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박물관이 있다. 인천 동구 송현동에 있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그런 곳이다.

1990년대에 들어 특별한 테마에 집중하는 특수박물관들이 속속 등장했다. 교육박물관, 민속박물관, 무속박물관, 철도박물관, 화폐박물관, 석탄박물관, 축음기박물관 등이 그렇다. 제1종 생활사전문박물관인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도 여기 속한다.


박물관 내부

8·15 광복 후 한국사회는 오로지 경제발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 결과로 경제력 세계 10위권이라는 눈부신 위상에 올라 있다. 중앙난방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아파트 생활, 대리석으로 치장한 거실과 욕실, 승용차, 휴대전화, 그리고 일부러 칼로리가 적은 음식을 찾아먹는 식생활 등. 지금 우리의 삶은 외화(外華)로 빛나고 있지만 불과 오륙십 년 전에는 국민 대부분이 연탄 한 장을 아끼고, 옷 한 벌로 살며, 하루 세 끼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궁핍과 절약의 긴 터널을 힘겹게 걸었다. 아마도 한국만큼 오십 년간의 삶의 수준 편차가 큰 나라도 없을 것이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지금은 찾을 수 없는 1950년대~1960년대 인천의 대표적인 서민촌의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복원해 놓은 곳이다.

취재를 위해 박물관을 찾아간 것은 7월 하순, 수도국산 언덕으로 해풍이 시원하게 불어오던 날이었다. 몇 개의 계단 위에 수천 톤쯤 되는 큰 선박이 앉아있는 형상으로 된 건축물. 입장료 500원을 내고 들어가니 다섯 해 전 개관식 때와는 달리 천장이 높아졌고 사실감(寫實感)이 확연하게 커져 있었다. 전시공간은 큰 선박 같은 박물관 본채의 아랫부분이었다. 지하인데다 냉방기가 작동하는지 서늘했다.

박물관 안의 골목길을 걸으며, 연탄 몇 장이 있는 작은 부엌, 구멍가게, 이발소 등을 보니 분위기가 호젓해서인지 금세 그리움의 감회에 젖어버렸다. 열 살 소년이던 1950년대 중반 수도국산 언덕에 살았던 외숙부 댁에 찾아갔던 기억, 중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초반 그곳에서 작은방을 얻어 자취하던 친구, 그리고 가난한 청년과 결혼하여 단칸 사글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던 누님이 가슴 뭉클하게 그리워졌다. 더구나 조금 전 그분들이 살던 골목으로 차를 몰고 달려 올라왔던 것이다.   

기획전시실에서 한국전쟁 60년 특별전시 <6·25 그날 이후展>도 하고 있었지만 한여름 평일인데도 관객이 많았다. 중·노년 남성들이 대여섯 그룹, 그리고 여성 대여섯 분이 온 그룹 서넛이 있었는데 모두 감회에 젖어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온 아이들과 삼십대의 어머니들, 그리고 방학숙제를 하러 온 초·중학교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침 설명을 시작한 문화유산해설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신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여성 관람객 두 분에게 말을 걸었다. 인천 송월동과 화수동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최성원 씨와 김연옥 씨였다.

“친정엄마가 그리워서 왈칵 눈물이 납니다. 내가 자란 골목과 거의 같고 집도 우리 집하고 비슷해요.”

최성원 씨가 물기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똑같아요. 옛 시절이 고스란히 되살아와요.”

김연옥 씨가 말했다.


장독대, 부모의 영정이 걸린 작은 대청, 새끼줄에 꿴 연탄 한 장, 솜틀집, 대지이발관, 물 초롱, 뽑기과자 등이 추억을 휙휙 불러낸다. 이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식견을 넓혀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움과 감회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두 여성 관람객과 함께 작은 구멍가게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1957년 생, 올해 쉰넷으로 인천여중과 인일여고 동창이었다. 내가 상인천중과 인천고를 나왔다고 하니까 오라버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옛날을 회상했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불쑥 최성원 씨에게 다른 박물관과의 비교소감을 물었다.

“국보나 보물은 없지만 그보다 더 소중해요. 그리고 일반박물관은 지식을 주지만 여기서는 우리들의 생생한 과거를 되살려 주네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도 갖게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아주 필요한 박물관, 참 잘 만든 박물관이라 생각합니다.”

문득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공간의 시학La poetique l’espace』에 있는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공간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퇴색되거나 잊어버린 것을 이어주는 것은 지상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그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방학숙제에 여념이 없는 여학생들도 만났다. 중학생인가 했는데 초등학생들이었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정말 이렇게 살았는지 신기해요. 그분들이 검소하게 살라고 하시는 이유를 알겠어요. 그래야 우리 세대의 미래도 밝을 테니까요.”

송림초등학교 6학년 이소현 양은 똑 부러지게 말했다.

아까 어린이집 아이들과 젊은 어머니들에게 해설을 했던 분도 만났다. 인천문화유산해설사회 소속 박혜정 씨였다.

“저는 인천의 다른 유적지에서도 해설을 합니다. 다른 곳은 관람객이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데 여긴 몇 사람이 끼리끼리 옵니다. 그리고 세대별로 세 가지 관점이 다릅니다. 달동네의 삶을 경험한 사십대 이상은 가슴으로 보고, 경험하지 못한 삼십대는 이해하면서 보고, 이십대 이하는 신기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봅니다.”

그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박물관은 수도국산의 가난했던 골목길을 되살려 놓았지만 다른 도시들과도 다르지 않다. 사십대 이상은 누구든지 이곳에 오면 자기가 살았던 집과 골목길을 떠올리게 된다.


박물관 내부


사람의 심정은 그런 것이다. 곤궁했던 시절이 지나간 직후에는 모두가 머리를 내저으며 그 시절을 잊겠다고 다짐하지만 더 많은 세월이 지나가면 저절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 마련인 것이다. 아이스케키, 기워 신었던 양말, 지우산, 고무신, 책보, 어머니의 칼국수 도마, 판잣집 골목, 그런 것을 다시 보려고 해도 도시마다 빌딩들이 임립해 있으니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 가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경험 없는 삼십대는 오늘 그들이 누리는 부유한 경제수평이 부모 세대의 검소와 절약 위에 꽃핀 결과임을 저절로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이십대 이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예닐곱 해 전 이 박물관 설립이 논의될 때 제법 목소리가 컸던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의 반대 의견이 떠올랐다. 인천에 정말로 필요한 특수박물관들이 많은데 왜 하필 궁핍한 시대를 되살리는 달동네박물관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개관 오 년이 지난 지금 이 박물관은 그들의 우려를 뛰어넘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박물관’으로 분명히 존재 의의가 커져 있었다.

전시실을 나와 위층에 있는 사무실로 가서 이보라 학예연구사를 만나 차를 한 잔 얻어마셨다. 개관 직후보다 내부공간이 바뀌고 리얼리티가 좋아졌다고 하자 지난해 많은 예산을 들여 천장부분을 개선했다고 이 연구사는 말한다.
“우리 박물관은 196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체험 중심의 박물관입니다. 천칠백 점의 생활사 자료가 있고 연면적은 1,950㎡이며 매년 8만 명 정도 입장객이 오십니다. 조부모, 부모, 손자들, 이렇게 삼대가 함께 오시면 참 좋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체험한 것을 생생하게 설명할 수 있으므로 기가 막힌 교훈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사 자신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놀이체험과 생활사체험 한두 시간짜리 수업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박물관 설립주체이자 경영주체인 인천 동구청은 해마다 1억 5,000만 원 정도 예산을 쓰면서 원활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 옛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배수지 시설을 돌아보았다. 수도국산은 원래 이름이 만수산(萬壽山)이다. 소나무가 울창해 송림산으로도 불렸는데, 근대 개항기 인천항에 입항하는 선박들의 급수(給水)와 인구 팽창으로 인한 식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배수장을 만들면서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의 배수지는 덮개가 씌워지고 그 위에 롤러블레이드 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울창한 나무들이 그늘을 내려 산책로로도 훌륭했다. 나는 그곳을 걸으며 옛 시절을 더듬었다.

이미지 제공_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