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와사키시(川崎市)의 외국인 정책, 특히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다문화공생 교육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유학시절이었던 1990년 말로 기억하는데, 한 TV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의 4분의 1이 외국인인 카와사키시가 외국인의 시정참여를 제도화하기 위해 운영하는 외국인시민 대표자회의 관련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실험적인 시 행정이 겪는 난관에 주목해 흥미 위주(?)로 제작된 방송에서는 ‘조선적’과 ‘한국적’의 주민들이 지분문제를 두고 다투다가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주로 보여주었다. 내게는 그 장면이 매우 씁쓸했지만 아직도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어렴풋이 알고 있던 카와사키시가 그와 같은 행정실험의 배경이 된 역사와 전개과정, 그리고 그 의의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특히 재일한국인·조선인 형성사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1970년 이후 카와사키시에서 펼쳐진 다문화공생 교육을 향해 시도한 도전과 실천에 관해 논하고 있다.
이미 백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살고 있는 한국사회의 관점에서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한 다문화공생 교육을 위한 카와사키시 주민들의 실천 중 중요한 성과를 되돌아본다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중 하나는 재일한국인·조선인의 주체화라는 성과다. 즉 과거 피식민자로서의 역사성을 체화하며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자각하는 과정에서 펼쳐진 차이와 투쟁의 성과다. 그 과정에서 재일한국인·조선인은 행정의 시혜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으로서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실천과 투쟁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국민교육으로서의 근대 공교육의 이념을 문제시하고, 나아가 민족적 소수자의 자기동일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공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다문화공생이라는 이념을 학교라는 제도교육의 문제로 국한하고 평생교육의 장에서 실현하기 위한 실천이었다는 것이다. 그 실천은 ‘민족차별과 싸우는 연락협의회’가 모체가 되어 결성된 세이큐샤(靑丘社)다문화공생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등과 같은 단체를 거점으로 전개된 것으로, 근대 ‘국민’의 바깥에 존재했던 민족적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생활에 밀착한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그것을 지탱하는 사상적 토대는 바로 “학습의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이념에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다문화공생’ 교육의 과제를 재일한국인·조선인만의 문제가 아닌 일본사회 전체로 문제시한 성과다. 그것은 조선인 부락이 “조선인 차별체제라는 일본사회를 모체로 생겨나 형성된 것”(P.84~85)이라는 기본적인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인이 단순히 헬퍼(helper)로서가 아니라 공동투쟁의 주체로 참여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도 결혼이주자나 노동이주자의 급증으로 재한외국인을 둘러싸고 있는 다종한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이 시급한 사회적·국가적 과제로 부각되어 있다. 마치 그 과제를 해결할 분명한 대안인양 ‘다문화’라는 용어가 요즘 하나의 트렌드처럼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보여준 일본사회의 다문화라는 이념 실천의 앞선 경험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다문화라는 용어가 혹시 ‘그들’에 대한 ‘동정’의 시선에서 사용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우리’를 일방적인 시혜자로 상정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각각의 ‘문화’를 서로 융화할 수 없는 어떤 고체화된 물질인양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접경지대(Contact Zone)화하는 한국사회의 여러 공간과 심상에 대해서 ‘나’는 눈 감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조각ㅣ2010
#저자 약력
朴光賢 1968년 전남 화순생. 동국대 국문과 교수. 최근 글로 「인양 서사란 무엇인가」 등. pkh@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