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랭커스터 저, 유지훈 역, 『왜 세계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가?』(시공사, 2010.7)
개인이든 국가든 위기상황에서는 이기심이 작동을 하게 된다. 루이 15세(Louis XV, 재위 1710~1774)는 “내가 죽은 뒤에 홍수가 나든 말든”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인간본성과 행동에 관한 어떤 불편한 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사람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려는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것, 이것은 지구촌 시대의 국제정치학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국제원조의 문제를 글로 풀어낸 『왜 세계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가?Foreign Aid』의 저자 캐럴 랭커스터(Carol Lancaster)는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돕는 이유가 원조 공여국(供與國)의 ‘국익’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 부국장과 미 국무부 부차관을 역임한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의 자명한 결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국제원조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힘 있는 나라의 주류적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왜 세계는 가난한 나라를 돕는가?』는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과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같은 정의론과는 발성법도, 접근방법도 다르다. 책을 읽는 동안 악을 근절하는 일의 무게와 선을 증진하는 일의 무게가 불균형을 이룬다고 말한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의 언명을 잠시 잊고자 했던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는 않다.
이 책은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덴마크 등 주요 공여국의 변수를 강조한 이론 모델을 통해 대외원조가 국내외에 미친 영향력의 관계를 집중분석한다. 이들은 어떤 국익을 위해 가난한 나라를 도왔는가. 마셜플랜(Marshall plan)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이 서유럽 16개국에 행한 대외원조계획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원조는 냉전외교의 산물이었다.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0년대 이후에는 수혜국의 개발(빈곤감축)을 위한 목적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국제원조는 공여국의 외교와 개발을 위한 목적이 대세를 이룬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그러나 이 책은 외교든 개발이든 국제원조의 본질이 이른바 ‘발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결정적으로 간과했다. 1949년 1월 20일 트루먼(Harry Truman, 1884~1972) 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난한 나라에 대한 기술적·경제적 원조를 언급하면서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영어 ‘develop’은 본래 타동사가 아니다. 재일미국인 학자 더글러스 러미스(Douglas Lummis)는 “국가 A가 국가 B의 ‘발전’을 정책으로 삼고 있는데, 그 표현이 자동사라니 이것은 큰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쿠바인들은 이 단어를 쓰려면 ‘to underdevelop(저개발하다)’라는 타동사가 하나 있어야 한다고 비꼰 바 있다.
문법상의 문제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빈곤과 기아를 말할 때, 그리고 아시아 각국에 대한 일본정부의 경제지원을 고려할 때 저개발국에 대한 국제원조를 순수한 박애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국제원조에 얽힌 역학관계, 즉 식민지 모국과 구 식민지의 역사적 관계를 제외하고는 기아의 지리학 내지는 빈곤의 근대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류 국제질서를 신봉하는 저자는 역사적 흔적에 대해 비교적 무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는 부국강병과 국익우선주의로 지탱되는 근대 국민국가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잘 입증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이 책을 통해 무엇이 실용이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고려할 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정부 및 지자체가 국익을 위해서라도 대북사업과 외교정책을 옳게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북지원 사업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면서 한반도 평화라는 더 큰 국익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결코 좋은 정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인천시가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하려는 것을 바람직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2009년 11월 우리나라는 원조 선진국 클럽인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스물네 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국제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도덕지수를 나타내는 국제지표인 공적개발원조(ODA) 납부율은 유엔이 권고한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0.7%는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3%에도 못 미치는 0.05%에 불과하다. 이 책이 전언하듯 국익우선주의에 의한 국제원조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른바 ‘자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공적개발원조의 무상원조 비율을 더 높이고, 그 가운데서도 NGO를 통한 지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며, 결국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위한 길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책과 함께 한비야『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장 지글러(Jean Ziegler)『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La faim dans le monde expliquee a mon fills』, 피터 싱어(Peter Singer)『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The life you can save』를 ‘교차독서’ 하지 않고서는 숫자의 장막 너머에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컴패션(compassion)’의 문화사적 의미를 읽어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들을 돕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의무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나는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라는 한비야의 육성(肉聲)이 정책의 언어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태어났으므로!
ⓒ시공사ㅣ2010
#저자 약력
高永直 1968년 전북 군산생. 문학평론가,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최근 저서로 『희망의 예술』(공저), 『천상병 평론』(편저) 등. gohyj@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