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신작 『강남몽』은 그 목적이 아주 뚜렷한 작품이다. 오래전부터 작가는 ‘강남형성사’에 대해 한번 써보고 싶다는 포부를 여러 차례 밝혔고 그 바람이 바로 이 한 권의 책으로 귀결된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질곡을 노골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현대정치사와도 긴밀하게 얽혀있는 이 녹록지 않은 주제를 풀어가기 위해 작가는 일견 가장 적절해 보이는 대하소설 형식 대신 꼭두각시놀음이라는 의외의 방식을 선택한다. 강남형성사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룸살롱 마담, 전직 중앙정보부 요원인 건설회사 사장, 부동산업자, 깡패 등 『강남몽』에 등장하는 극중 인물들은 마치 전형화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꼭두각시처럼 특정시대, 특정계급의 일반화된 운명을 살아낸다. 그러면서 서울 변두리에 불과했던 강남이 어떻게 환락과 투기의 땅으로 변모해 가는지, 강남불패신화의 성역은 과연 누구의 힘으로 창조된 것인지, 그 일련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증언한다. 작가가 내러티브의 시작과 끝을 백화점 붕괴사고로 정한 것이나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강남개발의 주변인인 백화점 점원 임정아에 관한 이야기를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설정으로 보인다. 실제로 1995년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는 여러 면에서 한 시대가 끝나버렸음을 난폭하게 시사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소비와 자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백화점이 무너지고 그 안에서조차 철저한 우연에 의해 생과 사가 갈리고 말았던 이 비극적 실제사건은 현실의 비현실화, 꿈의 덧없음을 효과적으로 운위하는 강력한 메타포로 여겨졌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미군정과 군사독재시절을 지나 문민정부에 이르는 지난한 현대사적 시간을 가로지르며 강남형성사를 되짚어보는 『강남몽』의 작업은 분명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 난 뒤 “왜 그 작업이 꼭 소설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적절한 답을 찾기 힘들다. 그것은 아마도 이 소설이 애초에 인간을 사건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적 존재로서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와 가상이 뒤섞여 있는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상당수는 실존인물을 노골적으로 지시하거나 혹은 아예 실명 그대로 등장할 만큼 강한 현실성을 표방하지만 독자는 그들이 가진 욕망이나 의지, 갈등, 탐욕 등과 같은 내적 에너지를 거의 읽어낼 수 없다. 그들은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뼈대와 껍데기만 있는 인형처럼 느껴진다. 이는 과연 애초에 의도된-꼭두각시극으로서의-설정일까. “인형 같은 캐릭터들이 욕망과 운명의 그물망 속에 얽혀 들어가고 그러면서 모르는 사이에 역사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밝힌 작가의 말에 나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생명력 없이 수동적이기만 한 인물들은 빽빽하게 나열된 분절적 사건들 속에 무력하게 매몰될 따름이다.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작업을 중지해버린 이 소설이 역사교과서나 경제면 특집기사처럼 읽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강남신화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빠른 속도감으로 풀어낸 『강남몽』이 역설적이게도 기이할 정도로 느리게 읽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 연유한다.

물론 경제사나 미시사 같은 장르가 모두 잘 읽히지 않는 책, 소화하기 힘든 책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례로 최근 출간된 경제신간 중 강남부동산 문제를 다룬 『하우스 푸어(House Poor』의 경우 내용의 상당부분이 각종 통계자료 등의 건조한 팩트(fact)로 채워져 있지만 독자들에게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며 베스트셀러로 선전하고 있다. 『강남몽』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은 작품의 소재, 장르, 문체, 형식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남형성사를 직시하는 작가의 관점 자체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과 윤리가 배제된, 이미 일어난 사건으로서만 강남개발사를 다루는 것은 실록이 할 일이지 소설 속에서 이루어질 작업은 아닌 것이다. 주제의 성격에 맞게 좀 더 치열하게 파고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득 이 책의 제목인 『강남몽』에서 말하는 꿈(夢)은 과연 어떤 꿈을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할 때의 그 꿈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낱 일장춘몽”이라는 의미의 꿈을 말하는 것일까.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덧없는 가상현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은 여기에서의 꿈이 후자에 속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시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서른세 평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평균 도시근로자의 임금을 사십 년 가까이 저축해야 한다는 현실의 냉혹한 통계를 마주하는 순간, 작가의 메시지는 이내 설득력을 잃는다. 강남개발 시절 부동산 투기로 한 몫 잡아 여전히 부유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부동산 부자들과, 그에 반해 달랑 청약저축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대다수 일반서민들이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강남몽이 진짜가 아니라 덧없는 가상현실에 불과하다고 간주할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창착과비평ㅣ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