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덩리쥔(鄧麗君, 1953~1995)을 처음 접했던 1979년 그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경험은 서구의 근대성과 편리의 상징인 새 차와 연결된다. 삼촌은 흔히 타이완 남성들의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삼 년의 군복무를 막 마친 상태였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전적으로 도움을 받는 외아들이었고, 새 차를 사서 나와 함께 첫 드라이브를 나갔다. 나는 주변 혹은 그의 선글라스에 비치는 농장과 드문드문 들어서있는 공장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삼촌은 덩리쥔의 <작은 마을 이야기(小城故事)> 음반을 틀었다. 달리는 동안 풍경은 빠르게 바뀌었지만 덩리쥔의 노래들은 그대로 맴돌고 있었다. <작은 마을 이야기>의 가사는 이러했다.
 


　　　　　작은 마을에는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죠.
　　　　　작은 마을을 가면 많은 것을 얻게 될 거에요.
　　　　　그림같이 보이고
　　　　　노래처럼 들리는…… 
 


차가 타이페이(臺北)에 다다랐을 때, 나는 물질적 측면에서의 삼촌의 상승과 우리 앞에 서 있는 고층빌딩 간의 유사성을 보았다. 수십 년 만에 타이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잔해에서 벗어나 경제강국으로 일어섰던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일본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경제적으로 부상함과 동시에 덩리쥔 또한 타이완, 일본, 홍콩, 동남아시아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 후 덩리쥔은 중화문화권과 화교사회에서 ‘중국적임(Chineseness)’의 상징이 되었다. “중국인이 있는 곳에 언제나 텡리췬(Teng Li-Chun)1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서거한 지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에 대한 여러 일화를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중국인들을 보면, 서양인들은 덩리쥔을 모르고는 중국문화를 논하지 말라고 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심지어 중국 경제개혁 기간에는 “낮에는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국가의 횃불이라면, 밤에는 또 다른 덩(鄧), 덩리쥔이 지배한다”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2


덩리쥔


그녀는 아시아의 사회·정치적 변화궤도와 함께 부상했다. 특히 타이완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후 중국에서 각광을 받았던 1980년대에는 유행이 조금 지난 가수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니까 중국의 개혁이 시작되기 십 년 전, 그녀는 이미 타이완에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1968년 타이완의 한 인기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이후로 음반계약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1973년은 그녀가 타이완, 홍콩, 동남아시아 등의 화교사회에서와는 달리 중국 본토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는데, 이때 그녀는 일본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 이르러 그녀의 유명세는 빠르게 성장해나갔고, 일본레코드대상(日本レコ-ド大賞)에서는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아시아의 스타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한 해 동안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가수들이 출연하는 NHK의 <홍백가합전(紅白歌合?)> 출연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그녀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서(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 등을 비롯한 많은 일본어 노래를 불렀으며, 이후 거의 모든 곡을 베이징(北京)어로 다시 부르기도 했다.

사실 일본에서의 성공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원래의 스타일과는 달리 섹스심벌로 그려지기도 했으며,3 그러한 시행착오 끝에 덩리쥔의 기획사는 ‘진정성 있으며, 단순하고 우아한’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일본대중의 마음을 확실히, 그러나 서서히 사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홍백가합전>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노력이 드디어 열매를 맺었다고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다.4 이렇게 일본에서 스무 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일본어로 노래를 하고, 어려운 발라드 곡들을 소화해내면서 그녀는 타이완에서도 중국계 가수로는 최초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이후 한 TV인터뷰에서 그녀는 일본에서의 활동이 창법을 향상시키고 스스로를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덩샤오핑


한편 범중화권의 사람들은 타이완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단절된 지 약 삼십 년이 지나서야 당대의 대중문화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8년 12월 18일, 중국공산당은 전국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덩샤오핑은 당의 권력을 장악하여 새로운 중국의 기반을 닦았는데, 문화혁명의 공포가 생생히 남아있던 당시 중국에서도 덩리쥔의 인기는 빠르게 치솟고 있었다. 그녀의 노래는 해적판으로 대량 유통되었으며, 낮에는 또 다른 ‘덩’이 국가를 지배하는 한편, 매일 저녁이면 도시의 음반가게들은 호객을 위해 덩리쥔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았다.

이윽고 1983년 말에는 서양의 자유주의 사상이 중국 대중에게 퍼져나갈 수도 있다는 우려로 인해 그녀의 노래들이 ‘반(反)정신오염운동’에서의 ‘오염물질’로 지목되기도 했다.5 1980년대 초반 정부당국이 ‘정신오염’을 퇴치하고자 하는 운동에 착수하면서 서구의 퇴폐주의를 대표한다는 이유로, 더 구체적으로는 부르주아적이고 반동적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노래를 금지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노래들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대중화되고 있었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있어 덩리쥔이란 현대의 상징이자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이국적인 삶의 모습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덩리쥔의 공연 장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중화권 내의 반일감정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리쥔의 노래는 범중화 지역에서 호평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어떤 공연환경에도 적응하는 그녀의 능력에 찬사를 보냈으며,6 그녀의 목소리는 “포크와 발라드를 완벽히 소화하여 훌륭하게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7 이러한 그녀의 스타덤은 범중화 지역 내의 지역적 취향을 세심히 맞춘 번안의 공이 컸다. 그녀는 베이징어와 일어뿐만 아니라 팬들을 위해 광둥(廣東)어, 타이완어, 영어로도 노래했다. 특히 타이완에서는 부드러운 목소리의 굴곡이 특징인 포크송이나 사랑 노래로 유명했는데, 무엇보다 그녀는 언어습득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베이징어, 광둥어뿐만 아니라 상하이(上海), 산둥(山東), 타이완어 등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중국어가 가능했으며, 모국어인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불어, 인도네시아어 또한 유창했다. 1983년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Las Vegas) 시저스팰리스(Caesar’s Palace)에서도 공연을 펼쳤으며, 미국에서 음반계약을 맺은 최초의 아시아 가수가 되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홍콩에서 광둥어로 노래한 것보다는 동남아시아에서 호키엔(福建)어(타이완어)로 음반을 발표하고 사후 타이완에서 음반이 출시되었다는 사실을 보다 흥미롭게 여겼다. 나아가 그녀는 보라색, 분홍색 또는 흰색 옷을 입고 공연하는 것을 즐겼는데, 상황에 따라 약간씩의 변화를 준 그녀의 공연은 중국의 여러 민족들에게 각기 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이들은 덩리쥔을 칭송하고 있으며, 그녀에 대해 논하는 여러 웹사이트들은 이러한 그녀의 성공이 “감미로운 목소리와 간결한 가사” 덕분이었다고 한결같이 평가한다.8 

햇빛을 가득 받은 2010년의 어느 일요일, 타이완에 있는 덩리쥔의 묘지에서 그녀의 서거 15주기를 맞아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언론과 팬들을 볼 수 있었다. 삼십 년간 그녀의 인기는 전세계 화교사회에서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헌사를 바치는 여러 프로그램 중에는 <님은 언제 오시려나(何日君再來)덩리쥔의 노래 제목―덩리쥔 서거 10주기에>라는 전세계에 위성방송된 5부작 TV시리즈도 있는데, 홍콩 봉황(鳳凰)위성TV피닉스TV에서 제작한 이 프로그램은 그녀의 형제와 친구들, 스승, 음악가, 팬들이 말하는 그녀에 대한 일화와 기억들을 담고 있다. 또한 홍콩과 타이페이, 뉴욕(New York)에서 파리(Paris),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요코하마(橫濱)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어떤 차이나타운 내 음반가게에 들러보아도 항상 최신곡 코너 제일 앞에는 재발매된 그녀의 음반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타이완에 있는 덩리쥔의 묘지


덩리쥔은 현대 베이징어 팝음악이 시작된 타이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90년대 이전에 태어난 많은 중국인들에게 그녀의 음악은 외부세계와의 앞선 만남이자 가장 기억할만한 만남을 의미할 것이다. 문화혁명이 끝난 뒤 중국에서의 은밀한 존재는 달라진 사회로 이동하는 많은 이들에게 삶의 고요한 풍경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녀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그리고 그 이후의 냉전과 국가의 분리)으로부터 깨어나는 시기와 그녀에 대한 기억, 그리고 이들의 연관성이야말로 이십세기 후반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있어 삶의 최고의 순간이 된 한 페이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