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다양한 국가들에서 독립게임이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오디오서프Audiosurf>퍼즐형 음악게임나 <월드 오브 구World of Goo> 물리엔진을 기반으로 한 퍼즐게임, <브레이드Braid>2009년에 출시된 퍼즐게임와 같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고, <크레용 피직스Crayon Physics>물리와 미술을 결합한 개념의 두뇌게임나 <플라워Flower>바람과 꽃잎의 이미지를 차용한 게임처럼 독특한 발상과 영상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도 있다.

오디오서프


독립게임이 전성기를 맞이한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울티마Ultima>라는 전설적인 롤플레잉 게임(roleplaying game) 역할수행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형성 및 문제를 해결하는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1980년대 초만 해도 게임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개발자는 한두 명 정도면 충분했다. 당시의 개발자들 중에는 혼자서 기획과 프로그래밍은 물론, 그래픽까지 소화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미술가나 조각가처럼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혼자 힘으로 만들었다. 상상력을 제약하는 요소는 거의 없었다. 기술적 제약도 이들에게는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드는 자극제였으며, 상업적 성공 같은 것은 별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들은 그저 좋아서 게임을 만들었을 뿐이며, 게임을 만들 때 ‘재미’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없었다. 사실 이 시기의 게임들이야말로 진정한 ‘독립게임’들이었다.

XNA게임스튜디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게임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시장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게임제작에도 대자본이 참여하게 되었다. 게임개발의 규모가 조금씩 증가하더니 최근에는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되었다. 얼마 전 발표된 M2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경주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5Gran Turismo 5>의 제작비는 대략 6,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개발비가 크게 증가하면서 게임개발은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아닌 ‘상품’을 만드는 행위로 변모했다. 그것도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상품’ 말이다. 제작비 6,000만 달러가 넘는 게임을 제작했다가 실패한다면 웬만한 중소규모의 개발사는 바로 파산하게 된다. 이 때문에 많은 개발사들이 생존을 위해 EA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 퍼블리셔(publisher)의 품으로 들어갔다. 몸집이 큰 거대 개발사에 속해야만 예기치 않은 실패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발더스 게이트Baldur’s Gate> 판타지 설정의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바이오웨어, 그리고 <헤일로Halo> SF 형식 의 1인칭 슈팅게임 시리즈로 유명한 번지소프트 같은 회사들마저도 대기업의 품으로 안겨버렸다.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상품’을 만드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남들이 하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를 다루거나 새로운 게임플레이를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모험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 입을 타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게임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전 과정에 경영자와 마케터들이 개입하게 된다. 개발자는 개발의 전 과정을 통해 그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경영자와 마케터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결국 새로운 스타일의 게임이 등장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렵게 되고 성공이 증명된 게임만이 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성공한 전작의 ‘후속작’들 말이다. 그 결과 <매스 이펙트 2Mass effect 2>, <헤일로 3>, <그란 투리스모 5>, , <콜 오브 듀티 4Call of Duty 4>처럼 제목 뒤에 숫자가 붙는 게임들이 시장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자는 개발자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불만을 품게 되었다.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드는 게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지겨운 후속작들이 아닌, 새롭고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어 한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독립게임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유통채널이 등장한 것도 독립게임 개발자들을 대량으로 배출한 또 다른 요인이다. 게임개발은 기술집약적인 행위라 동기와 의지만으로 쉽게 시작할 수 없다. 프로그래밍 측면에서 보자면 게임을 개발할 때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일은 ‘게임엔진과 개발도구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도구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개발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독립게임 개발팀이 쉽게 해낼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XNA게임스튜디오(XNA Game Studio)나 유니티3D(Unity 3D)로 대표되는, 무료 또는 저가의 게임 제작도구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고 독립게임 개발자들이 기술개발이 아닌 작품개발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플래시(flash)의 발전도 독립게임 개발자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 과거에는 홈페이지를 꾸미는 정도로만 사용되었던 플래시가 최근에는 기능이 크게 강화되어 복잡한 게임도 쉽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게다가 플래시로 만든 게임은 웹브라우저 상에서 바로 실행해 볼 수도 있어 독립게임 개발자들이 따로 유통채널을 찾지 않고 자신의 블로그에 작품을 바로 올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유니티3D

인터넷을 통한 배포루트가 열린 것도 독립게임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과거에는 게임을 개발해도 이를 판매할 전

문 퍼블리셔와 계약을 맺지 않으면 판매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게임 퍼블리셔들은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게임들만 유통하기 때문에 독립게임이 이들 퍼블리셔의 심사를 통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빅피쉬게임즈(Big Fish Games) 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다운로드 판매 사이트들이 생겨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오프라인 소매점을 통하지 않고도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에게로의 접근이 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 엑스박스360이나 플레이스테이션 3와 같은 가정용 게임기들이 인터넷 접속 능력을 갖추고 독립게임 개발자들에게 다운로드 판매의 길을 열어주면서 독립게임의 유통은 더욱 활발해졌다. 또한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소셜 플랫폼과 아이폰, 안드로이드폰의 등장으로 독립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을 직접 유통할 수 있는 루트는 더욱 다양해졌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독립게임이 개발, 유통되기 위한 조건들이 갖추어지고 여기에 많은 개발자들이 참여하면서 바야흐로 독립게임의 전성기라 할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대자본 게임시장에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실험적인 소재들이 다루어지는가 하면, 사회비평이나 정치풍자 게임이 등장하고, 8비트 게임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게임들이 나오기도 했다. 게임인지 영화의 한 장면인지 알듯 말듯한 독특한 형식의 예술게임도 개발되었고, ‘죽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게임의 법칙을 뒤엎은 게임도 등장했다.(<케로시>라는 게임은 캐릭터를 죽여야만 스테이지가 끝나는 게임이다) 개발자들에게 제작의 자유(무료 개발도구), 유통의 자유(인터넷을 통한 배포), 홍보의 자유(블로그, 트위터 등)를 안겨주었을 때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빅피쉬게임즈

해외 독립게임들이 이렇게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독립게임의 개발과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온라인게임 의존도가 높은 한국게임 시장의 독특한 상황이 주요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게이머들은 대다수가 온라인게임만을 즐긴다. 보통의 게임은 만든 뒤에 판매하면 끝이지만 온라인게임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서버장비를 임대 또는 구입해야 하고, 인터넷 데이터센터에 매달 일정 비용을 내야하고, 운영자를 고용해 지속적으로 게임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온라인게임은 독립게임 개발자들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펭구리 엔터테인먼트라는 1인 개발사에서 온라인게임을 혼자 힘으로 개발, 서비스한 사례가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예외적인 경우다. 아직까지도 많은 개발자들이 ‘한국에서는 온라인게임이 아니면 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나 소규모 개발집단이 선뜻 독립게임 개발의 길로 뛰어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해외에 비해 다운로드 판매루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한국 독립게임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이다. 한국에서 다운로드 판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는 현재까지 단 한 곳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나마 이 회사마저도 포털사이트와 계약을 맺고 수익을 삼등분해 가면서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다운로드 판매 매출규모도 크지 않다. 이용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만들어도 변변한 유통채널이 없다면 누가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한국어로 개발되어 한국에서 공개되는 모든 게임은 반드시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게임법도 독립게임의 발전에 큰 장애요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 취미로 만든 게임이라 해도 원칙적으로는 사전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사전심의라는 용어만으로도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는 이미 제약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블로그에 정치풍자 글을 올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치풍자 게임은 그렇지 않다. ‘사전심의를 득’해야만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전심의의 존재는 개발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사전심의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독립’은 큰 제약을 받게 된다.

펭구리 엔터테인먼트의 온라임게임


독립게임 개발과 배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의 독립게임은 아직까지 생소한 개념이다. 일부 게이머들을 제외하고 독립게임을 알거나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드는 사람은 더욱 적다. 독립게임은 기본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전제로 하지만, 많은 게임 개발자들은 자본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삶과 문화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분위기야말로 한국의 독립게임 발전을 어렵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 볼 수도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상할 수 없다면 다른 여건이 갖추어져도 독립게임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려서부터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자라고 부모의 철저한 관리 속에 ‘체제 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인재’로 키워지는 사람들이 과연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삶과 문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독립게임의 전성기를 보고 싶다면 일단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독립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과제다. 게임, 영화, 음악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보다 넓은 영역에서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