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생 소설가의 소설이 작년과 올해에 걸쳐 네 편『사양(斜陽)』, 『인간실격(人間失格)』, 『판도라의 상자(パンドラの匣)』, 『비용의 처(ヴィヨンの妻)』이나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에 등장하는 현상은 심상치 않다. 영화에는 쿠보즈카 요스케(窪塚洋介) <판도라의 상자(パンドラの匣)>(2009), 마츠 타카코(佐橋隆子), 츠마부키 사토시(妻夫木聰), 히로스에 료코(廣末凉子) 이상 <비용의 처(ヴィヨンの妻)>(2009) 등 현재 일본영화의 젊은 별들이 등장한다. 다자이 오사무(津島修治, 1909~1948) 혹은 다자이의 소설에는 무언가 대단한 게 있다. 다자이 탄생 백주년(2009)은 그러했다.

『굿 바이(グッドバイ)』는 내게 다자이의 소설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할리우드 영화와 다자이의 소설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영웅들의 대사에서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들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태연히 농담을 던진다. 그들의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그들은 대개 죽거나 파멸하지 않는다. 죽어도 의미를 지닌다. 영웅이란 그런 것이다. 다자이 탄생 백주년을 기념하여 잇따라 쏟아진 영화들을 통해 영웅 다자이를 보는 듯하다. 뒤집어 보면 그들에게는 지금 문학영역의 영웅이 없거나, 아니면 부족한 상황인 것이기도 하다. 영웅의 부활이란 현재의 폐색감에서 오는 것이니까.

『굿 바이』는 단편선집이다. 여섯 작품「추억(思ひ出)」, 「역행((逆行)」, 「망치소리(トカトントン)」, 「아침(朝)」, 「내 반생을 말하다(わが半生を語る)」, 「굿 바이」을 옮겼으며, 184쪽 분량이다. 많은 입을 가진 얼굴을 그려 넣은 표지는 다자이 번역서에 잘 어울린다. 내용은 초기의 두 작품, 패전 후의 작품, 유작 순이다. 아쉬운 것은 출판사의 선전과는 달리 ‘유머와 풍자’가 담겨있는 작품은 「굿 바이」와 「망치소리」뿐이라는 점이다. 총 188편의 소설 중에서 유머를 중심으로 엮을 생각이었다면 태평양전쟁 중에 쓰인 해학적 작품을 모아 번역하고, 풍자를 중심으로 할 생각이었다면 패전 후의 작품 중에서 골라 엮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또한 「내 반생을 말하다」는 소설이 아니다. 1957년 <소설신쵸(小說新潮)>에 실린 글로, 구술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수필 속 첫머리부터 작가는 자신이 ‘막내’라며 거짓말을 하고 있으므로 「추억」 등의 자전적 소설이 얼마나 허구와 실제를 넘나드는 작품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번역자의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다자이 오사무

「굿 바이」의 경우 다자이가 죽음을 전제로 쓴 것처럼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작품이다. 일본판 돈 후안(Don Juan)이 열 명 가까이 되는 애인들과 헤어지기 위해 황당무계한 사건을 벌이면서 몇 번이고 웃음을 자아내는 유쾌한 소설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쓰던 작가의 현실에는 도무지 유머가 없다. 패전 후 다자이는 사생아를 만들고 토미에(富江)라는 전쟁미망인과 지내게 된다. 몸이 성치 못한 아들과 어린 두 딸이 있었고, 가정불화는 극에 달했으며 건강상태도 엉망이었다. 「굿 바이」가 이야기하는 것은 애인문제인데 현실에서 자신을 떠나면 자살하겠다며 청산가리를 숨겨둔 정부를 둔 작가에게는 유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함께 지내며 보살피고 원고도 읽었다는 정부 토미에에게 있어 「굿 바이」는 유머는 커녕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을 겨냥한 비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작품의 유머 속에는 목숨을 건 사랑에 빠진 여자와, 여자를 그렇게 만들고도 그녀를 떠나고 싶어 하는 소설가의 살벌한 이야기가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할 셈이었을까. 그러므로 작품이 미완인 점은 더욱 아쉽다.

스스로 만들어낸 온갖 고난과 역경이 다자이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웅처럼 「굿 바이」라는 소극(笑劇)을 쓴다. 어찌 영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할리우드 영화 속 영웅은 영원히 영웅이지만 다자이라는 영웅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감당치 못할 현실 앞에서 내뱉는 유머는 아슬아슬하다. 그는 고통스러울 때 희극을 쓴다고 스스로 말했다. 현실의 비극 속에서 허구의 희극을 써내는 다자이는 탄생 백주년을 기념할만한 소설가다. 범부인 우리가 접근키 어려운 경지므로.

얼마 전 이사카 코타로(伊坂幸太郞)가 20세기 「굿 바이」의 완결을 의도한 『바이바이 블랙버드(バイバイ、ブラックバ?ド)』를 발표했다. 다섯 명의 애인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21세기 「굿 바이」의 모습이 그려진다는데 독자들의 아쉬움은 채워질 수 있을까. 위대해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기에 위대한 것이다. 다자이는 위대하기도 하고 기억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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