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수상 등 화려한 경력과 호평에도 불구하고 <땅의 여자>를 본 나의 첫 느낌은 ‘불편함’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감독의 한마디였다. 영화 초반 “농사짓는 게 좋은가, 촬영 편집하는 게 좋은가”라는 여성농민 소희주 씨의 질문에 감독은 “촬영 편집할 때가 보람은 있고 농사짓는 건 아무 생각이 없어서, 마음이 편해져서 좋다”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정말 뜨악해졌다. 무심코 던진 이 대답에 자신이 찍고 있는 영화의 대상에 대한 감독의 관점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땅의 여자>는 ‘땅’을 생명줄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 즉 여성농민에 대한 영화다. 1990년대 초반 경상남도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며 농촌운동을 꿈꾸었던 세 여성 소희주, 강선희, 변은주가 실제로 귀농하여 농부이자 활동가, 기혼여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한 영화다. 오프닝에서 밝히듯이 감독이 일 년 반 동안 세 여성농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기록했다.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상이 속해있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 관찰을 통해 그들의 삶의 문제, 고민과 갈등을 심도 있게 끄집어낸다는 의미다. 대상과 신뢰에 기반한 관계를 형성하기에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다. 그렇다면 풋풋한 이상을 안고 귀농했던 이 세 여성의 현실에 카메라는 얼마나 밀도 있게 개입했을까? 감독은 그들의 고민을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우리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작금의 농촌현실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어지간히 알고 있다. 농부이자 여성으로서의 삶, 그 속에는 당연히 즐겁고 낙관적인 순간들도 있겠지만 그 삶 자체는 결코 녹록하다 말할 수 없다. 여행객의 시선에 비친 농촌이야 온갖 잡념을 없애주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일지 몰라도 버거운 육체노동과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고사될지도 모를 미래에 시름하는 농부에게 삶은 여행객의 느낌과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일 년 반 동안 이들과 함께 생활한 감독은 당혹스럽게도 “농사짓는 일은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편해져서 좋다”고 말한다. 별 뜻 없이 나온 그 말은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무례하고 무지하게 들린다. 이것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남모르는 고민과 갈등을 공유한 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순간 과연 이 영화의 문제는 대상의 내밀한 고민과 갈등에 접근하지 못한 카메라 능력의 문제일까, 아니면 대상을 바라보는 감독 시선 자체의 문제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감독은 애초에 ‘홍콩FTA원정투쟁’에서 만난 강선희-권순남 고부의 관계가 궁금해서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까지 와서 함께 구호를 외치며 FTA반대투쟁을 하는 두 사람에게서 통상적인 고부관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한국에서 다시 만난 권순남 씨가 홍콩에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무엇이 달랐을까? 사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우며 동시에 의아한 부분이 바로 영화가 강선희-권순남 두 여성의 고부관계를 다룬 방식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들의 관계-농촌 여성으로서의 연대의식과 잠복된 갈등-야말로 영화가 탐구하는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영화는 이 부분을 너무 쉽게 간과한다. 왜 카메라는 권순남 씨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들으려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사라진 이유, 활동가 아들 내외의 활동을 보조하면서 집안일을 책임지다 끝내 사라지기를 결심한 그녀의 속내를 왜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사실상 이러한 무관심의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드러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메시지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개입하고 궁극적 낙관과 희망이라는 엔딩을 향해가는 어떤 관성. 관객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영화의 힘에도 불구하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의 적당한 감동과 희망만을 제공하는 영화의 한계. 매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재능이 돋보이기에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타협한 흔적이 더욱 아쉬운 영화다.


영화 <땅의 여자> 포스터

이미지 제공_ 시네마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