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가 끝날 무렵 송도가 내려다보이는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들렀다. 이전에도 여러 번 가족들과 다녀온 적은 있지만 수첩을 옆에 들고 혼자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수첩까지 챙긴 이유는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한국문학, 근대를 그리다展>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2012년 인천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국근대문학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가장 큰 관심을 가진 부분은 백여 년 역사에 이르는 근대문학을 어떻게 배열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박물관의 유물들은 그 자체가 독립적인 별인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나름의 기준으로 묶고 나누어 하나의 성좌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후세 사람들의 몫이다. 기획을 통해 하나의 돌덩이나 종잇조각은 비로소 시공의 벽을 뚫고 현대인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런 점에서 큐레이터를 귀신과의 만남을 중재하는 현대판 영매(靈媒)라고 하는 것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특별전은 기본적으로 시대 순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1900년대, 1910년대, 1920년대, 1930~1940년대로 나뉘어 있었고, 거기에 ‘근대개항도시, 인천의 문학인 4인방’과 ‘문학과 예술’이라는 코너가 덧붙여져 있었다. 1910년 코너에는 ‘새로운 현실을 꿈꾸는 다양한 글쓰기들’이, 1910년대 코너에는 ‘육당과 춘원의 계몽적 낙관주의’, ‘소년과 어린이의 탄생 새로운 인간을 상상하다’, ‘국토의 발견, 풍경의 발견’이, 1920년대 코너에는 ‘개성의 표현과 식민지 현실의 묘사’, ‘민족의 정서와 미학을 노래하다’, ‘혁명과 문학-신경향파문학과 KAPF’, ‘동반자 작가-문학과 이념 사이에서 균형잡기’가, 1930~1940년대 코너에는 ‘인간의 본질을 묻다-1930년대의 신세대 작가들’, ‘한국 근대사의 풍요로움’, ‘여성 작가들의 고유한 시선과 목소리’, ‘모더니즘, 근대 도시문화에 대한 매혹과 소외’, ‘대중의 탄생과 상업적 대중문학의 출현’, ‘역사가 소설이 되다’, ‘문학비평의 등장, 문학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밤이 깊을수록 별은 찬란하다-이육사와 윤동주’, ‘해방의 감격과 분단의 슬픔’이 각 부스로 나뉘어져 있었다. 실로 일목요연하게 한국 근대문학의 고갱이만을 정선하여 벌여 놓은 것이다.

어찌 보면 ‘문학박물관’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아포리아(aporia)다. 본래 박물관은 일일이 찾아다니며 볼 수 없는 역사적 유물이나 예술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라디오박물관을 둘러보면 라디오의 역사를 알 수 있고 이중섭미술관을 둘러보면 이중섭의 그림 세계를 일별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예술이기는 하나 예술 이하인 동시에 예술 이상이다. 음악이나 미술은 매체로서 청각이나 시각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에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그래서 어린이나 외국인도 박물관 현장에서 예술품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은 언어를 매체로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향유는 예술품을 읽고 독자가 나름대로 의미화 작업을 끝내야 비로소 가능하다. 문학작품은 결코 책표지나 저자의 서명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시실 내부

이번 전시는 문학박물관의 근본적 난제에 맞서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문학이 지닌 아우라(aura)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2007년부터 공들여 수집한 희귀자료 150여 점은 각 전시실에서 저마다 고유한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한문 혼용서인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1895), 안국선의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1908), 염상섭의 『만세전(萬歲前)』(1924), 서정주의 친필헌시가 수록되어 있는 『화사집(花蛇集)』(1941), 김억의 한정판 번역시 선집인 『망우초(忘憂草)』(1934)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박물관이란 뼛속까지 근대의 산물이다. 사람들에게 민족의 위대한 전통과 공동의 취향을 학습시킴으로써 민족공동체에 대한 자발적인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2012년은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12년 정식으로 개관할 한국근대문학관은 값나가는 희귀본이 지닌 아우라에 덧보태어 여러 가지 기술적 수단을 활용하는, 새로운 시대의 혁명적 공간으로 탄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세계시민과 인천시민에 대한 마땅한 도리다.


한국문학, 근대를 그리다展 포스터

이미지 제공_ 한국근대문학관 개관준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