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극’이라는 이름의 연극들이 있다.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낯선 부류의 연극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으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단지 소재로서 과학을 이용한 작품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과학이 갖는 사회적, 철학적 의미를 파고드는 작품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건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반가운 이유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기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갖는 사회적, 철학적 의미에 대한 사유가 턱없이 부족한 까닭이다. 조금씩이나마 인문학적인 고찰이 이루어지는 영역도 IT기술이나 CG기술처럼 대중에게 즉각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적인 부분들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사회를 향한 단초를 만들어 내리라는 소란스러운 전망과는 달리 사유의 빈곤 속에 놓인 대부분의 과학기술은 단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상품화되고 대중에 의해 소비되기만 할 뿐이다. 삶의 영역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로 알려진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의 과학연극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는 사유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줄 작품은 아니다. 이 연극은 과학과 현실의 접점을 찾으려 하기보다 인간의 삶을 과학적 현상에 빗대어 읽어내고 있을 뿐이다. 극의 배경을 기생충학 연구실로 설정한 이유는 과학적인 사유를 전개해나가기 위해서라기보다 연극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공간을 무대 위에 불러옴으로써 역설적으로 일상의 연극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때문에 과학연극이라는 명칭은 이 극을 읽어나가는 데 있어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연극의 출연진들

예컨대 인물에 대한 묘사는 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면모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서의 측면이 훨씬 부각되어 있다. 그들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라기보다 일종의 페티시(fetish)에 가깝게 그려진다. 과학은 그들의 삶에서 본질적인 무엇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와 엇갈림에서 받은 상처를 가리고 위무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셈이다.

과학연극이라는 포장을 들어내고 보면 이 극은 비일상적인 공간의 일상을 토대로 그 속에서 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와 그것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의 호흡과 간격에 있다. 히라타 오리자는 대사의 호흡과 간격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작가다. 때로는 동시에, 때로는 상대의 말에 바로 이어지게 혹은 잠깐의 간격을 두기도 하고 호흡을 길게 하는 등, 그는 대화의 호흡을 통해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내고 극의 리듬을 창출해낸다.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 역시 마찬가지다. 찰나의 망설임과 침묵, 대사의 호흡이 공연의 밀도를 만들어낸다. 소통의 엇갈림과 관계 맺고자 하는 시도의 망설임, 그리고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한 성찰까지. 그 리듬이 연구실 속 일상에서 끄집어낸 연극성에 생기를 부여한다. 그리고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라는 소재가 갖는 메시지를 극 속 현실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공연은 그 호흡의 리듬을 온전히 무대 위에 구현하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 대화와 간격, 침묵의 리듬이 살아나지 않다 보니 그를 통해 전달되는 인물들의 감정은 단조롭고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 역시 단선적으로 그려지고 만다. 기생충에 비유하여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하지만 그것이 극 속에 녹아들지 못하면서 극적 설득력을 지니는 것에 실패한 셈이다. 특히 고래가면을 쓴 남자의 환상은 극 내내 펼쳐지던 일상에 균열을 가하면서도 그 균열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변화시켰는지는 모호하게 나타냄으로써 그 실패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연극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 포스터

이미지 제공_ 정보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