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널리 알려진 지브리스튜디오(スタジオジブリ)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가 지난 9월 초에 한국에서 개봉했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심장병 수술을 앞둔 한 소년이 요양을 위해 수풀이 우거진 시골 할머니집을 찾는다. 소년은 그곳에서 인간들의 물품을 ‘빌려’ 생활하는 소인(小人) 소녀 아리에티를 만난다. 이 둘의 만남으로 인해 그 집에서의 인간과 소인의 공생은 끝이 나고 소인가족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멀고 먼 길을 떠난다. 

메리 노턴(Mary Norton, 1903~1992)이 1952년에 쓴 『더 바로워즈The Borrowers』를 원작으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사십 년 전부터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작품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각본에만 참여했고 감독은 삼십 대의 신인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米林宏昌)가 맡았다. 일본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애니메이션의 내용보다도 신인감독과 지브리스튜디오의 미래에 놓인 듯하다. 즉 제작기능을 상실한 테즈카프로덕션(手塚プロダクション)의 예처럼, 감독 한 명에 사운이 걸린 지브리스튜디오가 올해 일흔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다.



한국에서의 흥행은 좋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동원관객 600만 명을 넘어 안도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한 안도감은 일련의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신인감독이 충실히 답습했다는 점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메리 노턴의 원작 자체가 소녀의 모험을 중심으로 하고 그녀를 돕는 소년이 존재한다는, 기존의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기본 얼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여 이공간(異空間)을 접한다든지, 시골집이 자연에 둘러싸인 곳이라는 설정 등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신인감독의 <마루 밑 아리에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과 무엇이 다른가가 중요할 것이다. 한마디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작품에는 죽음과 소멸에 대한 비장미가 두드러진다. 심장병 수술을 일주일 앞둔 인간 소년과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킴으로써 삶의 터전을 잃고 생존을 위해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는 소인 소녀. 그 둘은 죽음과 종족소멸이라는 각자의 문제에 공감하게 되면서 서로를 격려한다. 원작에서는 소년이 심장병을 앓고 있지 않고 소인 종족이 소멸되어간다는 테마가 강하지 않다.

게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대부분 마지막 장면에서 경쾌하고 즐거운 축제로 끝나는 반면 <마루 밑 아리에티>에는 축제가 없고 비장하기만 하다. 이는 같은 원작을 사용하여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 <더 바로워즈>(1997)와 비교하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이 영화는 죽음이나 슬픔, 종족의 소멸이라는 테마와는 동떨어진 채 소인들이 마치 <나 홀로 집에Home Alone>(1991)를 연상시키듯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복숭아 속에서 태어난 작은 모모타로(桃太?)가 도깨비를 물리치는 이야기와 같이 소인은 일본 전래동화에 곧잘 등장한다. 이어령이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지적했듯 일본에는 커지면서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작아지면서 힘을 얻는 유형의 이야기가 많다. 아시아 최대경제대국의 자리를 중국에게 내어준 일본이 소인 아리에티에게서 전통적인 초심을 찾는 듯 보여 애니메이션의 감동이 더욱 비장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 포스터

이미지 제공_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