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10 윤이상 콘서트>는 그 단출한 제목과는 달리 단순히 윤이상(尹伊桑, 1917~1995)을 기리기 위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을 구성한 세 곡 김택수의 , 에두아르 랄로(Edouard Lalo, 1823~1892)의 <스페인 교향곡>, 윤이상의 <교향곡 2번 전3악장>은 한편으로는 윤이상의 기원(혹은 근친관계, 혹은 가족 유사성)을 살펴보고 윤이상을 이어갈 차세대 후계구도를 조망하려는 의도로 포진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음악사를 관통하는 공간 속에서 윤이상의 ‘좌표’를 그려봄으로써 과거를 위치시키고 미래를 구상하려는 기획이다.

먼저 작곡가 윤이상의 위상을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좌표로 환원시켜 보자. 좌표의 두 축에 각각 ‘민족적 색채’와 ‘현대성’을 놓는다면 이 두 개념은 얼핏 반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민족적, 지역적 색채를 차용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서구 중심 음악계’에 편입하고 나아가 거기서 생존하기 위한 부득이한 전략임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음악사에서 이러한 마이너/로컬 음악양식이 어떻게 중심부의 음악을 침략하고 다양화시켰는가, 결국 어떻게 ‘현대성’을 촉발했는가 하는 것은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미적 문제다.

바로 이런 식으로 우리는-윤이상의 소위 ‘롤 모델’로서 언급된-랄로를 가늠해볼 수 있다. 아마도 ‘민족적 색채’ 축에서 높은 값에 위치할 랄로의 좌표는 비단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유럽 내부에 존재하는 중심과 주변 간의 경계 및 상호작용을 입증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요컨대 19세기 후반 침체에 빠진 프랑스 기악음악의 부활을 이끈 작곡가로서의 랄로.

돌이켜보면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라든가 라벨(Maurice Ravel, 1875~1937) 등 랄로 이후의 주요 프랑스 작곡가들이 스페인 민족양식이라는 ‘주변적’ 음악양식을 중심부로 끌어들임으로써 미적 실험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바탕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족양식이 단지 정체성의 표식만이 아니라 순수한 미적탐구의 재료임을 거듭 강조하는 일은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윤이상의 경우 이러한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유럽 대 아시아로 확장된다. 윤이상이 동아시아 음악에서 확장시킨 기법들, 예컨대 주요음 기법한 가지 음으로 여러 음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라든가 즉흥적 헤테로포니(heterophony) 동일한 선율을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동시에 연주하는 것 등은 서구 현대음악에서 고심 끝에 창출시킨 음층 음악(tone cluster)여러 음들이 수직적으로 층층이 포개져 한 덩어리처럼 들리는 음악과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확장시켰으며, 심지어는 전복과 근본적 재편의 기반이 되었다.

이렇듯 민족적 색채가 ‘정체성’의 문제일지라도 나아가 ‘정체된 현대성’의 돌파요인이기도 하다는 것은 글의 서두에서 가정한 두 개의 축이 실상 온전히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간의 교차 속에서만 존재함을 입증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윤이상작곡상의 2009년 수상작-마르티네스 부르고스(Martinez Burgos)의 대상에 이은 중앙일보 특별상-인 김택수 작품의 면면은 윤이상이라는 좌표의 의의와 향방을 재확인시켜준다.


공연의 한 장면


그 어떤 민족적 모티브로부터도 자유로워 보이는 김택수의 작품이 사실상 이러한 이중의 구속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것은 이를테면 ‘극복된 과거’이며, ‘미래를 근심하지 않는 현재’다. 특히 이번에 연주된 는 엄밀히 말해 당선작이 아니라 스케치 모음곡이다. 이렇게 파편화를 더욱 강조하고 촉진시킴으로써 랄로에서 윤이상으로 이어진 좌표들의 움직임은-마치 김택수가 영감을 얻었다는 물풍선 놀이의 흩뿌려진 물방울처럼-중력에 견고히 묶여있으면서도 그것을 가벼이 무시하며 어디로든 튀어갈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이 모든 곡들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 지휘자 정치용과 원주시립교향악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적 한계와 짧은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구어낸 눈부신 성장은 윤이상을 둘러싼 좌표를 형상화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윤이상(과 그의 음악 그리고 그 정신)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미지 제공_ 윤이상평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