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기후온난화, 식량부족, 에너지고갈 등 전 세계적 규모의 악재에 노출되었다는 언설에 둘러싸여있다. 지구적 근본문제들은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한 것으로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산업문명의 출현 이후 가속화되었으며, 인류는 파멸의 종착지로 쉼 없이 치닫고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울린다. 이에 맞서 매트 리들리(Matt Ridley)는 근작에서 향후 백 년 간 인류는 유래가 없었던 번영을 누릴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천명한다. 저자는 비관론자들이 “기술적 변화의 속도와 규모, 그리고 세계를 다시 배열하는 새로운 비법의 창출을 극히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만연한 비관주의는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현재의 기술수준에서만 찾아 생긴 오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인류는 줄곧 여러 문제들을 ‘혁신’을 통해 해결해 왔음을 역사적 고찰을 통해 반박하고, 그 같은 이성의 힘에 바탕을 둔 혁신 덕분에 번영은 계속될 것이라 주장한다.

문명사를 관통하는 저자의 통찰력은 주먹도끼와 컴퓨터용 무선 마우스의 비교에서 보듯 쉬운 전달력과 예리한 분석력을 겸하고 있다. 둘 다 손바닥으로 움켜쥐기에 적합한 크기와 형태로 가공되었다는 점에서 직립보행을 하는 유인원의 진화적 산물이다. 그러나 주먹도끼를 사용할 줄 알았지만 디자인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의 길을 걸었던 반면 인류는 혁신을 통해 마우스로 변모시킬 수 있었고,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뇌용량은 현대인보다 컸지만 그들의 주먹도끼는 여타 영장류가 나뭇가지를 도구로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채 정체되었던 반면 인류가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생태적 진화의 차원을 넘어선 ‘문화적 진화’가 수반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가지 재료에 단 한 명의 솜씨가 반영된 주먹도끼에서 많은 재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계통의 지식이 동원된 마우스로의 변화는 곧 자급자족의 시대에서 분업화와 전문화의 시대로의 변이를 잘 보여준다. 남녀의 분업을 통해 수렵·채집이 구분됨으로써 다양한 먹을거리가 확보되어 생존율이 향상되었고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산출된 물품의 ‘교환’을 통해 다양성과 효율은 더욱 증대되었다. 해안의 어부가 고기잡이에 전념하고 내륙의 대장장이가 낚시바늘 제조에 전념하면서 어부와 대장장이 모두 생산력이 증가하는 ‘전문화의 마법’이 발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교환을 통해 전문화가 이루어졌고 전문화에 의한 생산력의 증대는 자급자족에 비해 훨씬 높은 생산성을 보장해주었기에 교환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었다. 특히 농업혁명이 자급자족보다는 특정작물 재배가 보다 안정적인 생존을 보장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교환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신뢰에 바탕을 둔 전문화의 결과라는 분석은 잉여농산물이 시장과 자본을 출현시켰다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기에 충분하다.

매트 리들리(좌) 찰스 다윈(우)

교환과 전문화는 문화적 진보를 위한 원동력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집단지능’이 인류가 지닌 본질적 특이성이라는 통찰은 역사시대에 대한 분석에서 더욱 힘을 얻는다. 페니키아(Phoenicia), 아테네(Athens), 바그다드(Baghdad), 피렌체(Firenze), 피사(Pisa), 베네치아(Venezia), 암스테르담(Amsterdam), 런던(London) 등에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 알 콰리즈미(Al-Khwarizmi, 780~850),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뉴턴(Isaac Newton, 1642~1727),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출현한 사실을 통해 ‘시장의 번성이 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정신을 자극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교환(교역)이 불가능한 태즈메이니아(Tasmania)가 석기시대 수준으로 퇴보했으며, 이집트, 미노아, 바빌로니아, 중국 상(商)나라와 같은 엄격한 통제사회는 ‘기술적 혁신을 더디게 만들고 사회적 혁신을 몰아냈으며, 창의성을 응징’했다. 방대한 시기를 아우르는 분석을 통해 번영을 성취하는 길은 ‘전문화 및 교환과 관련된 거래, 기술, 신용의 도구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자유롭게 하는 것만이 유일하다는 결론은 누구도 쉽게 부인하기 어려움이 분명하다.

ⓒ김영사ㅣ2010

리들리는 교환(시장)이 여타 영장류와 구분되는 인류의 본질적 차이며, ‘보이지 않는 손’(애덤 스미스Adam Smith, ?~1790)에 의해 ‘자연선택’(찰스 다윈)되는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문화와 기술이 창출되는 것을 ‘번영진화’(댄 데닛Dan Dennett)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견해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1899~1992)가 개념화한 카탈락시(catallaxy), 즉 ‘노동의 분업이 진전됨에 따라 탄생한 가능성의 무한한 확장’에서 원용한 것으로 일단 시작되면 스스로를 확대해나가는 속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비관론자의 이론적 기초를 형성한 한계수확체감의 법칙(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과 인구론(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이 인류사 내내 혁신과 개선을 통한 인구부양능력의 향상으로 극복된 사실이야말로 카탈락시의 결과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인류는 집단적인 문제해결 기계가 되었으며, 이 기계는 수단을 변경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발명을 통해 수행되며, 발명의 동력은 종종 시장에서 나온다. 희소성은 가격을 상승시키고 이는 대안개발과 능률향상을 추진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좌)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우)

이러한 과정은 특히 ‘현재의 태양에너지’에서 ‘비축된 태양에너지’로 동력원을 바꾼 산업혁명으로 인해 번영의 한계가 극복되었던 역사적 사례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어느 수준 이상으로 사용이 확대되면 가격이 상승하는 숯에 비해, 풍부한 매장량과 채굴기술의 진보가 병행된 화석연료는 시간이 가면서 가격이 하락했으며, 비관주의자의 예측에 따르면 현재 이미 고갈되었을 것이라 추정되었던 화석연료 매장량은 채굴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여전히 몇 십 년, 몇 백 년의 매장량이 확보되고 있으며, 인류는 머지않은 미래에 태양에너지를 활용하는 새로운 대체기술을 찾아낼 것이라는 것이 이성적 낙관주의의 입장이다. 저자 특유의 낙관주의는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만 사태를 파악하는 비관론자의 한계를 넘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보유한 것이기에 통계적 결론을 넘어 보다 강한 설득력을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낙관적 미래를 단언하는 저자의 견해는 다소 조심스럽게 수용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전체 인류가 누리는 번영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점에 쉽게 수긍이 가지만 그러한 번영의 여정에는 수많은 국지적인 난관이 예비 되어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실존적인 ‘세계의 비참함’을 방기하는 것은 아니며, 보다 활발한 카탈락시를 통해 비참함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독자들이 전편에 깔린 ‘집단지능’의 변증법적인 전개과정에 대한 통찰을 무시한 채 낙관적 미래에 대한 피상적 접근에만 집중한다면 그야말로 비참함에 눈을 감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에 인류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번영이 이루어졌던 최근 이백 년 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소설가와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발휘했다는 사실이 좀 더 부각될 필요가 있다. 센세이션에 의존하는 비관주의는 배척되어야 할 것이지만 인류에 대한 건전한 경고와 비판이 많아질수록 혁신과 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촉구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번영의 세계로 인류사가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제공_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