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죽어가고 있는 시대다. 과거에 비해 도서시장의 규모는 커지고 매년 쏟아져 나오는 책의 출판부수도 높아지고 있지만 책이 가지고 있는 위상과 영향력은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 매체로서의 책의 가치가 갈수록 떨어져가고 있는 오늘날, 책의 위상을 되살리고자 시민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국내 유일의 거리도서전으로 그 가치가 높다 할 수 있다. 책과 책으로 대표되는 문화와 접하고자 홍대거리를 찾아오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꽤 고무적이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올해로 6회를 맞았다. 2005년 시행된 이래 끊이지 않고 그 규모를 키워온 것이다. 주최측인 조직위의 설명에 의하면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3,000여 개의 출판사가 운집한 마포구, 특히 그 가운데서도 서울의 주요한 시가지에 속하는 홍대 앞 거리를 지식출판문화의 중심축으로 세우고자 하는 데 그 의도가 있다고 한다. 예술적 창조력이 풍성한 홍대문화와 연계하여 서울의 문화적 중심지 중 하나인 홍대거리의 문화적 잠재력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의 슬로건은 ‘책꽃이 피었습니다’이다. 본 행사를 통해 거리마다 책이 꽃처럼 피어나고 그것으로 시민들에게 웃음꽃이 피어, 아날로그 매체로서의 책이 다시 부활하여 피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마치 그 꽃이 피기를 바라듯 기간 내내 하늘에서 비가 내렸으니, 그로 인한 불편은 차치하더라도 썩 운치가 있는 일이다.

폭우 탓에 금요일로 예정되었던 개막식을 토요일로 옮길 정도였는데도 배낭까지 메고 홍대를 찾아온 시민들의 열정이 인상적이었다. 당 행사의 주요섹션인 거리 도서전 ‘거리로 나온 책’에는 90여 개의 출판사가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책을 접할 수 있으므로 행사를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페스티벌’이니만큼 시민들이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많았다. 출판사에서 준비한 강연회나 토론회 등을 경험할 수 있는 ‘판타스틱 서재’와 시인, 만화가, 음악가 등이 책을 매개로 하여 무대를 마련한 ‘상상만찬’ 등이 그것이다. 대안교육 좌담회와 북 커뮤니티 토론 포럼이 눈에 띄었고,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인디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일요시극장’이 무대에서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거리를 벗어나 골목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에는 작가 이상(李箱, 1910~1937) 탄생 백주년을 맞아 기획된 특별행사 ‘이상한 책읽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건물 1층의 <이상한 책展>에서는 이상의 작품을 시각디자이너, 타이포그라퍼의 눈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단순히 하나의 평면에 표현된 작업에서 벗어나 평면의 집합인 한 권의 책으로 구성된 작품이 많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프로의 작품뿐 아니라 이상 백주년을 상징하는 100명의 청소년이 나름의 방식으로 이상의 소설 「날개」를 재구성한, <김민과 미래작가 100인展> ‘날개의 방’이 눈길을 끌었다. 작품 개개의 수준과 별개로 미래로의 날개 그 자체인 학생들의 작품이 보기 좋았지만 건물 지하에 전시된 탓에 관객들이 쉽게 찾지 못했을 뿐더러 전시에 할애된 공간 자체도 앞서 언급한 전시에 비해 조야한 것이 아쉬웠다. 그 외에도 북캐스터의 낭독회와 이상 해설서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의 저자기도 한 가수 조영남의 ‘조영남, 천재시인 이상을 노래하다’ 등의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 도서시장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각되는 전자책 시장의 약진에 발맞추어 전자출판 관련 업체들이 프로모션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북 쇼’가 또 다른 특별행사로 준비되었다. 그러나 아직 국내 전자책 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탓인지 참여한 업체가 많지 않았다.

나열하듯이 잔뜩 써놓았는데, 전반적인 인상은 기획된 행사들이 꽤 산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열린 공간인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책 문화 전반을 소개하며 소통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거리 도서전’으로서의 본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다. 그러나 몇 개의 부스에서 나눠주는 팸플릿 이외에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미비한 탓에 시민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자연스럽게 행사에 참여하기를 유도하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뿐만 아니라 주요섹션인 ‘판타스틱 서재’에 포함된 대학생 토론회 ‘진화vs창조’, ‘아나운서의 자기관리 스타일’ 등의 토론회 및 강연회는 도무지 그 의도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섹션 내의 행사들이 중구난방으로 기획되어 있다는 점인데 그 덕분에 행사의 산만함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되었다. 서로 연관성이 잘 보이지 않는 이벤트가 거리 여기저기에서 같은 축제의 이름 아래 시행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매년 특정한 슬로건을 내세우니 만큼 일정한 방향성을 주최 측에서 제시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거리의 문화, 지역의 문화란 거리의 곳곳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임은 분명하나 한편으로 그것은 그 지역 혹은 그 시대가 고유하게 지니는 특유의 향기를 품고 있기 마련이니까.

오늘날 거리에서 책을 만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책을 접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압도적인 장서보유를 자랑하는 대형서점에 가서 책을 접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한다면 오프라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할 수도 있다. 대형서점과 연계된 인터넷 서점은 현대의 미덕인 편리성과 합리성이 촉발한 한 현상이다. 문제는 책이 여전히 아날로그 매체라는 것이다. 그 부피와 무게가 주는 불편함이라니, 그로 인한 정보의 휴대불가능성이라니! 오늘날 매체로서의 책이 도태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책의 접근성을 높여주던 편리와 합리의 요구에 의함이다. 그나마 대형서점에 가면 이 구태의연한 매체가 꽤 그럴듯한 모습으로 정리되어있다. 목적과 형식에 따라, 그리고 판매부수에 따라 그 목록이 정리되어 늘어서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논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비상업적인 혹은 대중적이지 못한 도서들은 배제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구도 안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국 비합리적인, 편리하지 못한 어떤 것들의 멸종이다.



반면 거리에서 책을 만나는 일은 이런 논리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거리라는 공간이 지니는 나열되지 않는 분방함에 기댈 때 자유는 충족된다. 물론 이 ‘거리 도서전’ 또한 앞서 말한 구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고무적인 것은 참여한 모든 출판사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시민들과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 형식이 지닌 가능성이다. 거리에서 지속적으로 시민들과 마주하며 책과 문화가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그리고 좀 더 자유롭고 자생적인 매체 문화가 발생하여 매체로서의 책이 지닌 스펙트럼이 확장되도록 하는, 그리하여 엄격한 배제와 도태의 논리로부터 책이 자유로워질 수 있게 만드는 가능성이 이 ‘거리 도서전’의 형식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이제 막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이것이 그저 거대한 도서판매전이나 마찬가지인 다수의 북페어와 그 궤를 달리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거리’라는 공간이 지닌 문화적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껏 말한 것들이 지나치게 낭만적이어서 현실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주문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출판산업 역시 산업이니만큼 시장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은 당연하며, 그런 이유에서 도태되지 않는 책들의 거리는 그저 꿈 같은 이야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페스티벌’이란 무엇인가? 축제란 우리를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꿈같은 시공을 꿈꾸게 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그 꿈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축제를 찾아오는 시민들이 여전히 적지 않고 오히려 그 수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시민들이 책이라는 매체를, 책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이리라. 앞으로도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계속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이 구태의연한 매체인 책이 더욱 오래도록 살아남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