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광주비엔날레 포스터

자택 앞에 운집한 100여 명의 취재진은 수상에 대한 세간의 강박적 기대를 대신했다. 더구나 올해 그의 수상을 점친 외신보도까지 잇따르던 상황.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노벨문학상의 영광은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에게 전해졌다. 그렇지만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시인 고은이 삼십여 년에 걸쳐 완성한 4,000여 편의 연작시로 구성된 대표작 『만인보』는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제8회 광주비엔날레의 대주제로 선정되었다. 이탈리아인 총감독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는 인사말에서, 시인 고은이 만난 다양한 군상들로부터 이미지에 관한 군중의 집착과 중독을 견줄 수 있노라고 설명했다. 국외인의 견지로 볼 때 한국 현대사에서 ‘1980년 광주’는 풍성한 해석학적 동기를 유발했을 터이고, 하필 그 시기(1980년 여름)에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 수감된 노 시인과 그의 대표작 『만인보』는 지오니 총감독 자신에게 던져진 아시아의 초대형 미술행사에 시의성과 미학이 교차하는 단서를 던져주었을 것이다. 시각예술의 유구한 역사는 감각의 논리로 점철된 연보이다 시피하다. 가아(假我) 없이 불붙는 이미지의 포화 앞에서 대중은 거리낌 없이 온몸을 내맡긴다.

매머드 급 초대형 미술행사의 기본 포맷은 각국에서 소환된 수백 점의 전혀 상이한 예술품들을 유일무이한 주제어 하나에 꿰뚫어 보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행사를 지켜보는 평자라면 누구나 복잡다단한 비엔날레의 형체로부터 단 하나의 일관성을 발견하려 애쓴다. 그 일관성이 선명하게 잡히느냐 여부에 따라 행사의 성패가 좌우되곤 한다.

수백 점이 넘는 출품작을 단 하나의 주제어로 관통시키겠다는 비엔날레의 야심찬 기획부터가 무리인 점을 감안할 때, 2010 광주비엔날레는 전시기획의 한계점을 시인하고 기록보관소로서의 전시관 역할론에 집중한 행사다. 비엔날레 전시기획이 답습한 오랜 관행이 파괴된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었다. 국외인 감독이 처음 임명된 2008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 때부터 관행은 교정되고 있었다. 그해 비엔날레의 기획안은 당해 개최된 전시들을 큐레이터들이 엄선하여 광주비엔날레관이라는 동일한 시공간 안에 풀어놓은 것이 전부였다. 물론 관객 가운데 거대한 미술전시장에서 시도되는 이와 같은 구조변화를 영민하게 간파하는 이는 수적으로 매우 적다. 압도적인 출품작의 개수에 밀려 기록보관소로 변모한 전시장과 종래의 비엔날레 전시장 사이의 차별점을 살피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방대한 시각예술의 전개도와 방향성을 일반관객에게 기대하기 힘든 탓이다. 2010 광주비엔날레 ‘만인보’는 시각정보에 깊이 중독된 인류의 초상을 연보별로 살피고 있다. 그러니 비엔날레 전시장은 거대한 사료수집관으로 둔갑할 수밖에 없다. 편의상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인간의 이미지 중독이 죽음에의 애도 및 성과 육체에 대한 지배욕망과 결탁되어 있음을 살펴본다. 

이미지와 죽음
기존의 광주비엔날레는 큰 틀에서건 작은 틀에서건 ‘1980년 광주’로부터 이탈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조용히 있어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1980년 광주, 나아가 1980년대 한국사회의 범민주화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소재화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1980년 광주의 희생에 대한 외부인의 예우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1980년 광주는 일종의 사료적 가치로서 아카이빙(Archiving)된 것일 뿐 그 이상의 상징성은 없다. 이미지의 기록이 죽음에 대한 애도와 연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번 행사가 이미지의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다. 그런 차원에서 1980년 광주가 불려온 것이다. 1980년 광주 말고도 각국이 현대사를 거치며 직면한 학살과 죽음의 역사가 르포르타주(reportage) 형식으로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예를 들면 크메르루주(Khmer Rouge)1975년부터 1979년까지 캄보디아를 통치한 급진무장단체 치하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캄보디아 뚜얼슬렝(Toul Sleng) 수용소의 만 명이 넘는 수감자들의 초상사진 연작 진열이다.

영화이론가 앙드레 바쟁(Andre Bazin, 1918~1958)은 시신의 부패를 저지하는 기술의 발달과 조형예술의 존립 사이를 연결 짓는다. 요컨대 고대 이집트의 유물(혹은 미술)이 시신을 온전히 보존하려는 각고의 기술개발로 달성한 산물임을 그 예로 든다. 그러나 앙드레 바쟁의 해석처럼 생을 보존하려는 이미지 장치의 개발이 언제나 죽음에 대한 애도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죽음을 단지 구경하기 위해 이미지라는 매개를 활용한다.

토마스 히르슈호른, 박힌 페티쉬(2006)

그런 면에서 토마스 히르슈호른(Thomas Hirschhorn)의 <박힌 페티쉬Embedded Fetish>(2006)는 이번 비엔날레의 최고 논란이 될 만하다. 머리가 박살난 테러 사망자들의 실제 기록사진들과 마네킹 머리에 나사못을 박은 설치물을 병렬로 배치한 작품으로, 여러 주검이 등장하지만 죽음에 대한 애도나 경의를 찾기 어렵다. 비위가 약한 관객은 바라보기도 역겨울 만큼 사진 속 주검은 흉측하다 못해 산산조각 나있다. 놀랍지만 이런 엽기적 사망자의 사진은 대형 미술전시관 너머로도 언제든 또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다. 이미지의 발전사는 제도권 미술관 너머에서 진행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한스 페터 펠트만, 9/12신문 1면 (2001)

인터넷 상에는 다양한 사고로 인체가 거의 파괴된 기록사진들이 보관된 엽기 아카이브가 비일비재하다. 현대인은 파괴된 인체를 향한 관음증을 숨기고 있다. 집단 관음증이야말로 이미지의 역사 혹은 예술의 역사를 추동하고 기록한 동인이었다. 한스 페터 펠트만(Hans-Peter Feldmann)의 2001년 작 <9/12(신문) 1면9/12 front page>도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구경꺼리를 찾아내는 인간의 본성을 일간지의 집결로 입증한다. 이 작품은 9.11테러 이튿날 발행된 전 세계 주요일간지의 1면만으로 전시공간을 채운 설치물이다. 예상대로 9월 12일자 신문 1면은 9.11테러에서 가장 드라마적인 순간으로 채워졌는데 거의 모든 일간지가 거의 동일한 사진을 썼다고 한다. 세계무역센터 남쪽건물이 주저앉는 순간이었다고.

이미지와 섹스
이미지의 기록보존을 참칭한 또 다른 이미지 중독사례는 단연 섹스 이미지의 집요한 수집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죽음의 이미지와 나란히 인류가 전념해온 원초적인 구경꺼리다. 예술가의 근작 위주로 채워지기 마련인 비엔날레에서 19세기 사진이 눈에 띈다. 그 무렵 뉴올리언스(New Orleans) 사창가 매춘부의 나체를 연속 촬영한 E.J. 벨로크(E.J. Bellocq, 1873~1949)의 누드사진은 오늘날 아마추어들이 모처에서 촬영(때론 유출)하는 B급 포르노물과 별 반 차이가 없다. 재현도구의 발달사는 항상 금도를 넘어선 현장을 보존하고픈 욕망을 자극해왔다. 누드여성들의 얼굴은 고의로 훼손시켰다. 따라서 벗은 이의 신분을 파악하기 힘들게 만든 E.J. 벨로크의 매춘부 누드사진은 벨로크 사후에 발견된 유작인 셈이다. 인류보편의 관음욕망은 사사로운 기록행태로서 나타나는데 비밀리에 촬영된 사생활의 기록인 점에서는 오늘날의 양태와 대동소이하다.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매달린 이미지 중독의 범례는 죽음과 섹스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관음대상으로서의 육체재현의 유구한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진술하기도 한다. 전후세대의 문제적 작가 한스 벨머(Hans Bellmer, 1902~1975)의 뒤틀린 선정적 포즈의 토르소 인형(사진)을 통해 누드예술의 이면에 잠복한 퇴폐적 가치를 드러내기도 했고, 존 드 안드레아(John De Andrea)의 극사실적 채색조각을 통해 실재에 근접하려는, 아니 실재를 획득하려는 재현의 본성을 예시하기도 한다.

예시한 두 출품작도 근작이 아니라 진작 미술사에 기록된 지난날의 유적이다. 그렇지만 총감독은 신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미지 기록보관소의 역할에 충실했고 재현의 위력과 이미지 중독 사이의 상보적인 역사를 살피기로 작정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여러 전시관들에서 이런 주제를 반복적으로 탐사한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 전시 중인 헨리크 올레슨(Henrik Olesen)이 수집한 방대한 도판사료는 동성애를 대하는 각 시대별 편차를 열람하고 있는데 19세기 토마스 에이킨스(Thomas Eakins, 1844~1916)가 묘사한 남성 레슬러 두 명의 뒤엉킨 인체로부터 동성애를 극악무도한 범죄로 처벌했던 13세기의 삽화까지 방대하게 제시하고 있다.


헨리크 올레슨이 수집한 자료들

인류의 이미지 중독이 현대인에게만 특별한 병인 것은 아니다. 광주비엔날레는 재현의 괴력에 매달리는 제작자와 소비자의 보편적 성향을 방대한 미술사의 계보로 증언한다. 비엔날레 관람이 쉽지 않은 것은 전시장을 꽉 채운 방대한 이미지 더미 때문이다. 기존의 행사들이 이미지 더미 사이에 약삭빠르게 기획주제를 살짝 끼워 팔았다면 올해 행사는 더미 째 켜켜이 쌓인 이미지 자체를 성찰하고 있다. 인류의 생애가 반복하는 이미지 중독의 보편성을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 제공_ (재)광주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