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궁의 모습

그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사라졌다. 2010년 7월 19일, 긴 장마가 끝나고 기온은 32도까지 치솟았다. 그날 밤의 달은 대기의 먼지들이 씻겨 내려간 듯 흰색으로 빛났다. 오사카(大阪) 시내를 순환하는 오사카환상선의 작은 역 사쿠라노미야(?ノ宮) 철교 아래, 그곳에서의 마지막 접신은 그렇게 끝났다.

오사카환상선을 이용하며 주의 깊게 관찰해온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수수께끼나 다름없던 그곳의 이름은 용왕궁이다. 그곳의 풍경을 아름답게 수식할 생각은 없다. 사쿠라노미야 역 바로 아래 위치한 그곳은 오카와(大川) 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자판기 너머에 있다. 대충 둘러친 담장의 간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이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함께 갔던 오사카 친구는 몇 번이고 여기가 정말 오사카가 맞냐며 되묻기도 했다. 무성한 잡초와 연대를 알 수 없는 폐품들, 플라스틱 재활용품부터 가구와 가전까지 ‘방치되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잡동사니들이 사방에 뭉뚱그려져 있다. 폐품과 잡초더미를 지나 철교 밑을 통과하면 슬레이트와 합판, 그리고 어디선가 주워온 듯한 문짝들로 기워진 임시건물이 늘어서 있다. 일명 판잣집, 풍경이라는 이름과는 한없이 동떨어진 곳이다.


용왕궁의 모습

그런 용왕궁에서 마지막 굿이 열렸다. 그곳의 굿은 1920년대부터 열려왔으며, 1970~1980년대에는 한 회에 서른 번 정도의 굿이 한꺼번에 열릴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물론 이때의 굿이란 우리가 아는 그 굿이다. 그리고 그 의례의 주체는 오사카의 재일한국인 밀집지역 이쿠노구(生野?)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제주도 출신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이었다.
그동안 재일한국인 여성들에 대한 연구는 그들의 생애나 직업에 관한 연구를 통해 조금씩 밝혀져 왔지만, 정작 사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그들의 삶이나 가정의 애환은 그들 안에서 존재하다 사라져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용왕궁은 그러한 사적인 이야기가 수없이 되풀이되던 공(共)적인 공간이었다. 물론 그곳을 통해 여성뿐만 아니라 가정의 구성원들도 소위 이러한 무속신앙을 인정하고 기꺼이 그 의례를 계속 관철해왔던 점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뜻을 전달하여 의례를 준비하고 신방무당의 제주도식 표현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해 실제의례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가정 내 여성이었다. 무속을 통해 가정의 애환과 그녀들의 근심이 해결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곳에서의 무속의례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어떤 애환과 가정사 속에서 존재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곳은 스러져가고 있었다. 기온이 36도를 넘나들던 8월 초, 해체작업을 시작한 인부들은 극심한 더위에 호스로 물을 뿌리고 사무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곳과 오십여 년 동안 연을 맺어온 여신방은 가루와 고철과 먼지가 날리는 공사현장의 한쪽에서 용왕궁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 날 그곳에서 한국어로 신과 읊조리고 의뢰자에게 일본어로 그것을 다시 전하는 삼중의 통역을 행해오던 그녀였다.


철거되는 용왕궁

용왕궁이 언제부터 제주도 출신 재일한국인들의 성지로 자리 잡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근대화와 전쟁 사이에서 일자리를 찾아 오사카로 떠나온 지방 혹은 조선인들은 도시공간의 빈 곳에 쉴 자리를 만들었고, 그중에서도 강변이자 교통이 편리한 그곳에서 1920년대부터 암암리에 한두 명씩 의식을 행해왔다. 그것이 이어져 패전 이후에는 아예 굿을 위한 장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74년에는 재일한국인인 T씨가 판잣집과 토지권리를 사들여 굿을 위한 공간을 대여하는 한편, 고물수거업재일한국인의 주된 업종 중 하나을 위한 작업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함바(飯場)정주가 없는 일용노동자들을 위한 일종의 기숙사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것이 용왕궁의 탄생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그곳에서 1970~1980년대의 가전제품들을 볼 수 있었던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일본사회의 급격한 경제발전과 함께 고물수거업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인부들의 기숙사는 서서히 굿의 장소로 흡수되어 갔다. 새로운 사용자들에 의해 부적이 붙여지고 놋그릇과 촛불이 놓이기 시작했으며, 아침식사를 배달해 주는 가장 가까운 카페의 전화번호가 암호처럼 쓰이기도 했다. 하여 고물을 수거하던 곳이자 신들을 접하는 공간이라는 암묵의 룰 아래 모든 것들이 현대기술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현대의 도시 오사카에 있다고 믿겨지지 않는 불법점거지역이자 폐기물 불법투하지역, 위생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용왕궁은 이렇게 퇴적되어 왔다.

그리하여 용왕궁은 오사카의 명물인 7월의 텐진마츠리(天神祭)일본의 대표적인 마츠리 중 하나로 마츠리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의미를 구경할 수 있는 숨은 명당인 동시에 오사카 시의 입장에서는 불법점거물이자 오카와를 관할하는 오사카 부(府)의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점거냐 철거냐를 두고 수십 년간 팽팽하게 버텨온 실이 끊어진 것은 작년 1월, 관리자인 재일한국인 T씨의 아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서였다. 일 년여 동안 관할부서의 강압적인 태도에 맞서왔던 유족들은 결국 강제철거보다는 차라리 ‘재일한국인’으로서 스스로 용왕궁을 부수는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여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열려온 굿과 그 이야기들은 이제 다른 장소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용왕궁과 그 기억들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한편 텐진마츠리 날인 7월 25일, 용왕궁의 실체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스러져가는 건물로 들어섰다. 다다미 위에는 비 오듯 흐르는 땀과 열기를 날려버리기엔 너무도 낡은 선풍기 세 대가 힘없이 돌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용왕궁에서의 마지막 축제가 열렸다. 그 조악한 불범점거지역에서 축제라는 이름의 모임을 기획하고 지역신문 등에 홍보를 도맡아 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대학 관계자들로 구성된 코리안커뮤니티연구회였다. 그들은 작년 2월 우연히 용왕궁과 조우해 용왕궁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그곳을 기억하기 위한 활동을 천천히 벌여왔다. 대학의 학자로서 할 수 있는 작업들은 물론 다큐멘터리 활동가와 인권운동가, 재일한국인운동가, 이주민 방송관계자, 전문연구자 등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용왕궁을 기억하기 위한 자발적인 집단을 만들어온 것이다. 물론 연구회 자체는 대학 관계자가 중심이지만 그 자신을 용왕궁을 정의하는 전문가로 칭하기 보다는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한 데 묶음으로써 의미를 만들어내려 한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하다. 진실을 밝히는 권위로서의 대학이 아닌, 네트워크의 연결고리처럼 다층적인 지(知)의 접함점이라는 이야기다.


마지막 굿을 준비하는 모습

더불어 또 하나의 축은 역시 용왕궁일 수밖에 없다. 용왕궁이라는 장소 자체가 물리적 흔적으로서 모든 사건을 가시화하여 기억한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장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서 다층의 지식들이 위기를 인식하고 시선을 모으게 된 것이다. 분야의 차이는 용왕궁의 위기 앞에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때 용왕궁은 하나의 접합점이 된다. 그러니까 그 접함점으로 향한 시선들을 하나로 묶는 집단이 때마침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용왕궁의 모든 의례와 역사는 다양한 전문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첫 축제인 작년과 올해 모두 예술가들이 참여 또한 용왕궁에 모여 되풀이 되어온 그 이야기들을 전하며 위로하곤 했다.

25일 밤 아홉 시쯤 날씨는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텐진마츠리와 용왕궁, 두 축제는 끝이 났고 참가자들은 현실세계로, 위생적이며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세계로 돌아갔다. 자전거와 조깅하는 사람들이 주변을 달리고 매년 7월의 셋째 주 일요일마다 하나비(はなび)불꽃축제가 열리며, 연인들과 가족들과 타코야키 노점상들이 즐겁게 떠도는 세계로.
그러나 이후 용왕궁은 세 차례의 해체작업을 거쳐 8월 19일 완전히 해체되고 말았다. 그 날 현장에서는 오사카 부
관계자 및 T씨의 유족 간의 현장 확인 및 양도가 진행되었다. 그것을 끝으로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장소는 이제 물리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된 셈이다. 하지만 나와 용왕궁축제의 참가자들은 그곳의 마지막 굿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렇게 각자의 지식으로서나마 그 마지막 굿을 전하거나 기록할 것이다. 현대의 생활에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는 비위생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합법적인 것이 사실은 실체로서 존재해왔고 또 몰래 부서져가고 있다는 것을. 또한 그것은 어딘가에 다시 생겨나 또 다른 이야기들로 드나들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지 제공_ 코리안커뮤니티연구회 용왕궁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