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으로서는 ‘하나’지만 국가로서는 ‘둘’인 우리와 북한의 분열적 관계는 한국영화 속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려왔다. 북한은 ‘하나’와 ‘둘’ 사이 어디쯤에서 늘 요동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북한을 단일한 이미지로 그려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을 수반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영화 속 북한은 ‘실재의 대상’보다는 ‘상상된 타자’로 자리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지반을 갖는다. 이는 동양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상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서구의 시선과 유사한 것이기도 하다. 타자를 향하는 척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는 시선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결국 한국영화 속 북한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북한이라는 타자의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때문에 이 글은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 재현된 북한이라는 거울에 대한 글이지만 또한 그 거울에 자신을 투영해왔던 우리사회 내 시선의 메커니즘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다.  

두 개의 국가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1987년 이후 한국영화계에는 커다란 변화의 흐름이 나타난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로 명명되는 새로운 한국영화는 오랜 기간 침묵했던 역사의 영토로 시선을 돌렸고, 그 과정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됐던 남북의 경계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남부군>(1990),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태백산맥>(1994)은 이러한 시선을 분명히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코리안 뉴웨이브 이전의 한국전쟁 소재 영화에서 북한은 민족적 향유를 훔쳐간 도둑 또는 통합된 민족국가의 건설을 실패하도록 한 죄인이었다. 하지만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에 이르면 우리 역시-북한만큼이나-동일한 죄인으로 그려진다.


영화 태백산맥 포스터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은 전면에 내세운 민족주의를 통해 남한과 북한이라는 국가‘들’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비판함으로써 민족이 통합될 수 있다는 판타지를 완성하려 한다. 이  영화에서 남한과 북한이라는 국가(체제 이데올로기)의 죄가 하나씩 드러날 때 그러한 죄로부터 유일하게 면제된 것은 민족이라는 숭고한 대상이다. <태백산맥>이 궁극적으로 애도하려는 대상은 남북의 체제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희생된 자들이며, 이는 영화 속 여성인물들을 통해 구현된다. 무당의 딸인 소화오정해 분는 계급적으로 결합할 수 없는 지주의 아들이자 공산당 고위관리 정하섭신현준 분을 연모한다. 남한경찰과 군인들에게 쫓기던 정하섭을 소화가 자신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둘 사이에는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고 소화는 이내 정하섭의 아이를 갖는다. 소화는 정하섭을 위해 그의 밀서를 전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데 그것이 그만 열렬한 반공주의자인 염상구김갑수 분에게 발각되고 온갖 고문 끝에 뱃속의 아이를 잃는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장면은 유산 이후 정하섭의 어머니가 그녀를 찾아왔을 때다. 소화는 계급이 여전히 존속하는 남한사회에서 지주출신인 정하섭의 어머니로부터 그를 포기할 것을 종용받음으로써 ‘여성-아내-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빼앗긴다. 또한 정하섭은 소화에게 공산주의와 종교의 양립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며, 북한 고위관리의 아내로서 무당의 위치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소화는 남한으로부터는 여성과 관련한 정체성을, 그리고 북한으로부터는 무당과 관련한 사회적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자, 즉 남과 북 어디에서도 자신과 관련한 완전한 정체성을 주장할 수 없이 ‘사이에 끼어있는(in-between)’ 존재인 것이다. 무당으로서의 삶을 택한다면 여성으로서의 삶을 잃게 되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택한다면 무당이라는 신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태백산맥>의 영화 엔딩에 등장하는 소화의 굿은 이렇게 두 국가 사이에 끼어 희생되어야 했던 민족을 애도하고 이를 되살리려 한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코리안 뉴웨이브에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숭고한 판타지야말로 두 개의 국가라는 냉정한 현실을 초극할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1980년 광주에서 촉발된 저항의 기운이 국가 자체에 대한 의문을 잉태하면서 그 대안으로 통합된 민족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부상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영화에서 북한은 국가 ‘외부’의 타자에서 민족의 ‘내부’로 그 자리를 이동한다. 이제 북한은 적대적 국가로만 그려질 수 없었다. 눈앞의 그들은 여전히 ‘주적’이었지만 또한 동일한 민족이었던 것이다. 이들 영화에서 북한은 민족주의의 숭고함, 즉 가장 극단의 적마저도 떠안을 수 있는 숭고한 대상으로 민족을 내세우기 위한 알리바이였다.

감상적인 짓의 한계
코리안 뉴웨이브가 종식된 이후 그러니까 2000년대 한국영화에서 북한의 이미지는 리얼리즘적 양식보다는 장르라는 외투를 걸친 인간의 형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 포문을 연 것은 <쉬리>(1999), <간첩 리철진>(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의 작품들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한병사 이수혁이병헌 분은 두 개의 국가를 나누는 군사분계선 너머의 오경필송강호 분을 ‘형’으로 삼는다. 이 영화는 적대적 국가와 정서적 민족공동체 사이에 분열되어 있는 북한의 이미지를 가장 적절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정서적 교류 과정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군인들이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퇴행적 판타지’를 차용한 바 있다. 이십대 청년들인 그들이 함께 어울리는 놀이는 자신들의 나이를 벗어난 행위-닭싸움을 하고 포르노 잡지를 나눠보고 연예인 사진을 공유하는 것-들이다. 즉 남북군인들이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나 소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청년에서 소년으로 성장하는 시간을 되감으며 만들어낸 퇴행적 정서였다. 하지만 그들이 현실의 상징적 위치를 재인식하는 순간, 달리 말해 퇴행적 판타지에 냉정한 현실(두 개의 국가)이 개입하는 순간 그 소통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

우리와 적대하는 국가라는 북한의 현실적 위치는 그 반대급부로서의 노골적인 판타지를 통해 합일의 순간을 꿈꾸는 영화적 경향을 낳았다. 북한과 남한이 하나의 이상적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이 판타지에 의존하는 이유는 그것이 무엇보다 상상적 합일을 이끌어내는 데 유용하고, 그런 면에서 이상주의적 성격을 지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천군>(2005), <웰컴 투 동막골>(2005)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인데, 특히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의 경우 이상적 민족공동체를 염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코리안 뉴웨이브(특히 <그 섬에 가고 싶다>)와 유사한 듯하다. 그러나 코리안 뉴웨이브가 남한의 죄를 떠안는 행위를 통해 이를 성취하려 했던 반면 <웰컴 투 동막골>은 오히려 그 죄를 외부의 대상, 즉 미국으로 전가시킨다는 점, 그리고 (민족의 이상적 상태를 알레고리화 하는)동막골 주민들에게 감지되는 ‘무지에의 욕망’이 국가적 대립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도피적 판타지의 궁극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림자전국환 분와 송지원강동원 분 간의 분열을 통해 북한과 남한의 이중적 관계를 보여주었던 장훈 감독의 <의형제>(2010)는 남과 북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 태도에 대해 (그림자의 입을 빌려)‘감상적인 짓’이라 명명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된 타자인 북한에 대해 우리가 포용할 수 있는 폭은 어디까지일까 혹은 우리는 북한에 대해 어디까지 감상적일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다.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2010)에는 학도병의 총구가 북한군 앞에서 망설이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한다. 죽어가면서 어머니를 부르는 북한군인을 마주하는 장면과 학도병에게 총을 겨눈 북한군 병사가 어린 소년임이 밝혀지는 장면이 그것이다. 북한에 대한 호의적 태도는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휴머니즘적 관점과 그들이 우리보다 열등하며 동정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관점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감상적인 짓’의 한계다. 우리는 북한을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 우리가 호혜를 베풀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일 때만 연민과 공감, 응원의 대상으로 여겨 감상적인 짓을 한다. 만약 그들이 우리와 동일한 어른으로 느껴진다면 과연 그 감상적 태도를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겠는가.

내부의 적대를 가리는 북한
하지만 합일된 민족이라는 이상적 판타지가 두 개의 국가라는 엄연한 현실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 때문에 북한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든 간에 한국영화에서 재현된 북한은 어디까지나 상상된 타자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를 위협하는 타자로서 북한을 상상할 때 이는 실재로서의 북한보다는 우리사회 내부의 문제를 전이시킴으로써 이루어지는 상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영화 속 북한은 그에 대한 불안의 직접적 투영이 아닌 우리사회 자체에서 비롯된 대립과 공포, 갈등 등을 그들에게 떠안긴 결과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강제규 감독의 영화 <쉬리>다. 이 영화에서 남한은 소비의 천국인데 다른 한쪽은 생존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쉬리>는 이러한 남북의 대립 속에 박무영최민식 분의 분노를 새겨놓았다. 그런데 이러한 분노가 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사회에 불어 닥친 경제적 위기와는 무관한 것이었을까. 박무영의 분노는 IMF 구제금융 이후 하층계급으로 전락한 계급(또는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시달리는 중산층 계급)의 사회적 분노와 불안, 즉 자신들이 박탈당한 향유를 여전히 특정계급이 쾌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에 대한 우리사회의 계급적 상실감과 무관하지 않다.

다시 말해 남한과 적대하고 있는 국가, 그렇기에 위협세력일 수밖에 없는 북한의 이미지는 (북한과는 무관한)우리사회 내부의 적대와 불안, 공포 등을 위장전입시키기 위한 가장 훌륭한 장소인 셈이다. 북한이 우리사회의 거울인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다. 분단소재 영화전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많은 영화가 우리 내부의 적대, 대립, 갈등을 우리사회와 그 외부인 북한 간의 문제로 전치하고 그럼으로써 북한을 상상된 타자로 완성한다. 즉 내부의 문제가 내부와 외부의 대립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 북한은 우리사회가 통합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위해 또는 통합되어 있다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내부의 분열, 적대, 대립 등을 그 외부에서 떠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영화들은 ‘북한만 제거된다면’이라는 가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합의 판타지’를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포화 속으로의 한 장면

<포화 속으로>는 남한과 북한을 각기 통합과 분열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남한은 계급과 세대의 통합을 일군다. 마치 학원물 영화를 상기시키는 듯한 학도병 내부에서의 분열은 계급적 분열에 가깝다. 가난해서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한 구갑조권상우 분를 오장범최승현 분과 대치시킬 때 학도병 내부의 서사는 계급의 분열을 넘어선 통합의 서사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그 결과는 계급 간의 통합이다. 또 다른 분열의 통합은 세대 간의 대립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면에서 <포화 속으로>는 버림받은 소년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강석대김승우 분를 비롯한 군인들이 학도병들만 포항에 남겨두고 떠날 때 소년들은 홀로 서는 법을 배우도록 종용받는다. 물론 그 결과는 죽음이지만 이는 국가를 위한 죽음으로 포장된다. 현재적 관점에서 봤을 때 <포화 속으로>는 희생자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영화다. 이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간의 갈등에서 88만원 세대로 지칭되는 청년세대에 다시 한 번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동일하다.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탈주체화된 그들은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그 희생을 자신의 몫으로 묵묵히 수용한다. 그럼으로써 분열된 사회는 또다시 통합되는 것이다.

물론 내부의 적대가 외부의 대상으로 전이된 이상,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사회내부의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바람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영화에 있어 북한은 우리사회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가려주는 ‘판타지-스크린’이자 영원한 ‘우방’이었다. 결국 반공 이데올로기의 편집증적 태도의 진실은 간단하다. 그 편집증의 진실은 그것이 맞서 싸우고 있는 위협이자 파괴적 음모 자체에 있다. 달리 말해 <포화 속으로>와 같은 반공영화에서 우리가 북한과 싸운다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그 내부의 적대에 눈감은 채로 그것을 통합의 판타지로 은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영화 속 북한의 이미지 혹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편집증적 진실 중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영화가 북한이라는 거울을 필요로 하는, 그리고 그 거울에 자기 자신을 반복적으로 비추는 궁극적인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