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된 지 삼 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회적기업은 빈곤과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사회정책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시민사회 내에서도 사회적 문제해결을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졌으며, 협동에 의한 대안경제 구축이라는 노력 또한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육성법(특히 사회적기업인증제이하 인증제)이 사회적기업의 취지를 올바로 담고 있는지,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지 재검토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본격적인 검토에 앞서 우선 사회적기업의 의미와 사회적기업 제도의 목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정부에서 운영 중인 사회적기업 홈페이지


사회적기업은 사람 중심의 기업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에서 사회적(social)이라함은 ‘여럿이 함께’, ‘여럿을 위함’이라는 의미다. 기업(enterprise)은 혁신적 수법으로 사업을 일으키는 조직이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은 기업가 전략을 통해 공동체의 집합적 이익을 실현하는 사회경제 조직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회적기업의 경제적 목적은 명백하게도 사적이익(영리)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기업처럼 기업적 속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의 목적 측면에서는 사적이익만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기업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하여 육성법이라는 사회적기업 제도를 검토할 때, 과연 그 법이 사회적기업의 본질적 속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사회적기업의 이상형을 설정하고 그것과의 정합성이 어떠한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유럽의 사회적기업 연구자 드프르니(Jacques Defourny)와 보르자가(Carlo Borzaga)는 사회적기업의 이상형(ideal type)으로 아홉 가지 특성을 제시한 바 있다.1 그들이 제시한 특성들은 상당부분 기업과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여기서 사회적기업의 핵심요건으로 보는 것은 ‘자본소유에 의하지 않은 의사결정’과 ‘제한적 이윤분배’, 이 두 가지다.  

우선 사회적기업은 자본소유에 의하지 않은 민주적 의사결정 원리를 따르는데, 이것은 ‘1인 1표’라는 사람 중심의 운영원리를 구현하는 것이다. 반면 주식회사는 ‘1주 1표’의 원리라는 점에서 소유자 중심이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은 윤리적 경영을 해야 하며, 여러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협동경영의 정신이 구현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제한적 이윤분배를 한다는 것은 사회적기업의 맥락 속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윤분배를 한다는 점에서는 주식회사나 협동조합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사회적기업의 이윤분배는 본질적으로 공동체(community)의 이익을 위한 이윤분배를 의미한다. 여기서 어떠한 공동체를 위한 이익추구인가가 대두될 수 있는데 사회적기업의 공동체는 취약계층의 고용창출, 지역사회 발전 등의 사회적 사명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또한 실천적인 맥락에서 사회적기업 중 상당수는 취약계층의 자립과 자활에 기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득보장을 통해 이들의 경제적 이익에 복무하는 것 자체가 지극히 ‘사회적’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을 통해 사회적기업에서의 이윤분배가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집합적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기업은 이윤을 분배해야 하고 취약계층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기업의 이윤을 제한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제도
사회적기업 제도의 목적은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의 양적·질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속가능성이란 사회적기업이 자신의 사회적 사명을 유지, 개선하면서 이를 위한 경제적 가치창출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목적의 지속성은 고용측면에서 고용기간의 안정성, 적절한 수준의 질적 측면(급여, 보상) 등이 지속되는 것이며, 이와 더불어 사회서비스 제공, 지역사회의 재생, 공동체를 위한 기여 등 자신이 표방하는 핵심 사회적 가치가 유지, 발전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적 가치의 지속성은 정부제도나 시장환경 등 외부변화에 대응하면서 시장을 포함한 다양한 경제영역에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속가능성을 위한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 제도는 제대로 정착되고 있는가.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제도의 성격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을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공급처의 대안으로 2007년 제도적으로 도입되었다. 하여 육성법에서 정의하는 사회적기업이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상거래 활동을 수행하는 영리 또는 비영리조직이면서 인증 받은 기업’이다. 여기서의 구체적인 인증요건이란 ① 민법상 법인·조합, 상법상 회사 또는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 등의 조직형태 구비, ② 유급 근로자의 고용,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 수행, ③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④ 영업활동을 통한 수입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 이상2, ⑤ 사회적 목적 추구 등을 명시한 정관작성 등이다. 

이러한 인증제의 목적은 ‘기본적 요건을 갖춘 비영리조직이나 영리기업을 심사를 통해 선별하여 사회적기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경영컨설팅, 세제지원 등을 제공’하여 지속가능한 자립적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증제는 사회적기업의 설립에 참여하는 주체들에 대한 지원을 전제하는 제도인데 구체적인 정책내용은 대부분 삼 년이나 오 년 이내의 한시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정부의 지원정책은 민간주체들로 하여금 사회적기업 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일자리사업은 민간을 인증 사회적기업에 참여하게 하는 커다란 유인동기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사회적일자리사업은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민간조직에게 그에 대한 종사자 인건비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될 경우,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우선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동안 정부는 사회적기업의 육성 정책을 선별적 인증제에 중심을 두고 시행해왔으며, 그리하여 육성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총 319개의 사회적기업이 인증되었다. 2010년 6월 기준 아직 섣부르게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중앙정부가 2012년까지 1,000개의 인증 사회적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치와 비교하면 현재의 추세는 정부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증제의 빛과 그늘
2007년부터 시작된 인증제가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발전을 촉발시키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우선 이 제도의 시행으로 사회적기업에 대한 대국민의 인식이 확산되었고 시민사회 여러 영역에서 이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예컨대 사회적기업을 공부하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부의 사회적기업 아카데미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은 정부로부터 공신력을 부여받고, 그것은 마케팅과 홍보 등 기업활동을 하는 데 인센티브로도 작용한다. 이렇듯 인증제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온 것이다.

정부의 사회적기업 홍보영상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증제는 인증을 받는 즉시 정부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게 된다는 ‘환상’을 갖게 하는 측면도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흐름에 관해 사회적기업의 가치보다는 오히려 인증을 받는 데만 관심이 국한되어 있다고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정부의 인증제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는데 현행 제도에는 이상적 사회적기업의 관점사회적기업의 질적 발전을 의미과 양적 발전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현행 인증제는 정부의 심사를 전제로 하면서 절차와 단계가 매우 복잡하다. 위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요건의 ‘미로’를 통과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이것은 사회적기업의 양적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Legacoop의 분포도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정부의 인증요건에서 제시하는 요건 중 일부가 ‘사회적기업의 기준’에 미흡하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소유에 의하지 않은 의사결정’이라는 기준이 취약하다. 정부요건에 따르면 주식회사도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에 관한 요건으로는 ‘자본소유에 기반하여 의사결정구조가 이루어지는 주식회사인 상법상 회사의 경우에는 자본구성 측면에서 적절한 주식배분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표 및 가족, 친인척 등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주식지분이 50%를 넘지 않아야 한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유권 통제 기준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의사결정권을 주도하는 측면에서는 현실적으로 49%나 51% 간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해당사자의 의사결정기구 참여에 대한 규정 역시 명확하지 않고 다분히 형식적이다. 현행 규정은 이사회와 같은 최고 의사결정기구뿐만 아니라 조직 내 협의기구, 운영회의 등도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요건의 약점을 활용하는 ‘위장 사회적기업’이나 ‘유사 사회적기업’의 등장에 취약하다. 예컨대 최근 한 온라인 대출회사가 인증 사회적기업이 된 사례가 있다. 따라서 사회적기업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데 있어 윤리·민주적 경영, 사회적 소유 등과 같은 핵심조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의 발전을 위해
사회적기업은 지역사회의 필요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조직이며, 이러한 운동의 발전은 사람 중심의 사회적 경제의 구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기업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적 사명을 갖는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혁신적인 사회적기업가의 활동이 아래로부터 물밀듯이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사회적기업 제도는 사회적기업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작동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제도의 핵심인 인증제는 여러 조건을 충족하는 조직에 지원을 전제로 공신력을 부여하는 선별적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정부의 기준을 충족한 조직만이 ‘(인증)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인증 사회적기업이 채 300여 곳에 불과하다는 점만 보더라도 현행 인증제가 사회적기업의 양적 확대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좀 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진입할 수 있는 ‘등록제’와 같은 방안이 필요하다. 예컨대 시장경제의 주역인 주식회사와 같이 법인격을 부여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등록제에서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소유, 민주적 의사결정에 실질적 참여와 같은 요건을 갖추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제도적 차원에서 사회적기업 등록제는 핵심요건을 갖춘 조직(또는 사람)은 누구나 법인격을 취득하여 사회적기업 운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등록제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사회적기업에게 독립적인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이탈리아의 ‘사회적협동조합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1991년에 제정되었으며, 현재 이탈리아에는 약 7,000여 곳 이상의 사회적기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영국은 이탈리아와 달리 기존 회사법에 사회적기업에 관한 핵심요건을 반영하여 공인된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지역공동체회사제도(CIC)다. 이 제도는 상법상회사가 사회적기업으로 등록하려고 할 경우, 자산동결(asset-lock) 조치를 취하게 한다. 이러한 자산동결 조치는 상법상회사에게 사회적기업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면서도 영리목적 추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방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기존 인증요건에서 사회적 목적의 범위를 확대적용하는 방식으로 인증 사회적기업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2010년 개정된 인증요건지침에는 기존의 ‘기타형’을 ‘지역사회공헌형’으로 분류하고 여기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경우나 특정 빈곤국가 개발을 하는 경우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처럼 인증요건의 완화로 사회적기업의 확대가 이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도 도입과정에서는 민간의 역량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여 ‘보편적인 등록제’가 위험하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고 이에 따라 인증제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인증제 시행 삼 년이 경과한 현 시점에서야말로 사회적기업 등록제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경제의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전 사회적으로 참여하고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법상회사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듯이 사회적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사회적기업에게도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으랴’라는 속담이 있듯 사람 중심의 경제를 위해 ‘작은 우려’는 감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