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1949년 프랑스 소설가 시몬 드 보브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의 『제2의 성Le Deuxime Sexe』에서 나온 말이다. 여자로서 태어나는 것보다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여성에 대한 깨달음의 외침이다. 그런데 이 외침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근대화 계획에 따라 여성의 출산을 통제하고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위해 그들을 노동력 생산의 일꾼으로 재편한다. 여성에게는 집안에서 아이를 낳고 양육하면서 남편을 내조하는 현모양처의 역할에 사회의 일꾼으로서 경제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로서의 삶이 첨가된 것이다. 그러면서 집안의 일과 집밖의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슈퍼우먼 신드롬을 주입시킨다. 더불어 여성은 생산과 양육 그리고 경제활동의 중심이라며 국민으로서 여성의 역할 또한 강조하기 시작한다. 집밖의 일과 집안의 일을 양분하여 집안일은 노동의 개념에서 벗어난 의무이며, 집밖의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자본주의 근대를 살아가는 국민으로서의 책임임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가정의 ‘밀실’과 사회의 ‘광장’에서 바쁜 여성들을 위한 전시회가 열렸다. 다중적 역할을 한 여성들의 면모를 과거에서 현재까지 만날 수 있는   <워킹 맘마미아展>이다. 이번 전시에는 “역사 이전 신화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과 가정을 통합적으로 수행해온 수많은 여성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를 보고자 한다”라는 기획 하에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작가 7인이 참여했다. 김인순 <태몽>, 류준화 <설문대할망과 자청비>, 박영숙 <화폐개혁프로젝트>, 윤석남 <블루 룸>, 윤희수 <생명력 2010>, 이피 <웅녀, MY shrine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 정정엽 <생명을 보듬는 팔> 등 각기 개성 있는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우선 감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생명을 창조하는 여성의 위대함과 자연과의 조화와 질서로 생존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설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인 자청비(自請妃)와 설문대할망, 바리공주, 그리고 웅녀(熊女)가 현대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자청비와 설문대할망은 검은 획들로 표현된 머리카락으로 하늘과 땅을 통일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위대한 여성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바리공주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블루 룸에 오롯이 앉아 자신만의 선택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웅녀는 곰에서 인간으로 변신하는 중이었다. 곰의 몸통에서 여성이 일어나 있었고, 빛으로 표현된 머리가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김인순, <태몽>(2009)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넘어선 바리공주와 농경의 신 자청비, 그리고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과 환웅(桓雄)을 낳은 웅녀. 이들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어서고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거대한 생명의 힘이다. <태몽 09-4>, <태몽 09-2>에서 우리는 우주의 에너지를 몸에 담은 자연과 생명의 조화를 경험한다. 그러나 생명을 보듬는 팔은 탄생의 위대함을 넘어서 여성의 풍부한 감수성으로 성장한다. 투명한 천에 그려낸, 생명을 보듬는 날갯짓은 승천을 꿈꾼다. 그러나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 이피, <웅녀, My shrine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마른오징어 수백 개를 가지고 만든 여성의 몸은 냄새로 금기시되었지만 그것이 거룩한 생명탄생의 과정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생명력 2010>은 여성의 삼단 같은 머리털을 상징하듯 35m로 길게 꼬여있다. 그런데 소재가 검정비닐이다. 풍성함과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은 우리가 장을 볼 때 쓰는 검정비닐이다. 신화 속에 위대한 여성의 창조성과 상상력은 지금 일상에서의 일과 생활로 이어진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언제나 열심히 ‘살림/살려냄’을 실천해온 여성들. 그런데 이 여성들은 언제나 사회구조 밖에 있었고 항상 소외당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화폐개혁프로젝트>는 새로운 화폐를 보여준다. 삼신할머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 나혜석(羅蕙錫, 1896~1949)까지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았던 여성들을 화폐인물로 그려낸다. 위대한 여성선조들에 대한 후대인들의 자그마한 선물이다. 
아들을 생산하는 여자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또 소비하는 주체로, 여성들은 사회구조 안에서 끊임없이 재편된다. 그러나 이 사회의 권력구조 안에서 여성은 언제나 소외되어 있으며 성(性)으로 대상화하거나 소비적인 주체로만 인식될 뿐이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발달할수록 그것은 더욱 더 정교해지고 내밀화된다. 이런 점에서 전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여성의 힘과 상상력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워킹 맘마미아展> 포스터

이미지 제공_ 여성사전시관
金明姙 1966년 서울생. 인하대, 경인교대 강사. 최근 글로 「신여성이 누구입니까」 등. youna10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