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세계미술의 진주, 동아시아展>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동남아시아와 한국의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다. 주로 한중일 삼국 체제로 묶음 짓던 우리의 아시아 인식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에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근대화와 서구화 사이에 등호를 긋고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세계의 주목할 만한 지점이 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서구라는 대타자를 설정하고 동북아라는 형제 속에 아버지의 법을 우상화하던 문화적 발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양성’과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 즉 울퉁불퉁한 조개 속에 숨겨져 미처 알지 못했던 매끄럽고 빛나는 진주를 발견하는 일이자 범(汎)아시아 속의 한국미술을 자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그 안에서 충돌하고 융합될 수밖에 없는 개인을 부각시키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먼저 태국의 농촌에 프랑스 근대명화를 걸어놓았을 때 농민들이 가지는 낯선 기분과 느낌을 담아낸 아라야 라스자름레안숙(Araya Rasdjarmrearnsook)의 작품이나 파리(Paris) 시내를 보따리가 쌓인 마차를 타고 천천히 가로지르는 김수자의 작품 등은 아시아인과 서구의 마주침에서 좁혀질 수 없는 타자성과 소통의 어긋남을 드러낸다. 또 미안마의 코 아웅(Ko Aung)은 흑과 백의 바탕과 인물이 교차되면서 그 안을 관통하는 차이와 잣대의 모호함에 대해 꼬집고 있으며, 평범한 소시민의 얼굴을 확대하여 인체 그대로의 ‘개인’과 그들 안에 드리운 역사의 서글픔을 보여주는 태국의 마니트 스리와니치품(Manit Sriwanichpoom)의 사진작업은 아시아에 드리워진 소외의 개념을 재고하게 한다.
한편 아시아인의 일상이 가진 동양 속의 동양, 또 우리 속의 우리의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 눈에 띠는데 작가 뮌의 작품은 한국 속에 스쳐지나가는 동남아시아의 게슈탈트(Gestal)형태심리학의 중추개념를 구체적 시선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에서 풍경을 삭제해 익명의 개인이 가진 작은 모습 하나하나를 정지된 시네마토그래피(cinematography)영화촬영에 있어서의 기법처럼 표현한 필리핀의 아나딩 포클롱(Anading Poklong)의 작품은 사소한 공통의 순간에서 기화되는 자아와 타자의 자리를 보여준다.

김수자Bottari truck migrateur(2007)

서구를 떠난 로컬리즘(Localism)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이후의 일로 그간 소수문화에 대한 지평은 조금씩 확대되었고, 이 흐름에서 가장 주요한 핵심은 억압이라는 정치성에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지속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다양성과 다문화라는 개념은 소수정치의 구호에서 한발 물러난 상태로, 뚜렷한 차이와 스며드는 사이 모두에 주목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 초대된 작품들은 미시적인 개인의 부각과 이를 통한 ‘작은 역사’의 부활을 언급한다. 즉 피부로 느끼는 사소함 속에 드리운 현재의 아시아에 대해 성찰적 시선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레인보우 아시아(Rainbow Asia)라는 모토가 잘 보여주듯 조화와 균형, 소통과 이해의 활bow이 긋는 이상적 의미와 이를 자각하는 동아시아의 상호 텍스트가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아라야 라스자름레안숙4 works in the 2 planets series(2008)

이제는 흔한 텔레비전 속 다문화 가족,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제 ‘우리 사이의 정치학’이 주요한 이슈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미술계에서 다소 소극적이던 동남아시아 미술을 소개하고 이들과의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단지 동아시아 미술을 체험하는 것을 넘어 이들의 시학 속에 비쳐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하겠다.

세계미술의 진주, 동아시아展 포스터

이미지 제공_ 한가람미술관
具娜延 1976년 서울생. 미술평론가. 2008년 제1회 플랫폼 미술비평상 당선. 최근 글로 「만화는 어떻게 미술을 삼켰나」, 「미술과 패션의 이중나선」 등. wertlo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