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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문을 닫는 방법
통권 : 25 / 년월 : 2011년 1,2월 / 조회수 : 2479
<플레이밍 립스 내한공연>(AX-KOREA, 2010.11.20) vs.<욘시 내한공연>(AX-KOREA, 2010.11.29)

이제 누가 와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다. 페스티벌을 통해, 연중 펼쳐지는 내한공연들을 통해 꿈에서나 그리던 록스타들을 줄줄이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모든 공연에 티켓을 사서 다니려면 일 년치 원고료를 꼬박 털어도 모자라는 날이 조만간 올지도 모르겠다. 전체 공연시장에서는 연말인 12월이 대목이라지만 애호가들에게 있어 2010년의 대목은 11월이었을 것이다. 13일에는 뮤(Mew)덴마크 출신의 록밴드, 20일에는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 29일에는 욘시(Jonsi)가 각각 한국을 찾았다. 거의 일주일에 하나 꼴이다. 이 세 밴드의 내한은 보다 예술지향의 혹은 인디(Indie)지향의 뮤지션들까지 찾을 정도로 국내 공연시장의 지평이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아예 메이저도 인디도 아닌, 즉 메이저 직배사에서 발매는 되지만 애호가들을 제외하고는 큰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는 뮤지션들을 여기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애호가는 신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세 팀 모두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AX-KOREA)에서 공연을 펼쳤다. 내한공연이 주로 열리는 올림픽공원의 체육관들이 대거 개·보수에 들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세 개의 공연에서 순위를 매기라고 하면 1위는 단연 플레이밍 립스였다. 이 공연을 운 좋게도 댄서의 자격으로나마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긴장을 멈출 수 없었던 탓도 있다. 무대에 입장하기 전에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고, 넋을 차릴 틈도 없었다. 사실 꿈을 꾼 것 같았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2,000여 명의 관객들 모두 그렇지 않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공연을 펼친다는 소문이 현실로 입증된 두 시간이었다. 미국 오클라호마(Oklahoma) 출신으로 1986년부터 지금까지 10여 장의 정규앨범을 낸 그들은 미국 인디록의 대부다. 사이키델릭(Psychedelic)을 기반으로 동화 또는 만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몽환적 음악이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런 큰 틀을 기반으로 그들은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해왔다. 그 자유로움이 무대에서도 그대로 표출된 공연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에게 모습을 보여주는 뮤지션은 없다. 신비감의 극대화와 이에 대한 해소를 위해서다. 하지만 플레이밍 립스는 그 전에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몇몇 주의사항을 보컬이자 리더인 웨인 코인(Wayne Coyne)이 직접 설명했다. 딱 거기까지가 현실이었다. 그리고 꿈이 시작됐다. 두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현실로 돌아올 수 없었다. 불이 꺼지고 무대 뒤편을 가득 채운 LED에 영상이 들어왔다. 그 안에서 멤버들이 하나하나 등장했다. 무대 뒤에 있던 수백 개의 거대한 풍선이 객석으로 뿌려졌다. 투명한 풍선 속으로 들어가 관객들의 머리 위를 한 바퀴 걸어서 돈 후 무대로 돌아가는 웨인 코인의 모습은 물 위를 걷는 예수보다 신비로웠다. 최근 앨범인 《엠브리요닉Embryonic》(2009)의 수록곡을 기반으로 그들은 사이키델릭 퍼레이드를 펼쳤다. 밴드의 사운드는 관객들의 무의식으로 작렬했고 나체의 여인을 테마로 한 영상은 시각적 황홀경을 펼쳤다. 웨인 코인이 쏘아 올리는 종이폭죽, 때리면 불이 들어오는 차이나 심벌(China Cymbal), 레이저가 나가는 초대형 장갑 등이 중간 중간 투입되어 기승전결(起承轉結) 아니 전(轉)만으로 가득한 박진감을 선사했다. 첨단이나 정교함 같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리 큰돈이 들어간 것 같지도 않았다. 객석을 가득 메운 풍선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하겠는가. 무대를 도배한 오렌지색 또한 종이테이프로 덕지덕지 발라 만든 것이니 역시 얼마나 하겠는가.(물론 레이저 장갑은 꽤 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장난감 소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재료들로 만들어낸 그들의 무대는 그래서 카툰 판타지(Cartoon Fantasy)이자 궁전급의 놀이방이자, 세계레크레이션대회 결승전이었다라고 할까.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의 영화에서나 볼법한, B급 상상력의 결정판이었다. 왜 공연을 듣는다하지 않고 본다 하는지 그들의 공연을 통해 명쾌히 설명되었을 것이다. 예습은 무의미했다. 그들의 음악을 단 한 곡도 들어보지 못했을지라도 빠져들고 환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여 그들의 공연은 콘서트나 쇼보다는 퍼포밍(Performing)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플레이밍 립스 내한공연> 포스터(좌) / <욘시 내한공연> 포스터 (우)


무대 위에서 보고 들었던 객석의 반응 역시 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시종일관 울려 퍼지는 객석으로부터의 함성은 고막을 찢을 기세였다. <요시미 배틀즈 더 핑크 로보츠 파트 원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 Part 1>, <두 유 리얼라이즈??Do You Realize??>와 같은 대표곡들에서 울려 퍼지는, 라이브의 하이라이트이자 참맛이라 할 떼창다수의 인원이 같은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행위은 말 그대로 전율스러웠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사람은 형광등 아래서 살 수 없고 함성의 주인공이 되어 본 사람은 일상의 소리 안에서 살 수 없다고 음악계에 몸담았던 여러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설마 했다. 그리고 겪어보았다. 그것은 진짜일 것이다.
비록 플레이밍 립스를 1위로 꼽았지만 욘시가 1위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만약 욘시가 솔로가 아닌 자신의 밴드이자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로 왔다면 압도적인 1위를 했을 것이다. 2008년 10월 해외에서 그들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공연을 보기 몇 주 전에는 역시 일본에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공연을 보았다. 두 개의 해외공연 관람일정을 앞두고 기대치는 라디오헤드가 높았다. 국제적인 위상 혹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소문이 자자한 라이브에서의 감동 때문이었다. 실제로 보니 기대를 채우고도 남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보게 된 시규어 로스의 공연은 가히 기대 이상이었다. 당시의 감흥에 대해서 나는 ‘라디오헤드가 죽기 전에 꼭 한 번 봐야할 밴드라면 시규어 로스는 살아있다면 꼭 한 번 봐야할 밴드’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러한 감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욘시의 목소리와 음악세계는 이번 내한공연을 통해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하여 욘시가 2위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넉 장의 정규앨범을 발매한 시규어 로스에 비해 한 장의 솔로앨범으로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가 적었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닫힌 것은 공연장 입구뿐만 아니었다. 현실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신화의 문이 열렸다. 서구의 평단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태아의 옹알이’라 표현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태고의 빙하에서 녹여낸 목소리였다고 할까. 문명이 시작되기 전 인류가 자연현상에 대해 느꼈을 원초적 경외감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흘렀다. 과연 국민의 80%가 요정의 존재를 믿는다는 아이슬란드의 뮤지션다웠다. 보통 공연의 흐름이란 차분하게 시작해서 서서히 댄서블(danceable)하거나 로킹(rocking)한 세계로 정점을 찍기 마련이다. 욘시 역시 정(靜)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동(動) 따위가 아니었다. 댄서블한 노래들은 공연 중간에 연달아 선보였다.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혼(混)이었다. 모든 것이 섞여있되 어지럽지 않은, 코스모스(Cosmos)의 흥분이었다. 사이키가 터지고 눈보라가 흩날렸다. 북유럽 신화의 신이 강림해서 공연장 주변에 오로라를 드리웠다라고 해도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모두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 나온 그의 솔로앨범에 열광한 것은 일반애호가들뿐 아니라 뮤지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반응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이적, 김동률, 정재형을 비롯하여 많은 뮤지션들도 욘시의 황홀한 공연을 지켜봤다. 최근 내한공연 중 가장 많고 다채로운 층의 뮤지션 관객이었다. 플레이밍 립스의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둘의 공연을 본 뮤지션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만약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공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것 같다. 현대음악 산업에서 공연은 점점 모든 미디어아트의 종합적 결과물이 되고 있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러 장르를 어떻게 엮느냐가 고민의 대상이 된다. 그 고민에 대한 모범답안이 플레이밍 립스와 욘시의 공연 속에 있었다. 영화에서 미술과 음악 등이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충실하듯 공연에선 다른 부가적 요소들이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음악을 공감각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의 의미가 무엇이고 나아가 음악이 창출하는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뚜렷한 콘셉트가 있었기에 그들의 공연은 화려하되 산만하지 않았다. 엄청난 영상과 장비가 투입되었지만 음악에의 몰입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것이 뮤지션 개인의 역량만으로 가능했던 지점은 아닐 것이다.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하나의 공연을 위해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이를 크로스오버(crossover) 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한 환상의 시간일 것이다. 한국에는 그런 인프라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영감이 예전과 비할 바 없이 폭주하면서 우리에게도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통섭할 것인가. 그것은 플레이밍 립스, 욘시의 내한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은 뮤지션들이 풀어야 할 몫이다. 더 멋진 공연을 만들기를 꿈꾸는 이들도 함께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욘시(좌) / 플레이밍 립스(우)

이미지 제공_ 민트페이퍼, 프라이빗커브
김작가필명 1975년 서울생. 대중음악평론가. 최근 글로 「침묵의 고성」 등. noisepop@hanmail.net




#저자 약력
1975년 서울생.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
글쓴이 : 김작가(본명:김성민)
작성일 : 201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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