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ノルウェイの森)원제 노르웨이의 숲』가 영화로 재탄생하여 2010년 12월 11일 일본에서 개봉되었다. 무라카미는 세계적인 지명도로 치면 단연코 현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2010년 노벨문학상은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가 차지하였으나 무라카미 역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바 있으며, 언젠가는 그가 노벨문학상을 손에 넣으리라 기대하는 일본인들도 많다. 그런 그의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단연 1위로 꼽히는 『상실의 시대』가 일본인이 아닌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영화감독 트란 안 훙(Tran Anh Hung)의 손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사실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우연일 테지만 영화 <상실의 시대> 개봉 직전인 2010년 10월 20일부터 12월 12일까지 카마쿠라(鎌倉) 문학관에서는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展>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카와바타로 말할 것 같으면 1968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인물이며, 미시마는 카와바타나 타니자키 쥰이치로(谷崎潤一?, 1886~1965)와 함께 해외에서 번역된 작품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와바타와 미시마가 전(前) 세대의 일본문학을 대표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로 지금 그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카와바타 야스나리(좌)와 미시마 유키오(우)

<카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전>은 카나가와(神奈川) 현 카마쿠라 시에 있는 카마쿠라 문학관의 개관 25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전이다. 이 두 작가와 각별한 인연을 지닌 카마쿠라는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부터 황혼을 보낸 지역인데다, 미시마 유키오 만년의 명작 『봄의 눈(春の雪)』에 등장하는 저택의 모델이 된 구(舊) 마에다 후작가(前田侯爵家)의 카마쿠라 별장이 바로 지금의 카마쿠라 문학관이 되었다는 유대도 있다. 또한 올해는 미시마가 세상을 떠난 지 꼭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초창기 미시마가 발표했던 단편들을 선배작가였던 카와바타가 한데 모아 잡지에 추천한 이후, 깊어진 두 사람의 우정과 그 흔적을 회고하는 전시회가 다름 아닌 카마쿠라에서 기획된 연유도 바로 이것이다. 전시는 1946년패전 이듬해에 이루어졌던 당시 47세의 카와바타와 31세의 미시마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하여 1968년 카와바타의 노벨문학상 수상 그리고 1970년 미시마가, 그로부터 2년 뒤 카와바타가 각각 자살로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의 4반세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전시회에는 1979년 데뷔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등장하지 않는다. 비로소 세 사람 사이에 이토록 머나먼 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는 지점이다.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 미시마 유키오는 『파도소리(潮?)』라는 걸작 청춘소설을 썼는데 두 작품 모두 여러 차례 영화화되어 각 시대의 내로라하는 여성 아이돌스타들이 앞 다투어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는 했다. 이와 같이 그들은 문학에 정통한 일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친근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중 카와바타는 『설국(雪國)』, 『종이학(千羽鶴)』, 『고도(古都)』 등 일본 특유의 계절감 짙은 풍경과 전통을 다채롭게 표현한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한편 미시마는 그리스와 유럽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가로도 유명하나, 『근대능악집(近代能樂集)』능악이란 일본의 전통가면 음악극을 의미, 『금각사(金閣寺)』, 『새벽의 사원(?の寺)』 등 능악이나 불교와 같은 동양적 요소가 짙은 소설들을 발표하여 서양에서도 그 명성을 떨쳤다. 게다가 미시마는 군복을 입고 할복자살하였으며, 카와바타 역시 가스를 이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두 사람의 인생과 그 작품들이 외국인들로 하여금 후지산(富士山), 게이샤(藝者), 절, 할복자살과 같은 일본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를 불필요하게 조장한 면도 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한편 카마쿠라는 교토(京都), 나라(奈良) 지방을 잇는 13~14세기 일본의 정치적 중심지이자 고도(古都)로서 절이나 신사와 같은 명소와 터가 많다. 따라서 카마쿠라에서 이들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것은 그들과 일본전통 사이의 단단한 매듭을 한 번 더 강조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카와바타의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강연이 「아름다운 일본의 나(美しい日本の私)」라는 주제로 열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인데 일본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세계로 발신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존경받기에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널리 이름을 알렸던 1960~1970년대 당시 일본은 이미 근대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여전히 그들을 통해 ‘게이샤’와 ‘할복’의 나라라는 오해 섞인 이미지가 증폭되고 있었다. 그들의 창작과 인생을 전체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버리는 일본 문학애호가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번 카마쿠라 문학관에서 전시한 카와바타, 미시마의 원고와 친필서한 등을 보고는 오랜만에 그들에 대한 반반의 애증(愛憎)이 되살아나고 말았다.
한편 1970년대 초반이라는 두 사람의 말년은 시대의 전환점과 꼭 맞물려 있기도 한데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당시 서양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1960년대 말 학생운동 등의 사회운동이 절정에 치달은 데 대한 반동으로 1970년대에는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시대가 도래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1945년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주축으로 민주화를 꾀하였으며, 사회주의에 심취한 학생들이 미일안전보장조약(美日安全保障條約)미국과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규정한 조약에 반대하여 학생운동이 융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찬동하지 않았던 미시마 유키오는 전수방위(?守防衛)를 내건 일본의 자위대를 헌법개정에 의해 국군(國軍)으로 격상하자는 주장을 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하자 자결을 택했다. 이에 반해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과격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나 펜클럽을 중심으로 평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중국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즈음하여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옹호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 패전부터 1960년대까지의 정치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인 셈이다.

그러나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세상을 등진 바로 그 해, 어느 신(新)우익단체가 내부 분열하여 서로 죽고 죽이며 처참하게 싸웠던 연합적군사건(聯合赤軍事件)이 일어나 일본의 정치운동시대는 그대로 종말을 고했다. 이후부터 미일안전보장조약과 같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경제부분에 보다 중점을 두자는 분위기가 퍼졌다. 그런데 미시마 유키오보다 열 살 아래며, 카와바타를 이어 1994년에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차지한 오에 켄자부로(大江健三?)는 이러한 정치시대가 막을 내린 후에도 정치적 주제를 줄곧 다루며,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廣島)에 주목하여 반핵(反核)을 강하게 주장했다. 카와바타와 미시마가 일본을 대하는 방법과는 달랐으나 그 역시 패전국,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각도에서 일본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번 전시에서는 카와바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그의 전보가 진열되었다)
그러나 미시마 유키오보다 스물네 살이나 어리고 일본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1980년대에 작가로서 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앞서 말했던 세대와는 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미국문학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풍(作風)은 어딘가 국적이 모호하다는 느낌을 준다. 소비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고유의 전통이 사라져가던 과거의 모습이 무라카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작품의 번역서를 보면 서양인들의 시선답게 지극히 동양적인 디자인을 띄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 내용자체는 오히려 비(非)일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은 무국적(無國籍)이므로 일본 내에서는 국경을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그는 해외에 체류하는 기간이 긴 만큼 본인이 의식적으로 일본의 전통과 거리를 두려 한다는 인상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가 트란 안 훙이라는 해외감독의 지휘 아래 영화로서 또 우연히도 <카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전> 직후 개봉하는 것이다.
카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에는 ‘전통으로, 세계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만약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하여 같은 식의 전시회를 연다고 가정한다면 ‘세계로’라는 주제에는 끼워 맞출 수 있어도 여기에 결코 ‘전통으로’라는 문장을 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이를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났다고 기뻐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전통이라는 국가의 고유성을 잃었다고 슬퍼해야 할 것인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카와바타와 미시마에 대한 감정을 애정인지 미움인지, 아니면 앞서 말했듯 반반의 애증인지를 좀처럼 단정 짓지 못하는 나의 모습과도 꼭 닮아있다.

사진 제공_ 카마쿠라 문학관
번역_ 崔盡娥 인천문화재단 홍보출판팀 행정인턴
円堂都司昭 1963년 일본 치바(千葉)생. 문예·음악평론가. 최근 글로 「독자라는 원점으로의 회귀」 등. endingendless@nif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