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1999)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가히 쿠바발(發) 음악 쓰나미라 할 법했다. 영화는 카리브 해(Caribbean Sea)를 ‘소리바다’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섬으로 고립되었던 쿠바를 ‘음악의 섬’으로 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명의 음반과 듀엣을 이루며 여러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분명 쿠바음악과 쿠바 내지는 쿠바혁명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를 산출·유포시켰다. 혁명의 피델리티(Fidel-ity)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와 피델리티(fidelity)의 중의적 표현와 체볼루션(Che-volution)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와 레볼루션(revolution)의 합성어의 퇴조, 낡아빠진 현악기 같은 건물들, “서러운 악보처럼” 혹은 지난 시대의 부유물처럼 떠도는 사람들, 떠도는 기억들. 그야말로 몰락 이후의 폐허의 이미지를 엮어냈다.
그럼 본격 “연애다큐” <쿠바의 연인>은 어떤가. 처음부터 춤, 음악, 아바나(Havana), 말레콘(Malecon) 해변을 포석(정석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처럼 깔고 시작하는 영화는 언뜻 보기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도입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두 영화가 고사(枯死), 자폐, 정체(停滯), 결핍으로 충만한 쿠바의 이미지를 어슷비슷하게 담아내긴 하지만(경우에 따라서는 극히 파편적이고 편파적으로 보이겠지만) 의도와 태도(에 따른 정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이를테면 전자가 도시와 풍경과 내면으로 파고들기보다는 바라보기와 거리두기를 고집하며 슬럼독(Slumdog)처럼 아바나를 배회한다면, 후자는 피사체와의 거리를 제거하고 현실과 의식에 카메라를 밀착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적과의 춤(Dancing with the Enemy)을 실연하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속의 카메라가 멀찍이 떨어져서 최소한의 몸놀림으로 소심한 사이드스텝만 밟는 반면, “쿠바에 미친 여자”는 타자를 향해 경쾌한 탭댄스를 추며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틀림없다. 쿠바 혹은 쿠바인의 속살에 대한 이런 끌림과 애착이 자전적 연애사(연애 비디오 다이어리)를 밑절미로 깔고 있는 이 ‘에세이식 사적 다큐멘터리’에 남다른 정치성과 시선의 객관성을 부여했으리라. 쿠바에 부착된 낭만적인 아우라를 털어내고(정작 영화의 홍보 및 마케팅 전략은 거기에 묻어가는 경향이 강하지만) 쿠바의 실체를 대면하겠다는 감독의 의도와 의욕이 돋을새김 된 부분은 애니깽 후손들이 등장하는 장면일 게다. “두려움”과 “감시” 탓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들은 대놓고 분노를 표출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반듯함에 구애받지도 않거니와 초월의 포즈를 취하거나 빈자의 미학을 두둔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절망의 제스처도 희망의 제스처도 없다.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쿠바식 사회주의와 부권적 카스트로체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진술은 대게 수긍과 비판, 결핍과 욕망 사이에서 진동한다. 예컨대 망명할 의사가 전혀 없는 루드밀라는 무상교육에 안도하고 쿠바혁명의 대의에 선뜻 동의하면서도 음악교육의 획일성을 꼬집고 ‘평등한 가난’에 얽힌 불만을 연신 토로한다. 쿠바혁명이 “폐쇄적이고 경직되었기”에 “변화와 진화”를 이루지 못한다며, “혁명이 스스로를 혁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아예 “혁명은 없다”라고 단언한다.

영화 <쿠바의 연인> 포스터

 
 뿐만 아니라 영화는 수입된 생필품과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국영 달러상점, 암시장, 농민들의 농산물 직판장, 최저 생계비를 밑도는 월급, 각종 생필품 부족현상으로 대변되는 쿠바의 이중경제 체제의 환부를 예리하게 도려내 보여준다. 아울러 루벨의 말마따나 “유토피아”가 되어버린 외국여행, 인터넷 사용의 제약, 뇌물과 부패, 감시와 질투, 부업(양돈), 관료주의의 비효율성과 무책임 등의 문제를 죽 훑는다. 비록 선택적 나열에 그친다는 혐의가 짙고, 그 또한 전적으로 새롭다 하긴 어려워도 발랄하게 연출되고 경쾌하게 편집된 이들 묵직한 소재들은 이 “염장 블루스”에 독특한 리듬을 부여한다. 설렁설렁 말하자면 영화는 연애라는 바탕 이야기에 쿠바의 실상과 한국사회의 모순(속도와 소비 신화, 비정규직 해고를 둘러싼 이랜드 파업 사태, 편견, 종교적 배타성)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시키는데, 이 또한 영화의 큰 매력이다. 왜냐하면 밖을 보며 안을 읽는, 즉 우리사회가 지닌 결핍과 과잉의 문제를 찬찬히 톺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테니까. 여기에 더불어 피처링 격으로 참여한 베니 모레(Benny More, 1919~1963)와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쿠바출신의 뮤지션는 영화의 이음매 구실을 하는 애니메이션만큼이나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한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가 한인 3세에 거의 국한되어 있고 세 번에 걸쳐 상당한 기간 동안 쿠바에 체류한 것 치고는 또 카메라가 너무 게을러 보이고, 게다가 그마저도 줄곧 아바나를 맴돈 탓에 영화가 ‘아바나의 연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의외로 번역의 오류가 많다는 점은 이 영화의 숨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어쨌거나 음색이 서로 다른 두 악기가 연주하는 이 ‘아바나 블루스’는 마주보며 페달을 밟는 텐덤 자전거를 연상시킨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격렬하게 서로를 향해 페달을 밟아야 하는, 차이들이 연애하는 방법, 쿠바남자와 한국여자의 연애가 “혁명”인 까닭.

이미지 제공_ 시네마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