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서릿발 같은 전설들을 우리의 눈에 휘갈겨 남겨 놓았으며,
번쩍이는 장시의 시편들을 정복 불허의 공간에 내다 걸었다.
- 하트 크레인(Hart Crane, 1899~1932), 『다리The Bridge』 중에서

대중음악이 ‘무엇을 구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유효하지만 최근 들어 원론적 논의-구현되는 무엇의 선결성-로 기우는 양상이다. 그나마 최근에 이 논의에 포함시킬 수 있는 아티스트라면 ‘장기하와 얼굴들’이라 하겠는데 <싸구려 커피>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대중음악에서 우선적으로 평가해야 할 요소가 ‘의미’인가, 의미를 구현하는 ‘재료’인가 아니면 음악을 수용하는 ‘대중’인가 하는 세 가지 척도의 대립에서 빚어졌다.1 의미의 중요성에 무게를 둔 쪽은 <싸구려 커피>가 낙오자 정서에 함몰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재료와 대중에 집중하는 쪽은 1980년대 국산 록(Rock)의 자생적 표현방식을 계승했음에, 그리고 기존의 가요들이 88만 원 세대들에게 선사하지 못했던 적확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고 있다는 데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현재 ‘지속가능한 딴따라 질’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던 붕가붕가레이블은 왜 일본 아티스트들의 라이선스(license)에 주력하는가? <싸구려 커피>가 선사한 카타르시스의 원천인 ‘우리말 가사’와 발군의 소리꾼 장기하를 더 이상 벤치마킹하지 않겠다는 이 레이블의 무모한(혹은 현명한) 제스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싸구려 커피>가 지닌 의미의 한계성으로 인해 과연 88만 원 세대들의 전락(轉落)은 가속화 되었나? 국산 록음악은 과연 독자적인 표현양식을 완성해 가고 있는가? 88만 원 세대들은 왜 또 다른 장기하를 찾지 않고 아이돌그룹에 현혹되는가? 그리고 위의 논의들이 재점화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장기하와 얼굴들

아폴로18

쫀득쫀득 귀에 달라붙는 가사는 단 한 줄도 없을뿐더러 록의 장르적 양식들을 취사 혼합한 거대한 콜라주(collage) 같은 연주, 그리고 오늘의 팍팍한 현실 대신 밤하늘의 별자리를 쫓는 ‘아폴로 18’의 음악을 논하기 위해 장기하와 얼굴들을 지나온 것은 괜한 짓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로호의 발사실패는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대한민국의 일상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버브(The Verve)의 <비터스윗 심포니Bittersweet Symphony>가 자신들의 곡 <라스트 타임Last Time>을 표절했다며 소송했던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이지만, 정작 그들은 <라스트 타임>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인 스테이플 싱어즈(Staple Singers)의 <디스 메이 비 더 라스트 타임This may be The Last Time>에 대해서는 단돈 1달러도 지불하지 않았던 사례. 이를 활용하면 지드래곤의 표절시비에 창의적인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겠다. 지금 누군가는 버스 안에서 <싸구려 커피>를 듣고 있을지도, (장기하가 졸업한 대학 출신의)과학자가 새로운 나로호를 만드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도, <싸구려 커피>를 불법으로 다운받은 어떤 중학생은 고소장을 받아 쥐었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 토크(Girl Talk)2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쪼개고 이를 재조합해서 새 앨범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지적 논의와 근시안적인 결론도출은 대중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오늘의 인류에게도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기에 아폴로 18호3의 항해를 앞두고 장기하와 얼굴들을 점검해보는 수고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국 포스트록의 잃어버린 고리는 어디에

마치 아무런 진화 역사도 없이 그곳에 그냥 심어진 것만 같다. 그렇지만 온갖 부류의 진화론자들도 그것이 그저 화석기록의 커다란 빈틈이라고 믿는다.
-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중에서

아폴로 18의 데뷔작 《더 레드 앨범(The Red Album)》을 처음 듣고 그 누가 ‘그냥 심어진’ 것처럼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일주일 만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창조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처럼 국산 포스트록(Post-Rock)은 ‘진화’를 거친 것이 아니라 ‘이식’(혹은 ‘수입’)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인류가 다른 종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터키국민의 수치51%와 비슷하다) 마치 캄브리아기에 대부분의 중요한 화석이 발견되는 것처럼 최근 몇 년간 국내 포스트록 밴드들의 앨범이 대거 발매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홍대 인디 씬(Indie Scene) 초기부터 현재의 포스트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슈게이징(Shoegazing)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의 하위 장르 밴드들이 존재했다. 다만 그들의 음악은 레코딩되지 못했고, 그 당시 영원할 것만 같던 피드백에 맞추어 쓸쓸히 헤드뱅잉했던 몇몇의 기억에만 상흔처럼 남았던 것. 그래서 국내 슈게이징 1세대 밴드 ‘데이 드림’의 첫 앨범이 2008년에서야 발매된 것은 마치 호모사피엔스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더 최근의 지층에서 발견된 느낌이었다. 1세대 슈게이징 밴드들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과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후손들이 한국의 인디 씬에서 다분히 독자적인 진화를 보여왔음은 평가받아야 한다. 사이키델릭(Psychedelic)과의 교배‘머스탱스’, ‘그림자 궁전’,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 모던 록(Modern Rock) 씬에서 꾸준히 탐구된 슈게이징 결과물들‘챔피언스’, ‘코코어’ 등 그리고 일렉트로닉(Electronic)을 기반으로 한 방법론‘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톡식바이어스플뤠르아이비’까지 척박한 국내 환경에서 빛나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현재의 아폴로 18을 비롯한 일군의 포스트록 밴드들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4는 사실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아폴로 18의 멤버 김대인의 작업들-‘해파리 소년’에서 ‘버디비츠에어리언’ 그리고 아폴로 18로 이어지는-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한국의 포스트록 씬의 짧지만 굵은 진화를 목도할 수 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 소닉 유스 / 조지 클린턴

드레이크 방정식을 탐구하는 트릴로지
피펑크(P-Funk)의 대부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 칼 세이건(Carl Sagan, 1934~ 1996)이나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저서를 읽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만약 읽었다면 라이브 공연의 우스꽝스런 우주선 연출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펑크(Funk)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은 지속적으로 우주로부터 영감을 받아왔고, 이를 통해 장르적 표현의 진화와 의미의 외연을 넓혀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록의 경우 다른 장르보다 우주에 대한 관심을 일찍부터 보여 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재 우주를 모티프로 한 문화의 주 소비층은 청소년들이며, 표현양식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맞춰진 것도 사실이다. 에일리언 앤트 팜(Alien Ant Farm)과 쓰리원원(311)에게서 우리는 우주의 비밀에 접근하는 진지한 사고를 발견할 수 없다. 반면 그들의 음악은 십대들이 즐기는 엑스포츠(X-Sports)의 기막힌 배경음악이 되어준다.
사실 우주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애초부터 모순이다. 진공상태인 우주에는 소리를 전달할 매질이 없기 때문이다. 초신성의 폭발할 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가 울려 퍼지길 바라겠지만 기실 우주공간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는 보호헬멧 안에 울려 퍼지는 자신의 숨소리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주의 소리란 SF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잘못 심어진 것들이다. 우주를 표현하는 재료로서 음악의 적합성에 의문이 드는가? 만약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 어떤 언어보다 인류의 음악에 먼저 반응할 것이 틀림없다. 음악은 대단히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신호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보이저(Voyager) 호에 세계 각국의 민속음악을 녹음한 레코드를 보냈다.(물론 각종 생물들의 울음소리와 세계 각국의 인사말도 있었지만) 아폴로 18의 음악은 수백수천 광년 떨어진 우주를 향한 전파 망원경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아폴로 18의 음악에 대한 비평은 장르적 탐구에만 집중되어 왔다. 특히 엔비(Envy)와 엔젝(Endzweck)과의 유사성은 끊임없이 아폴로 18의 독창성을 의심하게 했다. 표현방식은 유사하나 엔비와 엔젝이 현실이라는 디스토피아(Dystopia)에 대해 천착할 때 아폴로 18은 코스모스(Cosmos)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엔비의 <어 웜 룸A Warm Room>과 아폴로 18의 <웜(Warm)>을, 엔젝의 <애프터이미지Afterimage>와 아폴로 18의 <리제라스티아(Lygerastia)>를 서로 비교해보면 비슷한 의미를 전달함에 있어 다채로운 장르적 탐구와 구현하는 심상의 폭에서 아폴로 18이 단연코 우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레드 앨범>, <더 블루 앨범>, <더 바이올렛 앨범>

인간과 교신이 가능한 외계문명 수를 도출하는 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5은 일곱 가지 인수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천문학만이 아니라 유기화학, 진화생물학, 정치학 등 다양한 학문과 연관된 이 방정식을 통해 도출되는 값은 곧 명확해 질 것이다. 물론 이 방정식의 값이 정확히 도출된다 해도 외계문명과의 조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레드(Red), 블루(Blue), 바이올렛(Violet)으로 이어지는 아폴로 18의 트릴로지(trilogy)3부작는 바로 이 드레이크 방정식에 포스트록 공식을 적용한 해법이다. 《더 레드 앨범》은 아폴로 18호가 우주로 나아가기 전 자신들의 기술을 재점검하는 서막이다. 아폴로 18은 이 앨범을 통해 연주와 스케일에 대한 자가 측정에 골몰한다. 수록곡 중 <디스차지(Discharge)>는 8분을 상회하는 러닝타임 안에서 다양한 장르적 변주와 기승전결에 얽매이지 않는 스케일의 탐구를 통해 우주로 나아갈 채비를 갖추었음을 입증 받는다. 《더 블루 앨범(The Blue Album)》은 아폴로 18호가 추진로켓을 하나씩 분리하며 궤도권에 들어서는 과정이다. 특히 이 앨범에서는 하드코어(Hard-Core)와 사이키델릭에 대한 전폭적인 수용이 눈에 뛰는데 이를 통해 그들의 옥탄가 높은 에너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더 레드 앨범》의 곡들보다 스케일이 비좁은 느낌은 있지만 그것은 대기권을 벗어나기 위한 에너지의 집중이라고 해두자.
《더 바이올렛 앨범(The Violet Album)》은 대기권을 벗어나 광활한 우주로의 항해를 시작하는, 아폴로 18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삼부작의 결말이다. 앨범은 우주공간의 행성들을 묘사하는 듯한 <퍼즈04(Pause04)>로 시작한다. 뒤이은 <송 에이(Song A)>는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험심이 기본 스케일의 반복적 변주를 통해 제시된다. 앞의 두 앨범에서 사이키델릭과 하드코어의 냄새를 느꼈다면 <송 에이>는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멜랑콜리 앤 더 인피니트 새드니스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와 슬린트(Slint)의《스파이더랜드Spiderland》를 기억나게 하는 얼터너티브적 리프(riff)와 코드(code) 진행을 보여준다. <루시(Lucy)>는 아마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를 지칭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당시 두뇌는 침팬지와 비슷했지만 직립보행에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인류의 조상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1928~1999)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1968)에 등장했던 유인원들의 생활을 회상해 보자. 매일이 자연과의 전쟁이었을 그들에게 원초적인 호기심은 진화를 앞당긴 촉매였다. 호기심은 불을 인류의 것으로 만들었고, 도구는 식량의 채집을 용이하게 했지만 한정된 식량자원은 같은 종끼리의 전쟁을 촉발했다. 루시의 삶과 오늘날 인류의 삶이 뭐가 그리 다를까? 종족 말살로 치달을 수도 있는 인간의 본성은 우주선 아폴로 18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루시>의 비극적 정서는 뒤이은 <퍼즈05(Pause05)>로 인해 더욱 어두운 심연으로 빠져든다. <송 에이>, <루시>, <리제라스티아>,<나라카(Naraka)> 등의 네 곡은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느껴질 만큼 비슷한 전개구조를 보여주는데 특히 이번 앨범은 앞서 거론했듯 얼터너티브에서 포스트록으로 진화하는 중간 단계의 장르적 향취를 담고 있다. 이런 회귀적인 방법론을 통해 포스트록의 혼잡한 주제 제시를 지양하고 앨범의 콘셉트를 보다 명확히 제시할 수 있었다.

 
엔비 / 엔젝      

아폴로 18은 대표적인 프랙탈(fractal)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 도형인 시어핀스키 삼각형(Sierpinsky Triangle)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위에 거론한 네 곡의 구조가 신기하게도 세 개의 리프, 세 개의 코드, 세 개의 동기 또는 악절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송 에이>는 가장 명확한 시어핀스키 삼각형의 구조를 보여준다. 세 개의 코드로 이루어진 세 개의 리프가 여섯 번 반복하고 다음 구조로 넘어간다. 물론 다음에 등장하는 리프와 구조 역시 처음에 제시한 기본 코드와 리프를 싱커페이션(syncopation)선율 진행 중 셈여림의 위치가 바뀌는 경우하면서 자잘한 삼각형으로 쪼갠다. 이런 무한한 반복은 전개-절정-결말의 삼단 구성을 보여준다.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의 증명인 동시에 정수가 아닌 소수의 차원을 보여주는 프랙탈 도형 시어핀스키 삼각형이 《더 바이올렛 앨범》 속에 무한대로 숨어있다. 만약 이전의 두 앨범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면 아폴로 18이 의도한 보다 커다란 시어핀스키 삼각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리제라스티아>에서 점점 고조되는 파국의 징조는 <나라카> 전체를 가득 메우는 디스토션(distortion)으로 절정에 다다른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우주공간에서 펼쳐지는 비극적 시나리오에 초대받게 된다.

아폴로 18호의 항해사 A가 갑자기 불면증과 신경쇠약을 호소한다. 그리고 A와 같은 침실을 사용하는 P와 O역시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데. 의료승무원 L은 전염병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우주선 지하창고에 격리하는데. 그들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러 갔던 L은 격리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갑자기 우주선의 전원이 끊기며 암흑에 잠기고 승무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데……

시어핀스키 삼각형의 변동과정

굳이 우주공간에서의 비극적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더 바이올렛 앨범》의 중후반은 청자들에게 어둡고 광폭한 심상의 세계를 열어준다. 《더 블루 앨범》까지 이어지던 장르의 콜라주는 줄어들고 스케일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보다 확연한 심상을 조성하는 데 몰입한다. 하지만 <나라카> 경우 갑작스레 종결되면서 뒤이은 히든 트랙으로 바통을 넘긴다. 제대로 시나리오의 끝을 내지 못한 기분이라 몹시 당황스럽지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은 히든 트랙은 오히려 청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삼부작을 끝맺게 하는 미완성의 방점으로 작용한다.

격리되었던 사람들이 나머지 승무원들을 공격하면서 우주선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예정했던 궤도를 이탈한 우주선은 혜성과 충돌하여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 하게 되는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L이 해치를 열고 행성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곳은 지구처럼 비가 내리고 하늘과 바다가 하나의 색으로 물들어 있다. L은 낯선 행성의 대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Do they not realize birds fly?

노래에 나오는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적다고 해도 사람들은 노래로 이야기 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유일한 진실은 진실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밥 딜런(Bob Dylan)

오늘의 우리 대중음악은 어떤 ‘진실’들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아이돌그룹이 우리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 끼치는 파급력이 갈수록 막강해지는 이때, 우리는 과연 노래 속의 진실을 판가름할 수 있는 감식안을 소유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진실이 없는 것이 진실이라는 밥 딜런의 말은 백번 타당함에도 우리가 노래로 이야기하려는 욕망의 기저에는 진실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별드립>과 <고고씽>인기그룹 ‘제국의 아이들’과 ‘블랙펄’의 타이틀곡이 존재하는 오늘날 가요계에서 최소한의 심정적 안전벨트가 되어줄 것이다. 싱어송라이터들이 메이저 음반시장을 떠나 인디 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대중음악에 대한 감식안의 요구는 불가피하게 인디 아티스트들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인디음악의 성장이 이런 불가피한 책무와 자존감을 털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점이 우려가 된다. 새가 난다는 평범한 사실에 대해 진실인지 아닌지 의심하게 될 날이 올 것만 같다. 새는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6” 하지만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7”라고 노래하는 아티스트는 더 이상 메이저나 인디 어느 쪽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진실을 이야기하는 책무는 군소 레이블의 보살핌 아래서 간신히 발아한 몇몇 아티스트들의 장르적 탐구를 통해 성취된다. 우리의 포스트록 씬은 분명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특히 아폴로 18의 성취는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조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오늘 아폴로 18의 세 장의 앨범 커버를 하나로 조합해 본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되듯 세 장의 커버가 모여 외계인의 초상이 탄생한다. 아폴로 18의 트릴로지가 보랏빛으로 결말지어졌다고 말하기 거북한 이유는 그들 음악의 난해함이나 미학적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 대한 예감, 진실을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으로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그들의 희망에서 비롯된다. 결국 진실은 희망인 동시에 희망이 진실이 되는 것이다. 내가 믿고 또 알고 있는 음악이란 애초부터 그런 것이었다. 아폴로 18호가 우주로 떠난 이유 또한 희망과 진실이 절멸한 지구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1 ‘의미’는 ‘주제’로, ‘재료’는 ‘표현방식’으로 명명해도 좋겠다. 의미와 재료라는 명명은 테어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의 『록음악의 미학Rhythm and noise : an aesthetics of rock』을 참고로 했다.
2 미국 펜실베니아 출신의 뮤지션 걸 토크는 매쉬업(Mashup)-기존 아티스트의 음원을 재조합하는 일종의 리믹스 작업-으로 네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다큐멘터리 <좋은 복제 나쁜 복제Good Copy Bad Copy>(2007)와 <찢어라! 리믹스 선언RIP!:A Remix Manifesto>(2008)은 걸 토크의 작업을 통해 저작권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조명한다.
3 아폴로 18호는 아폴로 18의 음악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는 가상의 우주선을 지칭하기로 한다.
4 잃어버린 고리란 진화의 단계에서 존재했다고 추정되는 중간 단계의 생물종이나 화석으로 발견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자들을 공격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개념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에서 이 개념의 허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했다.
5 코넬 대학의 프랭크 드레이크(Frank Drake) 교수가 창안한 것으로 인류와 교신이 가능한 외계의 문명의 수를 도출하는 방정식이다. 현재의 인류의 과학 수준은 이 방정식의 값을 도출하는 일곱 개의 인수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다.
6 ‘못’의 <날개> 중에서
7 이상은의 <새> 중에서

노루필명 1980년 제주생. 808drugs@naver.com

음악비평상 당선소감

인류와 음악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일

노루

1. 나는 음악에 대한 많은 것을 더 원디드 독스(The Wounded Dogs)라는 밴드에게서 배웠다. 거의 전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뛰어난 연주실력과 밥 딜런도 인정한 시적인 가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모든 의미에서 ‘불운’한 밴드라고 할 만하다.(첫 싱글은 <테이스트 오브 배드 럭Taste of Bad Luck>이었다) 밴드의 리더 데릭 브레인필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에 참가하기 위해 멤버들을 태운 왜건을 몰고 가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다는 것을 미루어보면 그는 불운 그 자체였다. 우드스탁이 한창일 때 그의 장례식은 쓸쓸히 치러졌다. 묘비에는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데릭 브레인필드 잠들다, 라고 새겨 넣었지만. 2001년 그가 묻힌 공동묘지는 사용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죄다 뒤엎어졌고, 그 자리에는 월마트가 들어섰다.
2.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1988)의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 1970~1993)처럼 음악은 내 인생의 전부, 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은 허세에 찌든 소리다.(게다가 리버 피닉스 역시 그런 말은 하지 않았고 “기타는 내 인생이다Guitar is my life”라고만 했다. 물론 “야구도 내 인생이다Baseball is my life”라고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음악이 있었기에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가역적으로 소중한 사람들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3. 더 원디드 독스의 앨범재킷에는 스페셜리 헤이트(Specially Hate) 목록이 있다. 언젠가 나에게도 공개적인 지면이 주어진다면 감사의 말 대신 증오의 말을 늘어놓겠다, 고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그들의 앨범을 듣고 다짐했다. 하지만 오늘 다시 그 앨범을 꺼내보니 목록의 마지막에 “여기 적힌 사람들을 빼고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라고 적혀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4.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항상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든든한 동생 재완아, 내가 얼마나 너를 의지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가장 많이 떠올린, 오히려 나 대신에 이 상을 받아 마땅한 진영에게, 사랑해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 세상에서 가장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 영구 삼촌에게, 장애를 뛰어넘은 삼촌의 음악을 향한 사랑의 자세를 잊지 않겠어요. 하찮은 비평으로 훌륭한 음악을 훼손시킨 것은 아닌지, 아폴로 18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결국 음악비평이란 인류와 음악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일은 아닐까, 그러니까 필요한 것은 고상한 취향이나 얼리 어답터 기질이 아니라 잣대다, 라는 주제넘은 문장을 마지막으로 소감을 마치겠습니다.

음악비평상 심의평

비평의 개념과 역할을 잘 이해한 글

김창남(대중음악평론가,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반적으로 비평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글들이 많았다. 비평의 일차적인 의미는 작품에 대한 꼼꼼하고 깊이 있는 독해를 통해 독자들의 선택을 돕고 정보를 제공하며, 그 작품을 배태한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루 씨의 「포스트록 트릴로지의 보랏빛 결말-아폴로 18, 《더 바이올렛 앨범》」을 제외하면 응모작 중 비평에 값하는 글은 거의 없었다고 해야겠다.
김광민 씨의 「수단으로서의 음악과 포장성이 극대화된 예술」은 시의성 있는 주제였다고는 하나 상식적인 내용에 머문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최종천 씨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77번」과 강은우 씨의 「오페라 부파와 현세를 잇는 웃음의 미학-오페라 <돈 파스콸레>」의 경우 비평이라기보다는 생활에세이에 가까운 글이었다는 판단이다. 이에 반해 임도빈 씨의 「힘의 이동-제니스 이안에서 원더걸스로」는 논지가 살아있는 글이기는 했으나 제니스 이안과 원더걸스를 이야기하는 까닭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노루 씨의 글은 다소 불필요한 현학적 취미가 거슬렸지만 대체로 비평의 개념을 잘 이해한 글이라고 판단했기에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응모자들이 최소한 비문 없는 문장을 구사할 정도의 문장력은 물론, 기본적인 오탈자 교정 정도의 성의는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중음악의 진정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돋보여

최유준(음악평론가)

음악비평을 포함한 모든 예술비평은 작품을 닮아야 한다. 비평의 대상에 점수를 매기고 폭력을 가하는 비평은 최악의 비평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로 하여금 비평문 자체에서 메시지를 읽고 미적인 감흥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비평이야말로 최선의 비평인 셈이다.
총 여섯 편의 응모작 가운데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당선작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당선작인 노루 씨의 「포스트록 트릴로지의 보랏빛 결말-아폴로 18, 《더 바이올렛 앨범》」은 대중음악의 진정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비평의 대상이 되는 음반의 미적 의미를 좇아 적확한 은유와 비유를 통해 평자 자신의 음악적 세계관과 미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이에 비해 김광민, 최종천, 강은우, 임도빈 씨 등 그 밖에 본심에 오른 응모작들은 대체로 범작에 그치거나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아쉬움을 남겼다.
참고로 말하자면 클래식 음악부문의 응모작들은 대체적으로 주관적인 감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중국악에 대해 비평한 응모작의 경우에도 시의성 있는 거창한 주제를 제시했지만 참신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드러낸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