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에 의존해 있는 사회는 결코 우연히 혹은 피상적으로만 스펙터클(spectacle)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스펙터클주의적이다. 이런 스펙터클 속에서 목표는 발전만이 전부다. 스펙터클은 그 자신 이외의 다른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어느 때부터인가 동시대 예술에서 스펙터클 신드롬의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1만 4,000여 개의 소포상자를 캐스트(cast) 해 설치한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제방Embankment>(2005), 다이아몬드 8,601개를 사용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2007) 등 동시대의 예술은 스펙터클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비단 소수의 향유계층을 가진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대중친화적인 공공미술 또한 스펙터클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 2007년 당시 광복절을 맞이하여 서울시는 청사 전면을 3만 4,000여 개의 PET수지 무궁화로 뒤덮는 아트모뉴멘트(art-monument)를 설치했다. 나아가 2009년에는 대우빌딩 리모델링 이후 건물 전면 가로 99미터, 세로 78미터의 거대한 LED조명 스크린에 영국작가 줄리언 오피(Julian Opie)의 작품이 상영되었는데 이 미디어아트 작품 또한 사상 최대 규모로서 기네스북 등재를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라 한다. 이렇게 스펙터클 현상이 예술 전반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가운데 지난 2009년 옛 기무사 건물에서 열렸던 <신호탄展>은 스펙터클이 하나의 트렌드로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박용석은 기무사 별관으로 쓰이던 건물에서 사용가능한 형광등 300여 개를 찾아내 한 방에다 설치<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2009)했고, 윤석남은 1,025개의 목조각(木彫刻)으로 개의 형상을 설치<1025>(2003~2008)했으며, 김지민은 수천 장의 의류라벨로 원 모양의 러그(rug) 작품<더 바니타스 홀릭(The Vanitas Holic)>(2008)을, 최정화는 수천 개의 플라스틱 바구니를 건물옥상에 탑처럼 쌓아 두기도 했다.<총, 균, 쇠>(2009)

박용석,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2009)

 
김지민, 더 바니타스 홀릭(2008)                                윤석남, 1025(2003~2008)   

이처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동시대의 예술작품은 그것이 지닌 스펙터클한 특성으로 인해 자연스레 언론과도 유착하게 되었다.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매체의 특성과 대중의 주목을 원하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욕구가 한 곳으로 만나는 지점이 바로 스펙터클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중은 뜬구름 잡는 식의 모호한 개념과 철학에 기댄 작품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분명한, 그러면서도 모두가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작품에 환호한다. 그리고 언론은 이제 미술작품의 크기나 그것을 이루는 재료의 개체 수, 심지어는 재료에 드는 비용 혹은 새로이 경신되는 경매가 등이 기사화되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제 예술작품은 기네스북과 무관하지 않으며, 작가의 인지도 또한 이러한 작품의 가격이나 규모, 크기, 비용, 설치인력 등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 이 시대의 모든 작가들이 대중의 관심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관객과 최소한의 소통이라도 원한다면 이제 매스 미디어(mass media)의 스펙터클 지향성을 외면하고는 작은 관심도 받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스펙터클은 소비된다
1990년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최정화는 동시대 한국미술계의 스펙터클 트렌드를 주도한 트렌드세터 중 한 명이다. 2008년 올림픽경기장에 설치한 <천만 시민 한마음 프로젝트-모이자 모으자!>는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폐플라스틱 170만 개를 경기장 외벽에 두른 작품이었다. 당시 매체는 일제히 이 작품의 거대규모에 대해 언급하며, 자그마치 488대의 트럭과 3,638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는 스펙터클을 기사화했다.
그러나 스펙터클의 특성이 강조되면서 정작 가장 중점이 되어야 할 작품의 내용을 등한시 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정화의 프로젝트는 1960~1970년대에나 있을 법한 ‘모이자, 모으자’란 캐치프레이즈를 전면에 내세우며, 구호만큼이나 촌스럽고 누가 봐도 저렴해 보이는 알록달록한 싸구려 플라스틱 소품들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이는 키치(Kitsch)적이고 저급하다고 여겨지는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나 조롱의 시각이 결코 아니었다. 서민문화를 긍정적으로 다룬 따스한 시선도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 친근하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평범한 일상을 다루면서도 특별하게 보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불분명하고 이중적이며, 예술과 공산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최정화의 작품에서 단 한 가지 분명한 명제는 그에게 있어 예술이란 바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에 대한 ‘숭고한’ 개념과 별개라는 사실뿐이다. 그는 단지 자신의 작업은 예술이 아니라 분위기를 다르게 바꾸어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밝힘으로써, 동시대 미술작품들이 소비거리에 지나지 않은 현실을 증명한다.

나는 한 번도 내 작품을 예술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은 분위기다. 나는 결코 미술품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중략… 미래에는 모두가 예술가가 될 것이다.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모두 예술이다. 아니 예술이라는 것이 아예 없어질 것이다. 잘난 체하는 예술은 없어진다.2

곧 그의 작품은 ‘예술의 부재’를 뜻한다. 그것은 모더니즘(Modernism) 시대의 반(反)예술과는 또 다르게 지양점도, 지향점도 규정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다. 더 이상 그의 작품에서 정신적인 측면이란 무의미하다. 단지 스펙터클만이 있을 뿐이다. 비단 최정화의 작품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미술계 전반을 살펴볼 때 우리는 백여 년 전의 반(反)미학조차도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미학의 아방가디즘(Avant-Gardism)에는 비판대상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은 당시의 권위적인 예술 패러다임이었으며, 아방가디즘은 이에 대한 변증법적 도전이었다. 그러나 최정화의 플라스틱 소품들은 반미학과 같은 헤겔(G. Hegel, 1770~1831)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무언가를 향한 부정도 도전도 아닌, 이중적인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다른 작품으로 변형, 생성되기도 하는데 그의 플라스틱 조각들은 스파게티 면김무기, <중얼거리는 나무>연작(2008), 의류 라벨김지민, <더 팬(The Fan)>연작(2008), 스테인리스 스틸이상남, <풍경의 알고리즘>(2010), 시퀸(sequin)노상균, <포 더 워쉬퍼스(For The Worshipers)>(2000), 기계부품최우람,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2008) 등 다양한 재료에 의해 증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재료와 형태에도 불구하고 그들 작품에서의 메시지는 유사하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대량 생산품들이 상징하는 거대 메커니즘 속에서 인간성을 유린당한 채 살고 있는 동시대의 삶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지극히 냉소적인 어조로 표현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쿨(cool)함의 기저에 어떠한 형이상학이나 정신적인 것도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이 허무함을 더한다. 아니 의도적으로 그것을 제거하려는 듯 보인다.

       김무기, 중얼거리는 나무(2008)       최우람,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2008) 

이상남, 풍경의 알고리즘(2010)                  노상균, 포 더 워쉬퍼스(2000)

어떠한 것도 표상하지 않으려 하는 동시대의 미술작품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사회를 그대로 빼닮은 스펙터클뿐이다. 그리고 이 스펙터클은 매스 미디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소비된다. 예술이 소비거리가 된 데에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설명한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과 같이 동시대 미술작가는 여기저기 떠도는 텍스트들을 시각적으로 짜깁는 편집자일 뿐, 더 이상 작품의 창조적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인한다.3 ‘증식’이라 비유될 만큼 다양화하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미술의 획일화된 내용은 단지 고도화된 후기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진화된 스스로를 제시할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오늘날의 대중과 그들을 선도하는 매체의 소비취향을 반영하는 부분이다. 스펙터클의 예술은 어마어마한 양의 상품을 찍어내는 대량생산체제와 동시에 그것을 무서운 속도로 소비하고 버리는 대량소비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고도의 물질주의 속에서 문화예술이 동질화되고 감각적인 소비품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설명처럼 대중매체에 의해 생성되고 소비되며, 자가증식하는 순환을 지속하고 있다.4
 

스펙터클, 위장된 기념비성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덕적 가치 또한 아름다움으로 보았다. 때문에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위대한 업적이나 고귀한 희생, 도덕심을 고취시키는 행위 등도 예술의 범주에 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미의식은 점차 희석되었고, 결국 오늘날에는 예술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우리는 지난 1997년 런던(London)에서 개최된 <센세이션Sensation展>을 통해 스펙터클로 위장된 기념비성(monumentality)의 허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사치 컬렉션(Saatchi Collection)을 바탕으로 기획된 이 전시에는 <마이라Myra>(1995)라는 4미터 정도 크기의 초대형 초상화가 걸렸는데 그것은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약자로 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지칭작가 마커스 하비(Marcus Harvey)의 작품으로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도장 수천 개를 찍어 만든 스펙터클한 인물화였다. 문제는 이 그림의 모델 때문이었는데 동명의 모델은 바로 어린이 연쇄살인범이었다.
구태여 고대 그리스 미학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혐오감을 심어 준 이 작품은 사치의 의도대로 센세이션이 되어 사상 최대의 인파가 관람을 했다. 관람자들이 마커스 하비의 작품 앞에서 경악한 이유는 작품의 내용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거대한 규모의 캔버스에 의해 표현된 기념비성과도 완전히 대립되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크기로 확대된 살인마의 초상은 잔혹함의 기념비로 읽혀진 탓에 관람자들의 혐오를 배가시켰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의 스펙터클은 기념비성의 숭고함이 아닌, 기념비성으로 위장한 폭력이었다. 또한 마커스 하비의 스펙터클은 도덕성의 존재를 비웃는 오만이었다.

마커스 하비, 마이라(1995)

          최정화, 총, 균, 쇠(2009)                                서도호, 고등학교 교복(1996)

반면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1884)을 제작할 당시 로댕(A. Rodin, 1840 ~1917)은 칼레를 구한 위대한 시민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품의 대좌를 축소했다. 공중으로 솟은 거대한 조각으로부터 허구적인 기념비성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동시대의 미술작품들은 이와 반대로 높이 솟으려 노력하고 있는 양상이다. 더 장대한 규모를 추구하고 더 많은 양의 재료를 사용하며, 더 많은 설치 인원을 동원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념비성보다는 폭력성과 억압의 표현에 가깝다. 최정화의 <총, 균, 쇠>는 인왕산의 고즈넉한 풍경을 절단하듯 가로지르고 있으며, 박용석의 형광등 빛은 하얗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로 강하다. 또한 서도호의 <고등학교 교복>(1996)은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억압된 소년기의 인성, 개성을 목이 잘린 채 서 있는 교복들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1950~1960년대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들이 천장까지 쌓아 둔 생필품 앞에서 주눅이 든 것처럼 동시대 미술작품의 스펙터클 위용 앞에서 관람자들은 주눅이 들고 만다. 오늘날의 스펙터클은 겉으로는 기념비적인 규모지만 그 내면은 기념할만한 도덕성이나 윤리성, 숭고함도 없이 텅 빈 채로, 이를 있는 체 위장한 시뮬라시옹(simulation)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허무함을 부풀리기 위해 조장된 거대한 부피는 바로 고도화된 후기자본주의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자 우리를 압도하고 무력화시키는 폭력성인 것이다.

스펙터클에의 비평을 기대하며
최근 들어 우리의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단어는 ‘스펙터클 신드롬’이다. 많은 작품으로부터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똑같이, 빈껍데기를 요란하게 치장한 시뮬라시옹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엄청난 양의 재료들로 또는 거대한 규모의 크기로 혹은 설치하는 데 동원된 인력규모 같은 것들로 나타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스펙터클이 동시대 미술계의 주된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을지라도 그 내면이 오늘날처럼 허무하고 빈약했던 적은 없었다. 또한 이 빈약함을 은폐하기 위해 위장된 모습이 오늘날처럼 여러 매체에 의해 광범위하게 전달된 적도 없었다. 매스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 동시대 예술은 다시 대중과 매체에 의해 소비되고 재생산되는 순환을 반복한다.
물론 동시대 한국미술의 대표적 트렌드가 된 스펙터클 신드롬이 고도화된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사회를 충실하게 반영한 하나의 사례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과연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어디에서 비롯되고 또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이 글이 낡고 쓸모없어진 계몽주의적 예술개념을 최신의 트렌드에 적용한 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무한생성과 변화하는 동시대 미술의 한 흐름에 대한 비평으로서의 가치 또한 기대해본다.

1 기 드보르(Guy Debord), 『스펙타클의 사회Society of the spectacle』 이경숙 역, 현실문화연구, 1996, 15쪽
2 최정화의 인터뷰 내용,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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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르트는 “현대의 저자는 씌어진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흔적들을 하나의 단일한 영역으로 모으는 누군가일 뿐”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전과 비교하여 저자의 주체적 위치가 소멸 또는 제거된 상태를 설명했다. 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윤난지 편, 정인진 역, 눈빛, 1999, 34쪽
4 위르겐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Strukturwandel der Offentlichkeit』, 한승완 역, 나남, 2001, 279쪽

李相侖 1975년 서울생. 경기대 강사. 최근 논문으로 「욕망과 타부의 접점-문신 조각에서의 에로티시즘 읽기」 등.

미술비평상 당선소감
보이지 않는 영감에 겸허하고도 감사한 마음

이상윤

글을 쓰시는 모든 분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제 경우 역시 미술과 관련한 논문이나 비평문을 작성할 때마다 때로는 백지 앞에 고민도 되고, 때로는 나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술술 써 내려가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2010년 여름 플랫폼 문화비평상에 공모할 비평을 쓸 당시에는 다행스럽게도 후자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다고나 할까요, 강한 영감(inspiration)이 나를 일깨워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글 쓰는 내내 받았습니다. 이전의 작업들이 고통스럽고 줄곧 처절한 인내를 요했던 반면 공모를 위한 작업시간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토해 놓은 듯한 후련함이 함께 했습니다. 특히 저는 예술가뿐 아니라 예술을 보고 비평하는 사람들 역시 늘 새로운 영감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는 습성이 있기에, 예리한 시각을 보여야 할 비평가들이 타성에 젖어 펜대를 세우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매너리즘이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적이요, 가장 헤어 나오기 쉽지 않은 함정일 것입니다.
때문에 이 글을 통해 저 스스로도 늘 해오던 비평의 틀을 깨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영감, 즉 보이지 않는 그 힘에 대해 겸허하고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스펙터클의 사회, 스펙터클의 미술」은 제목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시각으로 점차 거대화하는 물질문명사회,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사회를 비평한 기 드보르의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글입니다. 이를 통해 저는 동시대 한국의 미술, 특히 2000년대 이후의 한국미술이 반영하고 있는 후기자본주의사회의 단면과 그것이 어떠한 형식을 통해 미술작품으로 시각화되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스펙터클’한 양상을 띤 미술작품을 분류하는 데 좀 더 예리하고 명확하지 못했던 오류에 대해서는 앞으로 제 스스로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점 너그러운 양해를 구하며, 많은 면에서 부족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끄럽지만 이 글이 2000년대의 미술을 연구하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저에게 이번 수상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울러 부족한 이 글을 선택해 주신 고충환, 심상용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이처럼 훌륭한 심의위원들의 격려에 힘입어 저 또한 신진 비평가로 한국 현대미술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술비평상 심의평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

심상용(미술평론가,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교수)

이번 응모작들은 대체적으로 비평의 중요한 준거가 되는 ‘역사에 바탕을 두는 시대정신’, 정확한 사실 및 대상에 대한 이해 또는 그로부터 비롯되는 ‘창의적인 관점’, 저자의 자기성찰, 진지한 글쓰기 등의 보편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 채 단편적인 작가론이나 역사기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총 일곱 편의 응모작 중 예심을 통해 이상윤, 전수연, 서원석 씨의 세 작품이 본심 논의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 중 서원석 씨의 「기억할만한 지나침-‘정치미술’에 대한 세 가지 흥미로운 단상」은 어느 정도 숙련되어 보이는 글쓰기에 비해 논지가 분명치 않고 전개가 산만하다는 결점이 지적되었다. 이에 반해 전수연 씨의 「미술관에서 부활하는 도시의 환상-전시는 국민들에게 무엇을 꿈꾸게 하는가?」는 응모작 중 유일하게 전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전시의 동기와 주제 및 구성, 관객, 소통, 평가 등의 세부적인 분석에 도달하지 못한 채 표면적인 접근에만 그쳤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상윤 씨의 「스펙터클의 사회, 스펙터클의 미술」은 응모작들 중 가장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주제의 시사성 측면에서도 고무적이었다. 특히 현대미술의 공허한 기념비성에 대한 접근은 매우 유효했다. 더불어 그것이 현대미술, 문화적 현상에 대한 타당한 관점이라고도 사료되었다. 하여 이 작품을 이번 미술비평상의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화려한 외장과 공허한 내용을 스펙터클이라는 주제로 함축
고충환(미술평론가)

플랫폼 미술비평상은 주평론과 단평을 구분해서 시행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주평론은 동시대성을 담보하는 시의성 있는 담론 혹은 이슈를 주제로 한 소위 주제론이, 단평은 특정 전시에 대한 심층리뷰를 통한 사례분석이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간혹 미술사를 논제로 다루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것은 동시대적 사실과 만나는 접점을 그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술사적 사실의 범주 내에서만 머문다면 비평적 사실로서의 당위성이 약해지는 까닭이다.
본심에서는 총 세 편의 글이 논의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 가운데 전수연 씨의 글은 최근 비평계의 변화된 환경에 부합하는 논제였다. 작가에서 큐레이터 중심으로, 그리고 작품분석에서 전시분석 중심으로 그 축이 옮아가고 있는 추세를 재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다만 외형적으로는 전시분석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을 보면 롯폰기와 모리미술관의 생성배경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논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서원석 씨의 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정치미술의 이해와 오해를 주제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주평론으로 적절해 보였다. 허나 문학적 측면의 논의에 힘입은 나머지 미술내부의 자기 반성적인 논의가 빈약해진 점이 아쉬웠다. 그마저도 얼마 전 미술잡지에서 이슈화되었던 논의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문체는 유려하지만 그 유려함이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는, 이를테면 논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이상윤 씨의 글은 스펙터클 자체가 꽤나 묵은 담론이란 점에서 참신함은 떨어지지만, 이를 매개로 최근 피부로 와 닿는 미술계의 풍경, 특히 전시풍경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성이 있는 작품이었다. 화려한 외장과 공허한 내용을 스펙터클이라는 주제로 함축한 셈이다. 또한 구체적인 사례분석을 통해서 이해를 돕고 있었다. 다만 사례를 열거하는 데 할애한 지면 중 상당부분을 주제분석으로 대체했더라면 보다 설득력 있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