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미술의 두드러진 특징 내지는 현상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추상미술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추상미술은 미술을 미술이게 해주는 조건 내지는 요소를 내용 대신 형식에서 찾은 형식주의와 장르적 특수성 개념, 미술을 미술로서 한정하는 요건을 미술외부나 외부와의 관계로부터 찾는 대신 미술내부에서 찾은 예술의 자율성 개념으로부터 그 논리적 당위성을 얻는다. 그리고 모더니즘 비평과 형식비평이 때로는 그 현상을 견인하면서, 그리고 더러는 사후적으로 추인하면서 추상미술과 평행선을 그린다.
그 이면에는 미술의 본질에 대한 신념이 놓여있고, 그 신념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으로서 클라이브 벨(Clive Bell, 1881~1964)의 의미 있는 형식과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의 평면성의 개념이 있다. 여기서 의미 있는 형식은 그 속에 내용을 함축한 형식(상징형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의미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아우라(Aura)오리지널리티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 아우라마저 배제한 것이 그린버그의 평면성(오리지널리티를 익명성의 개념으로 대체한) 개념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당신이 보는 것이 바로 당신이 보는 것”이라는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전언이 나온다. 캔버스는 어떤 의미를 내장한 것(의미체 내지는 상징체)이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이미 의미를 갖는(물질적 오브제, 그리고 말을 만들자면 특유의 오브제) 말일 것이다.

좌로부터 프랭크 스텔라, 피에르 부르디외, 아서 단토

적어도 외관상 추상미술과 모더니즘 내지는 형식비평과의 관계는 적절해 보이고 서로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더욱이 추상미술이 미술전체를 대표하거나 대변하지도 않는다. 추상미술에 비해 현저하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형상미술을 위해서는 다른 비평적 잣대가 요구되고, 사실상 현대인의 대부분이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대중문화와 일상성 담론마저 아우르는 다른 비평적 태도가 요청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미술의 장으로부터 배제된 삶을 다시 복원하는 일이 시급해졌고, 그 요청으로부터 내용비평과 문화비평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것이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acs, 1885~1971)의 반영이론과 총체성이론, 브레히트(B. Brecht, 1898~1956)의 낯설게 하기, 아도르노(T. Adorno, 1903~1969)와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er Schule)의 부정의 변증법과 비판이론, 야우스(H. R. Jauss, 1921~1997)의 수용미학, 하우크(W. F. Haug)의 상품미학 등속을 아우르는 예술사회학이다. 이제 예술과 사회와의 연동관계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 되었다. 사회 없이 예술이 있을 수가 없고 예술 없는 사회를 생각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사회는 예술에 원인을 제공해주고 예술은 사회 속에 문화의 형태로 스며든다)

밑그림, 아비투스와 장개념의 상호적인 관계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은 그 제목이 시사하듯 예술사회학의 한 경우로 보인다. 세부적으로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0)의 사회이론을 매개로 문화읽기와 미술문화 읽기를 시도한다. 그 논의의 중심에 예술계의 개념이 놓인다. 그리고 예술계 개념을 중심으로 그 한쪽에 아서 단토(Arthur Danto)와 조지 디키(George Dicky)가, 다른 한쪽에 베커(O. Becker, 1889~1964)가 배치된다. 예술계는 실체적 요소와 비실체적 요소로 구분되는데 이 가운데 아서 단토와 조지 디키가 비실체적 요소에 힘을 싣고 있다면 베커의 입장은 실체적 요소에 비중이 실린다. 그리고 부르디외의 핵심개념인 아비투스(habitus)와 장(field) 개념으로부터 이 두 입장을 보완하고 종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그리고 여기에 스타일 개념이 복선으로 깔린다.

ⓒ갈무리｜2010

참고로 아비투스는 역사적 행위의 원칙들이 개인의 의식차원을 넘어 일종의 제도형태로 사회 구성원들의 몸에 각인된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말한다. 지엽적인 차이를 도외시한다면 그 개념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에피스테메(Episteme)과학적 지식, 직업적 ·전문적 지식, 지식 일반을 가리키는 말나 토마스 쿤(Tomas Kuhn, 1922~1996)의 패러다임 개념과 특히 후기 비트겐슈타인(L. J. J. Wittgenstein, 1889~1951)의 삶의 형식개념1과 같은 기초적으로 주어진 사실의 지평과도 통한다.2그리고 아비투스와 장은 서로 연동되어 있고 아비투스가 예술장에 적용될 때 제도는 예술제도가 되고 이를 이론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예술제도론이다.
정리를 하자면 저작의 주요논의 대상으로서 예술계의 개념과 스타일 개념이 주어지고 이를 분석하는 도구로서 아비투스 개념과 장 개념이 제시된다. 이 개념들 간에 가능한 차이를 도외시한다면 예술계의 개념과 장 개념이, 그리고 스타일 개념과 아비투스 개념이 서로 부합해 보인다. 그리고 이 개념들 상호 간에는 일정한 연관관계가 성립된다. 이를테면 예술계로부터 스타일이 나오고 스타일이 예술계를 간섭한다. 보수적인 스타일이 예술계를 강화하고, 진보적인 스타일이 예술계를 전복한다. 아비투스와 장 개념 역시 그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장으로부터 아비투스가 유래하고(장이 아비투스를 형성시키고) 아비투스가 장을 보전하거나 재편한다. 이렇듯 그 작동원리를 밝히기 위해서 자율적 상대성의 개념이 도입된다. 이를테면 예술계와 스타일, 아비투스와 장은 스스로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변환시키는(서로 자기 내부에 굴절시키는) 상호내포적이고, 상호간섭적이며, 상호변환적인 계기로서 작동된다.

심화, 사례분석과 실천적 적용
저자는 이렇듯 부르디외의 아비투스와 장 개념 간의 상호유기적이고 내포적인 관계와 그 작동원리를 중심으로 예술계(예술장)의 밑그림을 그린 연후에 이를 도구로 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장으로의 실천적 적용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상징자본과 상징권력, 인정게임과 인정투쟁, 그리고 분류투쟁과 같은 개념적 도구를 부르디외로부터 빌려온다. 이를테면 미술문화 자체는 상징자본과 상징권력의 한 형태이며, 예술은 고유의 문법을 매개로 기왕의 예술계에 인정받기 위한 혹은 나아가 기왕의 예술계를 전복하거나 재편하기 위한 인정게임과 인정투쟁의 한 형식이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러저러한 시도를 예술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비예술로 배척하는 문법체계 자체에 간여하는 분류투쟁의 한 형식이라고 본다.
이 개념적 도구로 인해 미술관의 의미는 확장되는데 그 확장은 움직이는 미술관이나 접는 미술관, 그리고 상상의 미술관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1901~1976)의 개념과 같은 형식과 공간개념의 확장이 아니라 미술관과 사회가 서로를 자기 내부에 굴절해 들이는 상호 권력관계와 이해관계로서의 확장을 의미한다.4장 「확장된 미술관」 그리고 그 이해관계가 보다 적극적이고 전복적인 형태를 띤 경우가 비엔날레다.7장 「조금 낯선 비엔날레 기행」 미술관과 연동되는 미술관 외부 이해관계의 주체는 때로 국가가 되기도 하고5장 「전후 한국화단의 양식전쟁」, 평론과 미술시장이 되기도 하고6장 「평론의 위기와 미술시장의 활성화」, 미술잡지가 되기도 하고8장 「내가 미술잡지를 읽지 않는 이유」, 대안공간이 되기도 한다.9장 「대안공간의 대안성에 관한 대안적 생각들」
특히 「전후 한국화단의 양식전쟁」에서 저자는 당시 예술장의 헤게모니(Hegemony)를 쥐고 있던 아카데미즘과 국가 이데올로기, 그리고 예술장의 재편을 노린 추상미술과 언론과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부합하고 상충했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서 추상미술이 어떻게 그 기획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밝혔는데, 그 논지가 인정받아 2009년 한국사회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저자는 논지를 작가 개인의 성과로 심화 내지는 확장시킨다.3 이 가운데 오윤론4으로 2002년 한국예총 미술평론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제목들이 암시하듯 그 행간 속에다 한국 현대미술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생각들을 심어놓고 있다.(예컨대 상호비판과 경쟁을 통한 평론장의 자율성 회복과 같은)
그동안 예술사회학을 다룬 책자와 논문은 많았지만 이를 구체적인 현장(미술장 내지는 예술장)에 접맥시켜 미술읽기를 시도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대중문화 읽기는 좀 있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이론과 현실이 서로 만나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은 예술사회학이 현장과 만나지는 접점을 그리고 그 작동원리를 가늠하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저작에서도 밝히고 있듯 저자가 향후 과제로서 열어 놓은 스타일에 대한 연구는 미술장 혹은 예술장의 핵심논리와 관련한 의미 있는 성과를 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 언어의 사용을 제약하는, 언어의 성격과 내용이 그것에 의해서 규정되는, 의미 있는 세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형식적인 조건 내지는 틀
2 볼하임(R. A. Wolheim, 1923~2003) 역시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예술을 삶의 형식으로 정의하면서 예술의 제도적 속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웨이츠(M. Weitz, 1916~1981)와 케닉(W. E Kennick, 1947~2009)은 삶의 형식개념과의 긴밀한 관련 하에서 미학적 논의를 전개한다. 그리고 올드리치(V. C. Aldrich, 1903~1998)는 삶의 형식개념과의 관련 하에서 미적 지각 개념을 확립하기도 한다.
3 오윤(1946~1986), 백남준(1932~2006), 최경태, 노순택, 선무 그리고 송상희와 고승욱 등등.
4 「오윤론, 삶에의 의지로서의 미술」, 저작에서는 10장 「복제와 아우라의 경계에서 잠시 판화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