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2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메이드 인 팝랜드展>이 열렸다. 이 전시는 한중일 삼국의 미술에서 대중문화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 150여 점을 전시한 대규모 전시였다. 신문이나 미술잡지 등 매스 미디어의 주목여부에 관계없이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경향이 1990년대 이후 한중일 지역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전시였다. 주최 측인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의도에 따르면 이 전시는 미술작품을 통해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재맥락화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중일 현대미술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특히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팝(Pop)의 경향을 미술가들의 전략으로 파악하고 전시된 한중일의 미술을 1960년대 미국의 팝아트와 구별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도는 충분히 평가할만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공기처럼 호흡하며 살고 있는 대중문화의 현실이 때로 단편적으로 인용되고 있다는 점 혹은 압축된 미술작품으로서 미술관을 통해 만나게 되는 특별한 회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시의 사회문화적인 의미 또한 적지 않았다. 한편 이들의 팝아트가 정치지도자나 대중적인 스타를 대량제작한 작품으로 표현하던 1960년대 미국의 팝아트와 부분적으로 오버랩되면서 한중일 각 지역 특유의 맥락에서 확산되어간 점은 분명 인정해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냉전구조의 붕괴와 때를 같이하여 한중일 지역에서 이러한 경향이 확산된 사실 자체를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는 만큼 최근 한중일 미술계의 중요한 현상을 조명해보는 기회로서도 뜻 깊은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메이드 인 팝랜드展> 포스터

하지만 기획자들의 진지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시에서는 출품작들에 대한 명확한 범주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메이드 인 팝랜드’라는 다소 애매한 주제가 정해졌다. 전시의 성격자체가 모호하게 설정된 셈이다. 전시제목에서만 팝아트를 피했을 뿐 팝아트로 규정하는 일 자체를 벗어나 새로운 규정을 시도하지 않은 사실 또한 아쉬운 대목의 하나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영웅’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가 주창한 개념, ‘스펙타클의 사회’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가 주창한 개념, ‘억압된 것들의 귀환’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주창한 개념,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이 주창한 개념 등 대중문화에 대한 기존의 저술들이 지적한 경향을 연역적으로 적용하려 한 시도로 인해 거북한 섹션으로 구분되었다. 오히려 존재하는 현상에서 출발하여 귀납적으로 풀어가려 했다면 더 소화하기 쉬운 전시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 요시토모, <Mumps>(1996)

사실 팝의 요소들을 채택한 경우라고는 하나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우가 조금씩 다르고 각국 미술가들의 개인별 경향 또한 동일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 이미 1970년대부터 코카콜라나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작품에 도입한 예들이 등장했고,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혹은 대중문화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다양한 팝의 요소들을 작품에 도입한 예들이 등장했다. 허나 1990년대 등장한 일부 미술가들의 작품에서 대중문화의 모티프들이 등장하고 이를 ‘코리언팝’으로 부르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그들의 소재나 내용선택이 전략적인 것이었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확히 말해, 대중문화 이미지와의 안일한 야합(野合)이라는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편 1990년대를 지나 침체된 미술시장이 되살아나고 대중문화의 요소를 사용한 일군의 미술가들을 일컬어 미술시장으로부터 선택받은 미술이라고 부른 빗나간 인식은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일반대중이 알기 쉬운 미술이라는 그 특징이 중요한 요인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확산되어간 까닭이 상업화랑이나 화상들의 작업에 의한 결과라는 점은 사태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다.
왕광이(王廣義)나 위에민쥔(岳敏君), 쩡판쯔(曾梵志) 등에 의해 대표되는 이 시기 중국미술의 경우도 양상은 복잡하다. ‘차이니즈팝’ 혹은 ‘정치적 팝’으로도 불리는 중국의 경우도 양상은 복잡하다. 때로 냉소적 리얼리즘으로도 불리는 중국 현대미술의 이 같은 경향에 대해 하나의 이즘(ism)으로 부르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과거 한 시기 중국인의 일상과 직결되어 있던 시각적 이미지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거기에 정치적인 비판의 메시지까지 담아내는 미술가들의 시도가 일견 흥미로운 현상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표현방식에는 단순히 흥미로운 대중적 표현만으로는 치부할 수 없는 문제가 내재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등을 비롯한 서양 모더니즘의 중요시기가 중국 내 미술교육과 미술계 재생산에서 배제된 채  사회주의 리얼리즘 일변도의 미술계 구조만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만큼 미술가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은 대단히 제한된 것이었고, 그 때문에 대중적인 이미지의 차용이나 반복이 어쩌면 최대한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결국 때로 그리스·로마의 조각상에 인민복을 입히거나 르네상스 회화 속 인물상을 동물의 모습으로 치환시키는 키치(kitsch)적 취향의 안일함에 이르면 아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작품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양 자본주의 국가의 미술 저널리스트나 큐레이터, 콜렉터의 관심과 화교자본의 영향권 안에서 매매되고 거래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욱이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본주의의 유력시장이 안고 있는 불안정성이 미술시장의 팽창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은 문제를 더욱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요인이 되고 있다. 비록 그들이 같은 중국미술가라고 해도 1989년 위안밍위안(圓明園)문화혁명 이후 중국작가들이 모여 거주하던 지역이었으나 톈안먼(天安門) 사태 후 정부에 의해 해체에 모였던 일군의 미술가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통해 그들의 미술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일본의 경우 또한 무라카미 타카시(村上 隆)나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의 작품이 메이저 미술관을 포함한 소위 미술계 권력에서는 무시당했음에도 캐릭터나 팬시상품으로 제작되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점이나 미술경매 시장에서 주목을 받아 고가로 매매되는 상업적인 현상에만 주목하는 것도 답답한 문제다. 물론 제프 쿤스(Jeff Koons)의 영향을 받으며 일본 대중문화의 뿌리를 드러내려 한 무라카미 타카시의 시도나 일본의 사회적 본질을 작품에 담아내려는 미스터(Mr.) 등의 경우는 일본사회의 현실과 긴장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1960년대 미국의 ‘반영의 팝’과도 분명히 비교되는 측면이다. 그에 비하면 아이다 마코토(?田誠)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세와도 연관 지어 설명되는 다양한 소재와 내용들을 작품에 담고 있고, <미미짱 시리즈>처럼 엽기적인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반 고흐(V. Van Gogh, 1853~1890)의 <자화상Autoportrait>(1889)이나 마네(E. Manet, 1832~1883)의 <올랭피아Olympia>(1863),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와 같이 대중들에게 익숙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자신의 모습으로 치환시킨 모리무라 야스마사(森村泰昌)의 경우도 기존의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문제를 환기시키려 한 시도를 발전시켜 2000년 이후 일본의 현대사나 세계역사에 관한 메시지들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하나의 이즘으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한중일 현대미술의 이와 같은 경향은 이번 전시회나 학술행사, 전시도록을 통해 제대로 짚어지지 못했다. 작품선정 상의 문제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맥락이 작품을 통해 제시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학술행사에서도 논의되지 못했고, 전시도록에서도 언급되지 못했다. 아이디어의 발단은 좋았으나 전시회 준비과정에서 소화되고 수습되지 못한 채 판이 벌어진 느낌이다. 

모리무라 야스마사, <Seasons of Passion-A Requiem: MISHIMA>(2006)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미국의 팝아트에서부터 제기되었던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던 백남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미술에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나긴 미술사의 전개과정이 이를 증명해준다. 하지만 끊임없이 기존의 미술에 대해 회의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소위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의 족적이 의미하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기존의 미술인식을 절대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팝아트의 경우도 그것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기존의 미술이 가진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신비화한 조형물에 대한 문제제기로서, 즉 일상의 물건들이 미술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대담하고도 유쾌한 반란에 그 의미가 있음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유럽세계의 지적혼란을 반영한 뒤샹(M. Duchamp, 1887~1968)의 레디 메이드(ready made)에서도 그 이른 예를 찾을 수 있지만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경우, 미술가로서 그가 가지는 중요성은 드라마틱한 생애나 작품이 고가로 팔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1960년대 미국이라는 대량소비사회의 현실을 조형의 차원에서 재단하고 미술의 영역으로 문제제기 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서양의 경우를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지만 그것은 미술이 지닌 가치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미술관의 다양한 역할 가운데 전시회를 통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은 미술의 영역이 확장되고 새로운 인식이 제기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미술관의 중요한 존재이유가 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 이와 같은 역할에 충실한 미술관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큐레이터를 포함한 미술관 관계자의 인식전환과 깨어있는 관객의 관심으로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