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묘년 설을 앞두고 역사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두 편이 개봉했다.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과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이 그것이다. 두 편 모두 코미디로 분류되지만 천년이 넘는 시간차만큼이나 소재의 무게에 큰 차이가 있다. 영화에 대한 평론이라기보다는 역사를 소재로 하되, 구성과 내용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역사연구자의 시선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평양성>과 <조선명탐정>은 시기나 사건, 인물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비교된다. <평양성>의 김유신정진영 분, 남생윤제문 분·남건류승룡 분·남산강하늘 분 형제 등 주요 등장인물은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기록이 있는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영화 속과 기록 속의 행적은 크게 다르다. 연개소문이원종 분은 전쟁 중에 죽지 않았으며, 동생인 남건이 투석기로 당군 진영에 날려 보낸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은 실제로는 평양성이 아니라 국내성에 머물며 당에 망명했다. 화살을 맞고 쓰러진 남건은 자결하려다 미수에 그쳤고, 사로잡혀 당으로 끌려갔다. 문무왕황정민 분은 평양성에 가지 않았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김유신이 평양성 전투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 평양성 포스터(좌)와 조선명탐정 포스터(우)(2).jpg
이렇게 볼 때 <평양성>은 668년 음력 9월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에서 벌어진 나·당연합군과 고구려군의 전쟁을 영화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7세기 한반도를 무대로 벌어졌던 국가 간의 갈등과 그 갈등 속에 던져진 ‘평범한’ 인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21세기 초반 한반도가 처한 대내외적 현실 그리고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생활에 투영해 보고자 한 의도가 강해 보인다. 고구려군의 신무기인 ‘대형 연발 쇠뇌’, 요즘말로 ‘다연장로켓’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이런 점을 상징한다. 이런 점은 보기에 따라 <조선명탐정>도 비슷하다. 18세기 후반 정조가 다스리던 조선을 배경으로 하여 국왕과 노론세력의 갈등, 천주교의 새로운 지향과 기존질서의 충돌,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집단과의 뒷거래 등등 복장과 인물을 요즘으로 바꾸어 놓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현실감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정조가 “수령의 잘잘못을 규찰하고 백성들의 괴로움을 살피”기 위해 영화의 무대가 된 적성을 포함한 경기지방에 암행어사를 파견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1794년 정조 18년의 일로 이때 적성에 파견된 어사가 다름 아닌 다산 정약용이었다. 영화 포스터에는 ‘정조 16년,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그해 공납의 폐단과 관련한 정조의 전교(傳敎)가 『정조실록』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적성에 어사를 파견했다는 기록은 없다.
영화 조선명탐정의 한 장면
개연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두 영화는 크게 다르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때 늘 나오는 이야기인데, 예를 들어 KBS의 <불멸의 이순신>(2004~2005)은 많은 가공의 인물을 배치하여 극적인 요소를 높였지만 역사왜곡이란 비판에서는 자유로웠다. 반면 SBS의 <연개소문>(2006~2007)은 사료에 등장하는 인물이 등장인물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거꾸로 역사왜곡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 주제로 다루는 시대적 배경과 조건에서 비롯된 면이 있다. 고대사는 사건과 사건,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인과관계로 엮어 극적인 요소로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사료가 단편적이며 시간적 간극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나 감독의 의중을 쉽게 개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실존인물의 행적에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거꾸로 조선시대의 경우, 각 인물에 대한 기록이 고대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충실하고 또 주변의 수많은 인물들, 사건들과 얽혀있으며, 사료의 총량 자체도 시간순서에 따라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 나아가 직접 사료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과 사건이라 하더라도 시대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증이 가능하여 가공의 인물과 사건을 끼워 넣는다 하더라도 개연성에 바탕을 둔 설정이 가능한 편이다. 고대사의 경우와 정반대인 셈이다.
영화 <평양성>의 이준익 감독
<평양성>은 그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은 김유신을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인물로 내세웠는데, 그 자체는 ‘역사왜곡’이다. 평양성이 함락되고 당군이 이미 보장왕정규수 분과 고구려 포로를 끌고 돌아갔다는 얘기를 듣고 중도에 발길을 돌린 문무왕이, 당당히 신라군을 이끌고 당군 진영에 도착하여 당군과 맞선다는 설정 역시 한국인의 시선에서는 흔쾌하고 감동적이지만 실제로는 역사왜곡이다. 영화를 관람한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평양성>의 장면이 역사의 장면이라 느끼는 순간 역사왜곡은 엄청나게 파급된다. <조선명탐정>에서 친히 적성에 행차하여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하는 정조의 모습 또한 역사왜곡이다. 임금의 거둥을 빠짐없이 기록한 『정조실록』에 그런 기록이 없기 때문에 분명하다. 그러나 같은 역사왜곡이라도 영화 속에서의 비중을 보면 크게 다르다. <평양성>은 중심인물의 설정이나 등장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조선명탐정>은 정조의 거둥 이외에는 왜곡이라 할 만한 장면이 없다. 정조는 실존인물이되 그가 상대한 인물들은 모두 가공의 존재기 때문이다. 역사연구자로서는 이런 점에서 <평양성>이 약간 아쉽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의미여부를 떠나 기왕 668년 음력 9월의 평양성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침략자 당군을 맞이한 평양성 안 고구려 사람들의 갈등과 고뇌를 그릴 수는 없었을까하는 점이다. 전작 <황산벌>(2003)의 백제 거시기처럼 평양성에도 수없이 많은 고구려의 거시기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오동진, 「88만원 세대가 바라본 ‘평양성’은?[이준익-우석훈 대담]」, <엔터미디어>, 2011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