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앞에 세워진 김광석 노래비

<이등병의 편지>나 <서른 즈음에> 한 번 불러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와 같은 시대에 청춘을 보냈던 이에게, 또는 이제 청춘에 접어든 이에게, 그의 노래는 다독이는 위로며,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0)에서도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슈퍼스타 K>의 히로인 장재인도 그의 노래를 불렀다. 이런 신드롬 이전에도 김광석의 노래는 우리네 삶 도처에 그대로 있었다. 이것은 차라리 하나의 장르다. 그의 노래가 가진 작지만 묵직한 힘 때문이다.

아티스트와 관객의 구분 없이
김광석이 떠난 지 15년이 되었다. 해마다 그가 떠난 1월이 되면 유난히 그의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다. 김광석의 기일인 지난 1월 6일 대학로 곳곳에서 그를 추모하는 크고 작은 모임이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기린 뒤 향한 곳은 학전 블루 소극장이었다. 생전에 김광석은 이곳에서 1,000회의 공연을 했다. 이를 기념하는 노래비가 극장 앞마당에 세워져 있다. 노래비 앞에 붉은 장미를 올리는 추도제가 있은 후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모임을 주최한 학전에서는 추운 날 고인을 위해 모인 팬들에게 공간을 제공했을 뿐이며, 정해진 공연의 형식이 없는 자유로운 자리라고 했다. 무대에는 그의 사진과 기타 몇 대, 건반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엄마, 아빠 등에 업혀 온 꼬마도 있었고, 손을 잡고 들어오는 연인도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중년의 어른과 얼굴에 여드름이 가시지도 않은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학전의 대표인 김민기와 박학기, 강승원, 이은미, 김광민, 루시드 폴 등 고인을 사랑했던 아티스트들이 팬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입장했다. 경기도 어딘가에서 피시방을 운영한다는 팬,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한다는 팬, 그의 노래를 부르다 목이 메는 이도 있었다. 이은미도 루시드 폴도 객석에서 걸어 나와 같은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곳에선 세종문화회관에나 가야 들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연주도 팬이 부르는 노래와 다르지 않았다. 김광민은 미처 세팅되지 않은 건반 높이 때문에 앉지도 서지도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주했다. 이날만큼은 아티스트와 관객의 구분 없이 모두 김광석의 팬으로 자리했다. 공연은 끝날

줄을 모르고 자정이 다 되도록 이어졌다. 관객과 출연자의 구분                                                           김광석

도 없고, 러닝타임 또한 정해지지 않은 희한한 형태의 공연이었다. 당연히 유료공연도 아니었다. 이런 공연이 가능했던 것은 김광석, 그가 가진 오리지널리티와 대학로의 학전 소극장이 가진 공간적인 의미 때문이다.

홍대의 클럽과 대학로의 소극장 공연
학전은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1994)을 만든 김민기 대표가 이끄는 극단이다. 1992년에 개관해 지금은 연극을 주로 하고 있지만,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로 시작되었고 ‘동물원’, 장필순, 이은미, ‘어떤 날’,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들국화’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콘서트를 열었던 곳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김광석도 학전 소극장에서 1,000회의 콘서트를 했다. 회귀본능처럼 이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양수리 라이브 카페에나 가야 볼 수 있었던 가수들을 대학로에서 다시 만날 수 있고 함춘호, 이병우 등 거물급 아티스트들과 루시드 폴, 이적 같은 젊은 뮤지션들이 콘서트를 열고 있다. 소극장 콘서트가 가진 소통의 매력에 아티스트와 관객들이 다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홍대에 인디밴드 클럽공연이 있었다면, 그 이전 대학로에는 소극장 콘서트가 있었다. 현재 홍대 인디 씬(scene)의 부흥으로 여겨졌던 클럽데이는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는데 마지막 클럽데이 바로 전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故 이진원의 추모공연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클럽데이가 없어졌다고 해서 인디밴드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뿐 그들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기 이전에도 그곳에서 노래하고 꿈을 꿨으며, 아직도 그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홍대의 클럽과 대학로의 소극장 공연은 부흥했던 시기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힘겹지만 굳건하게 두 곳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은 같다. 사람들은 이리로 모이기도, 저리로 모이기도 한다.

추모모임에 참여한 김광민(좌) / 루시드 폴(중) / 이은미(우)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수한 힘
다시 복고가 유행이다. 환갑을 넘긴 ‘쎄시봉’ 멤버들의 콘서트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젊은이들 사이에 할아버지뻘 되는 그들의 이름이 회자되는 것은 이색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런 열광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은 쉽게 싫증을 내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 소비의 성격이 그러하다. 유행이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것은 더 오랜 생명력을 가지고, 사라지는 것들은 다시 까맣게 잊혀진다. 김광석 열풍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잠잠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그는 미련스럽도록 노래했고, 그 노래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이런 힘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다. 김광석은 하나의 신드롬인가? 그렇지 않다. 학전 블루에서 있었던 김광석 추모모임은 외부의 열풍과 유난을 등지고 앉아 조용히 고인을 기리고 노래하는 그들만의 공연이었다. 그 흔한 보도자료 한 줄 없었으니 참으로 김광석의 팬들다운 모임이었다.
공연기획자로서 사람들을 소비하게 하는 것들에 무심할 수 없다. 일면 유행을 이용하고 주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김광석의 노래처럼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수한 힘은 생명력이 있다고 믿는다. 확 타오르고 꺼지는 것이 아니라 작게나마 오래도록 빛을 내는 그런 힘 말이다.
학전 블루 소극장 앞에 세워진 김광석 노래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잘못된 사실에도 대충 익숙해져 버리려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한번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제 노래 인생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행복하세요.

그가 없어 아쉽지만 그의 노래가 있어 큰 위로가 된다. 그의 바람대로 된듯하다.

이미지 제공_ 극단 학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