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내부

서울시립미술관의 2011년 첫 전시 은 2000년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작가들 중 22인을 선정해 기획한 전시다. ‘SeMA 2004’,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그 대상일 터인데, 그래서 이 전시는 독자적인 기획전의 성격보다는 최소한 서울시립미술관의 제도적 시스템으로 여과된(혹은 검증된) 작가들 중에서 “이미지의 문제, 즉 시각성에 주목한 작가들을 선별”한 뒤, ‘Part1. 이상한 거울_환영과 유희’, ‘Part2. 이미지의 배반_아는 것과 보는 것’으로 나누어 살핀 것이다.
기획자가 쟁점화하려는 이미지와 시각성의 문제는 매스 미디어(mass media)의 변화된 환경 속에서 ‘미술’의 개념적 정향성에 대한 흔들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1999년 대안공간 이후 등장한 후기 신세대 작가들이 다층적으로 펼쳐낸 이미지의 새로운 미학적 현상들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사건의 주체와 그들의 욕망에 따라 인식하고 기억하는 바가 전혀 다름을 드러내며 인식의 ‘틈’을 제시한다. 이들은 모두 이미지와 현실이 일치하지 않고 생겨나는 틈을 보여주며, 결국 이미지는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시스템과 욕망에 의해 코드화되어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고 다소 무겁게 고백하고 있으나, 그러한 비평적 판례는 이미 1990년대에도 제기된 바 있다. 기획자의 주장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면이 없지 않은데 ‘이미지의 틈’이란 이것과 저것 사이의 ‘다름’이나 ‘차이’가 아닌 이미지(image)라는 시각기호의 어떤 상(심상)을 지시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미술이란 개념이 때때로 확정적이었다면 이미지란 불확정적인 것이니까. 하여 틈은 그런 불확정적 이미지들이 발화하는 에너지며, 미학적 힘일 수 있다.

<SeMA 2010_이미지의 틈展> 포스터

이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까지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그 발화점으로부터 번져나간 색색의 리트머스와 다르지 않다. 나는 그들이 예술의 시각성에 주목하기보다는 미술이라는 제도적이며 규정적인 어떤 ‘스트레스’로부터 개념적 이탈을 수행했으며, 그 지점에서 보다 자유로운 ‘상’을 구축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 제시하는 이미지의 문제는 그래서 생각보다 멀리 되돌아가 소실되지 않은 원점을 찍고 돌아올 필요가 있다. 지금 여기의 그들을 확증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말이다. 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사십대 초반의 작가들의 원점은 20년 전이다. 틈의 시작은 거기였을 터다.
미학적 이데올로기가 부침했던 1980년대가 가고 1990년대 이후에 이르면 한국 현대미술의 스펙트럼이 일순 모노타입(monotype)에서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으로 화려하게 변신했음을 다양한 자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대결양상으로 보였던 단순구도가 와해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화 속으로 빠르게 이행해 가는 양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시각예술의 자유화와 민주화가 시대현실의 수레와 동반질주했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시대령(時代嶺)이 우선 떠오른다. 1970년대 이벤트(행위미술, 헤프닝, 대지미술, 실험미술, 설치미술이 혼합된) 아방가르드와 1980년대 정치적 아방가르드에 대해 폭압적 탄압을 일상화했던 독재가 끝나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승리가 확장되었던 것도 그렇다.

일명 ‘신세대’라 불리었던 1980년대 말의 신진작가들은 1980년대의 컬러풀 시각문화와 도시문화, 대중 소비문화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 내부의 키치적 현상을 미학화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들은 1993년의 <휘트니비엔날레 서울展>과 1994년의 <민중미술 15년展>을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체화했고, 여성·휴먼·환경·테크놀로지와 같은 이슈를 주제화했다. 뿐만 아니라 “유머와 유희, 가벼움과 천박함, 충격과 기발함, 왜곡과 그로테스크를 선호하며, 파편적이고 분열적이고 일시적이고 우연적이고 사적인 것을 중시”했다.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에서 속칭 세계미학의 현재를 수혈했다면, 신세대 그들은 <민중미술 15년전>에서 근대미학의 종언을 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보았던 근대미학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한편 1994년 문민정부가 시작되었고, 그 이듬해 광주비엔날레가 탄생했으며, 서태지의 등장으로 대중문화가 일대 혁명이 일었으므로 1990년대 후반의 후기 신세대는 1980년대 말의 신세대와는 또 달랐다.
21세기를 주도하기 시작한 후기 신세대의 층위가 바로 그 지점, 그러니까 1997년의 IMF와 1999년에 등장한 대안공간과 밀접하게 연관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와 현실이라는 역사적 책무 따위가 예술가의 정체성과 미학을 결정지었던 시대가 저물고 드디어 자기로부터의 미학 결정권을 갖게 된 것이다. 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색은 그런 것이다. 1990년대 초반을 이끌었던 신세대 작가들의 분열증적인 신미학 강박증을 월경해서 완전히 동일적 세계성을 획득하고 또한 그들만의 주체인식과 노마드적인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자율성 말이다.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세세하게 살펴보면, 우선 예술가 자신의 신화화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동인과 그룹, 집단과 단체를 중시했던 선배들과 달리 이들은 ‘개인의 신화’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예술의 자유화와 민주화의 성취가 그런 자율적 선택권의 한계를 완전히 해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로 그것이 예술의 한없는 정치성일 수 있다. 예술가는 그 스스로 하나의 세계라는 명제는 그래서 가능하다. 에서 보이는 제한 없는 주제와 매체, 그리고 개념적 표현은 한국 현대미술의 무한한 긍정일 수 있다.
두 번째는 문화식민지라는 20세기의 고질적 편두통이 시나브로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널리즘적 비판에서 늘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국 현대미술이 자체로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말의 신세대 미술이었다면 에서 확인하는 것은 서구미술과의 시차가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외여행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를 떠올린다면 지금 여기의 작가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 번째는 이들이 자신의 미학을 계도하려 들기보다는 소통과 공감을 고민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신화를 꿈꾸지만 소통불능의 예술에 대해선 단호히 “노(No)”를 외치는 이들의 모습은 결코 이중적이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가능성이 너무 먼 곳에서 비역사적이며 비현실적인, 그러면서 개인에 가둔 개념적 미술로 흐를 때, 신화의 목록을 자주 업로드하려 할 때, 예술세계의 뿌리보다는 보이는 현상에 치중할 때 자주 발생한다. 그것은 비단 이들 작가뿐만 아니라 이 시대 후기 신세대 전반에서 살필 수 있는 문제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