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그리고 강남
어렸을 적부터 ‘영동 이모’라 불러왔던 어머니의 친구 분이 있다. 친지들에 대한 호칭에 대개 거주지가 붙게 마련인지라 이모의 호칭에도 거주지였던 영동이 붙게 되었다. 여기서 영동은 서울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것으로 지금의 강남구, 서초구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그러고 보니 영동 이모는 여태껏 서초구 논현동에 살고 계신다.
지리적인 개념용어로서의 ‘강남’은 한강의 남쪽을 말하는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강남을 이야기하자면 이와는 조금 다르다. 여기서의 강남은 행정구역으로 보아 서울특별시 강남구와 서초구를 통칭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초구는 1988년 강남구에서 분구되었기 때문에 당초의 강남은 강남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영동과 강남은 동일한 공간을 가리키는 지명인 것이다.

전시로 풀어내는 강남개발의 역사
<강남 40년:영동에서 강남으로展>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서울의 변화상을 되살펴보기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의욕적으로 시도한 ‘서울 반세기 종합전’의 두 번째 기획이다. 지난여름 개최된 첫 번째 기획 <종로 엘레지展>은 서울의 중심인 종로의 모습을 통해 서울의 성장과정을 조명,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강남 40년:영동에서 강남으로전>은 영화로 치자면 <종로 엘레지전>의 속편이나 2탄쯤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라는 영화판의 속설이 전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내심 기대를 안고 전시장을 들어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시는 1970년 영동지구 신시가지 개발계획의 발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울 속 강남이라는 공간의 변화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전시구성에서는 크게 두 단락으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 단락은 강남의 개발과정과 그에 따른 도시의 변화상을 시간 순으로 구성했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시대별 항공사진과 오늘날 길 위에서 촬영한 강남의 일상을 공간별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장의 초입에서 기획자는 “배추밭 혹은 배밭이었던 영동이 상전벽해를 거쳐 오늘의 강남이 되었다”면서 “강남의 형성과정을 되돌아보는 일은 한 시대를 되돌아보는 일”이라고 했다. 전시는 이처럼 영동이 강남으로 상전벽해 되어가는 과정을 사진, 지도 및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실물자료를 동원하여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새로운 형식의 시도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의 특별전시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우선 서울이라는 도시의 모습과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고 그 결과를 전시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박물관에서는 영화, 가요, 사진 등 대중에게 친숙한 매체들을 동원하여 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서울이라는 거대공간을 구획하고 구획된 공간의 다양한 모습을 전시로 보여주면서 도시전체를 반추하게 한다. 강남은 광화문과 종로에 이어 박물관이 구획한 세 번째 공간이다. 광화문과 종로, 강남은 각각 해방이후 서울을 이해하는 데 빼놓아서는 안 될 공간들이며, 박물관에서는 이 공간들을 제법 꼼꼼히 뜯어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앞서 언급했지만 전시의 연속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의 시즌(season) 형식을 취하고 있다. 더 많은 공간이 구획되고 관찰된다면 서울이라는 도시를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은 도시역사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정체성을 확실히 각인시킴과 동시에 대중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강남 40년:영동에서 강남으로전>도 그러한 맥락에서 기획된 전시로서 내용을 떠나 전시제목만으로도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남이라는 공간은 별천지이자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옥의 티
이러한 형식의 전시는 전시를 끌어가는 동력이 유물보다는 스토리에 있기 때문에 패널의 수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시를 보는 내내 패널마다 반복되는 ‘개발’이라는 단어가 눈에 거슬렸다. 똑같은 형태의 패널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개발이라는 단어는 보는 사람에게 있어 전시의 핵심어로 각인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강남이 개발행위를 통해 탄생한 공간임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는 개발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너무 단편적인 수단으로 강남이라는 공간을 들여다 본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공간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영동과 강남 모두 그 안에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사람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40년 전 영동에 살았던 사람 혹은 지금 강남에 살고 있는 사람도 드러나지 않는다. 진정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오늘의 강남을 있게 한 개발과정이 아니라 강남이라는 공간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도시공간으로서 서울에 대한 이해
지난날 강남의 개발모델은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의 척도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개발이 가져다 준 풍요로운 삶의 이면에는 부동산 투기, 환경파괴, 원주민들의 보상 등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산재해 있다. 이들은 표면에 드러난 성장, 발전 등의 단어에 감추어져 있으나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기도 하다. 강남이 영동이던 시절부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우리사회가 조금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기획의도처럼 강남의 형성과정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반세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리라 믿는다. 또 이러한 결과물이 중첩된다면 서울역사박물관이 만들어가고 있는 도시공간으로서 서울에 대한 이해라는 거대한 퍼즐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다만 그 퍼즐의 일부분이 될 이번전시를 관람하면서 어릴 적 극장에서 보았던 <대한늬우스>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