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9일 광주디자인센터에서 돌프리마켓(Doll free market) 행사가 열렸다. 돌프리마켓은 말 그대로 인형에 관한 물품들을 자유롭게 거래 혹은 전시할 수 있는 행사로서 지난 2002년 서울 돌프리마켓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광주에서 현재까지 총 41회 개최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진다. 돌프리마켓은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보통 1년에 4~5회 정도 2~3개월 간격으로 열리지만 정확한 날짜는 행사장 대관사정에 따라 결정되므로 1개월쯤 전에 홈페이지나 클럽을 통해 공지된다. 이번 돌프리마켓은 41회째 행사라는 것 외에도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돌프리마켓이라는 의의를 가졌다. 이번 행사는 평소 지리적 제약으로 돌프리마켓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전라도 지역 인형 마니아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행사는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열렸으며, 추첨을 통해 인형관련 물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정오쯤 행사장소인 광주디자인센터에 도착했다. 일단 행사장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입장료는 4,000원이었으며(서울 돌프리마켓의 경우 방문자 수가 월등히 많아 2,000원 정도라고 한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서 판매자들이 테이블 몇 개에 부스를 차린 채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스에는 인형을 위한 옷과 가발, 안구 등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실제로 그 물품들을 착용한 인형들 역시 전시되어 있었다. 돌프리마켓 방문자의 대부분은 십대에서 삼십대까지의 여성이며 당연하게도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인형을 좋아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들은 단순히 하나의 수집품으로서 인형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마치 애완동물처럼, 자식처럼 혹은 또 하나의 자신처럼 인형을 아끼고 꾸미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상당수의 방문자들이 자신의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안고 온 인형은 주로 구체관절인형(ball jointed doll)이나 커스텀돌(custom doll)이었다. 구체관절인형은 관절을 둥근 구로 만들어 이음으로써 다양한 자세를 구사할 수 있으며, 섬세한 묘사로 보다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지닌다.
독일의 초현실주의 조형미술가인 한스 벨머(Hans Bellmer, 1902~1975)가 구체로 관절인형을 만들어 인체를 표현한 것이 시초이며, 이를 1980년대부터 일본의 전통인형 작가들이 응용하면서 현재의 구체관절인형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예술의 한 장르이던 구체관절인형이 대중적 사랑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말 일본의 한 인형회사가 우레탄 재질로 대량생산하여 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형공방에서 활발한 인형제작이 이뤄지고 있다. 우레탄 재질로 만들어진 이 인형은 보통 발가벗은 모습에 대머리 상태로 소비자에게 전해진다. 이 인형은 머리부분을 열어 안구를 교체할 수 있으며, 가발을 바꿔 씌움으로써 무궁무진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물감과 파스텔 등을 이용해 취향대로 화장을 바꿔줄 수 있으며, 재질의 특성상 사포 따위로 문질러 볼살, 턱, 눈 크기 등을 바꾸는 성형(custom)이 가능하다. 크기는 손바닥만 한 것부터 작은 강아지만 한 것까지 다양하다. 커스텀돌은 구체관절인형보다는 친근한 모습으로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마론인형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얼굴에 눈을 그려 넣는다거나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카락을 직접 심는 등 자신만의 인형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구체관절인형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가발은 인형크기에 따ㅏ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현대인을 이끄는 인형의 매력이다. 남과는 다른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대를 호가하는 이 인형들은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개개인의 욕구를 발산하는 하나의 출구로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인형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옷과 가발을 만들 수 있지는 않다. 인형에게 입히고 싶은 옷이나 신발, 안구 등을 구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인터넷에는 수많은 인형 동호회들이 있다. 전국 각지에 퍼진 인형 마니아들은 카페나 클럽을 통해 서로의 인형을 구경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인형관련 물품을 구매한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화면으로 나누는 대화로 전부 풀릴 리 만무하며, 다른 사람의 인형을 실제로 보고 싶은 마음도, 물건을 실제로 보고 사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런 마음들이 만나 열리는 행사가 돌프리마켓이다. 돌프리마켓은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 외에 만남의 장 역할을 한다. 인터넷상에서 친해진 사람들은 행사장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인형을 안아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며, 취향을 공유한다. 말하자면 아직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장터역할을 하는 것이다. 온라인을 통해 만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그 친구의 친구를 다시 온라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다음 행사장에서 만나 그 사람과도 친구가 된다. 이런 네트워크는 전국적인 규모를 이룬다. 온라인 세상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 현실로 만드는 역할이 돌프리마켓에 있다. 그래서 인형 마니아들은 돌프리마켓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은 더 강한 연대를 형성하고 인형시장의 확대를 불러온다.
광주 돌프리마켓은 이런 인형 마니아들의 기다림에 다소 못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막 도착했을 때의 첫 소감은 정말 이곳에서 돌프리마켓이 열리느냐는 것이었다. 진행 중인 행사가 있는지 마저 의심스러울 만큼 입구는 한산했다. 돌프리마켓 개최를 알리는 플래카드는커녕 이렇다 할 포스터도 없이 조그마한 안내문 몇 장이 붙어있을 뿐이었다. 1층에 들어서서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엘리베이터 버튼 옆에 2층이 행사장임을 알리는 종이가 한 장 붙어있을 뿐 눈에 띄는 안내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행사장에 도착해서도 실망감은 여전했다. 일단 장소 자체가 서울 돌프리마켓 행사장에 비해 터무니없이 협소했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였으며, 참여부스의 수도 너무 적었다. 개인이 소소하게 준비한 물품을 들고 나온 따뜻한 교류를 기대했으나 대형쇼핑몰에서 전적으로 판매를 목적으로 참여한 행사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히 볼거리도 적어 입장료 4,000원이 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방문자들의 교류를 위한 배려도 부족했다. 인형을 안고 모인 사람들은 한쪽 구석 계단에 모여앉아 바닥에 가방이나 짐 등을 내려놓은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프리마켓은 앞서 말했듯 단순히 사고파는 행위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다. 취미를 공유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한 목적 또한 분명히 있다. 방문자들의 교류를 위해 대화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쪽 구석에 카페테리아를 차려 음료를 판매하고 수익을 얻어 입장료를 줄이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광주 돌프리마켓은 광주지역의 인형 마니아들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 각 지역의 인형 마니아들을 위한 자리였다. 아무래도 광주에서 열리는 첫 번째 행사였기 때문에 많은 노력에도 미숙한 점이 많지 않았나 생각된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2회, 3회 광주 돌프리마켓을 거치며 더 발전해 나갈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