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한 가지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당신이 혹시나 대중음악을 하고 싶다면? 열심히 연습해서 어떻게든 기획사 혹은 음반사와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가수로의 데뷔. 노래든 예능이든 가수로서의 맥을 이어주는 것은 ‘매출액’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몸을 담그고 있다. 그런데 그 음악이라는 것이 하필 비주류 음악이라면? 유명 작곡가와 최신 트렌드가 버무려주는 안전빵(?)의 노래들 대신 나만의 멜로디와 내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이것은 답이 없다. 예술을 하려면 돈을 등지고 불굴의 애정으로 투항하라. 안 그래도 재능이 바닥을 지배하는 세계의 인재풀은 바늘구멍처럼 좁아지고 있다.(이 시점에서 지난 2월 유명을 달리한 故 최고은 작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실은 자본에 의해 돌아가는 대중음악 시장 속에서 음악을 하고 싶은 자의 선택은 두 가지다. 전자는 앞서 말한 대로, 그리고 후자는 리스너(listener)로 만족하는 것. 하지만 우리는 제3의 길을 근래에 만났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1을 기치로 내걸고 본인들조차 생각하지 못한 방향에서 광풍을 일으킨, ‘붕가붕가레코드’가 바로 그것이다. 2008~2009년 <싸구려 커피>라는 노래로 싱글 1만 3,000장, 앨범 5만 장이라는 음반판매량과 ‘88만원세대의 송가’라는 언론의 포커스, 그리고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이라는 인디 씬(scene)으로서는 오랜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이룬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기하’의 소속 레이블이다.

센바 아트 카페의 입구

 그리고 여기 약 90년 전 동양의 맨체스터(Manchester)를 꿈꾸었다는 오사카(大阪)란 도시 어딘가에는 몇 군데 수상한 장소가 있다. 그중 센바(船場)라는 쇠락해가는 옛 섬유도매상거리이자 중심업무지구-업무용 빌딩과 각종 요식업이 망라된 그곳에, 1층에 편의점이 있다는 것 이외에는 한 번 가서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한 잡용빌딩이 하나 있다.
교실 한 개 정도 크기에 커피를 팔지 않는 센바 아트 카페가 이곳 지하 1층에 입주한 것은 지난 2006년. “눈에 띄지 않는 도심의 예술공간”이 콘셉트라고 디렉터는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예술이란 벽면으로부터 1.5미터 정도 떨어져서 해설을 들으며 산책하는 고고한 감상이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생경한 리듬, 낮은 눈으로 산책하는 동네, 근대건축과 영상과 문자가 빚어내는 충돌, 때로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그러한 예술이다. 여러 종류와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정기 혹은 부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가운데, 가장 희한하다 싶은 것이 2월 한 달 내내 하루에 한 가지 이벤트가 열리는 MAC먼쓸리 아트 카페(Monthly Art Cafe)다. 올해로 3년째 개최중인 이벤트의 원칙이 바로 ‘제작비 무료, 참가비 무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지난 2월 2일 저녁, 무료제작이라는 MAC의 관행을 깨고 붕가붕가레코드의 대표 곰사장본명 고건혁이 초청자로 서서 한국의 인디음악 씬과 자신들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에 대해-통역의 입을 빌리자니 어딘가 어색한 오사카 사투리로-이야기했다. 알려져 있듯 서울대 출신인 그들이 어떻게 관악이라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두뇌와 풋내와 욕망이 뒤범벅된 서울의 변두리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붕가붕가레코드는 2005년, 학내에서 이미 자주적인 음반제작의 경험을 거친 곰사장 외 몇 명이 졸업을 기점으로 하여 ‘지속’을 고민하며 만들었다. 십대시절 《아워 네이션》홍대 앞 클럽 드럭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이 참여해 만든 인디음반 시리즈을 들으며 성장한 그들에게 이십대에 다가온 생업과 창작의 분기점에서, 그들은 두 마리 토끼를 쫓았다. 하지만 뛰지는 않고 걸으며 무언가 만들어내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홍대 4대 여신과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언니네 이발관’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과의 접점도 음악성도 한 편에 갖추고 있는 한국의 인디음악 씬이지만 붕가붕가레코드의 성공이 남다른 것은 지속가능한 딴따라질로 대표되는 그들의 지향성과 운영방법 때문이다. 장기하의 싱글 《싸구려 커피》(2008)를 비롯한 그들의 음악은 DIY적 생산방식을 거쳐 모두들의 손에 의해 ‘팔 수 있을 만큼만’ 소량으로 발매되었고, 그들에 의해 세상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프로젝터를 통해, 이불로 창을 틀어막은 자취방에서 CD를 굽고 개성적인 디자인이 입혀진 스티커를 붙여 그것을 들고 레코드숍을 돌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비치고, 장기하가 읊조리는 포크가 지하공간에 울려 퍼졌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는 하지만 문화의 생활화가 잘 보급되어 있는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확실하게 전해진 것은 달변가 곰사장이 말한 “새로운 세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세대란 곰사장 같은 생산자와 그들에게 반응한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뜻하는 것이었다. 즉, 카세트테이프와 CD에 이어 이제는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한 음원이 오가는 장소 인터넷에서,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로우 퀄리티(low quality)의 음반이 소비된다. 장기하의 성공 이전에도 그야말로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간 ‘브로콜리너마저’의 EP가 붕가붕가레코드의 작업이었다는 사실 또한 상징적이다. 적어도 이들의 리스너들은 정제되고 보장된, 사랑과 이별로 대량생산된 하이 퀄리티(high quality)가 아닌 투박하고 없어 보이는 음울과 재기 넘치는 로우 퀄리티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적어도’를 넘어선 다수가 수면위로 오르며, 붕가붕가레코드는 벤처(venture)에서 다음 단계로 안착했던 것이다.
“붕가붕가레코드가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의 음악계에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대안적인 활동을 계속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월 5일 저녁 또 하나의 이상한 장소, 항구 옆 쇠락한 공장변 옛 가구공장 터에 자리잡은 코포 키타카가야(copo 北加賀屋)에서 열린 또 하나의 토크에서 함께 초청된 브로콜리너마저의 프론트맨 덕원본명 윤덕원은 이렇게 말했다. 대중적인 성공을 기록했지만 그와 장기하는 여전히 인디 씬에 있다. 그들을 끌어안고 회사로서의 운영을 고민하는 붕가붕가레코드는 사업을 늘리고 일본에도 진출하는 한편, 여전히 손으로 만든 CD, 수공업 소형음반을 발매하고 있다. 붕가붕가레코드에서는 공통적인 부분을, 자신의 레이블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펼치고 있다는 덕원과 곰사장의 시선이 겹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수익을 위한 사업이 되어버린 운영과 계속되는 그들의,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 창작에 대한 생산,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의 지속을 그들은 “절충”이라고 불렀다.

센바 아트 카페의 행사모습

 뒷받침 받지 못하는 예술의 탄생은 미미하다. 센바 아트 카페와 코포 키타카가야2, 둘 다 일이십 명 남짓의 사람이 모인  소규모 행사였다.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을 것 같은 행사’를 끈덕지게 열어나가고 ‘사람들이 별로 듣지 않을 것 같은 음악’을 끈덕지게 발매하는 그들이 이곳에서 만났다. 지속을 위한 방법은 다르다. 센바 아트 카페는 대학의 연구기관으로서, 코포 키타카가야는 비슷한 단체들의 공동출자운영으로서 존립하고 있다. 두 단체에 비해 붕가붕가레코드를 가진 우리가 희망적인 이유는 장기하의 싱글로 미미한 활동을 끝내려 했던 붕가붕가레코드의 존립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대중의 움직임으로부터 결정지어진 까닭일 것이다.(물론 이는 우리가 더욱 어두운 상황에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시 이야기의 시작을 되짚어 보자. 이번에는 음악 대신 다른 예술분야를, 그리고 ‘취업’이라는 말을 넣어 보는 것이다.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는”이라는 구절브로콜리너마저, <졸업>이 공명한다. 재능 있는 자의 세계에서 남의 일처럼 벌어지던 일들이 취업이라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퍼져나가고 묵묵부답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을 노래가 쓸어내린다.

코포 키타카가야의 행사모습

 그들은 레이블로 존재하면서 ‘재미있고 작은, 독립적인 음악’을, 마치 외계인에게 지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모스 부호처럼 내보낸다. 그들이 나사(NASA)와 다른 점은 그들이 쏘아올린 허공에, 사실은 무수한 별이 있고 그것이 단지 육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서울대라는 프리미엄에 그 성공의 이유와 한계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미미한 활동의 존재가능성을 계속해서 알린다. 홍대의 두리반에서는 토요일마다 열리는 자립음악회와 같은 흐름도 생성되었다. 더 어둡지만 그래서 더 빛이 보이기 쉬운 희망적인 지금, 이곳에서 얼터너티브(alternative)가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은 후일담이 아닐 것임을, 곰사장은 십 년 뒤에도 이런 자리에서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공언하며 이 날의 이야기를 끝맺었다. 

1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참조할 것. 붕가붕가레코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푸른숲, 2009)
2 양 행사는 오사카시립대학 도시연구플라자 센바 아트 카페 디렉터인 나카가와 신 교수와 산토리문화재단에서 조성금을 받고 있는 오사카대학의 요시자와 야요이 연구원의 초청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필자는 전체 코디네이터 및 통역을 담당했다. 초청을 수락해주신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님, 덕원님, 그리고 NPO remo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미지 제공_ 센바 아트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