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전역을 강타한 <산울림> 열풍
지난해 북한사람들은 무슨 공연을 가장 많이 봤을까. 남한과 같은 ‘자유경쟁’이 없는 북한사회에서 관람객 수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 것이고, 또 북한에서 상연되는 공연들의 관객 수가 모두 공개되는 것도 아니지만 대규모 관객사례를 보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단연 첫째고 이어 ‘제2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이 두 번째며, 그 다음 세 번째가 국립연극단의 경희극(輕喜劇) <산울림>이다.

<아리랑> 공연장면

제 2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장면

        
<아리랑>은 지난해 8월 2일부터 10월 25일까지 약 3개월 가까이 상연된 장기공연으로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고, 2002년 4월 첫 공연부터의 누적집계는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랑>은 ‘5월 1일 경기장’에서 진행되어 회당 입장관객 수가 2만~3만 명에 이르는 대형 이벤트로 관객 수에서 다른 모든 공연을 압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제2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은 4월 11일부터 19일까지 평양시내의 10여 개 공연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축제형식의 행사였다. 2010년 행사에서는 수십 개의 공연단체가 출연하여 100여 회 공연에 23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경희극 <산울림>은 비록 세 번째기는 하지만 단일극단의 단일작품만으로 180여 회 공연에 21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는 점에서 북한연극사에서 유례가 없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경희극 <산울림>은 전국 순회공연 형식으로 장기공연을 진행한 것이 특색을 이룬다. 2010년 4월 29일 평양 국립연극극장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이래 9월 27일 청진공연에 이르기까지 5개월 동안의 전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평양공연이 끝나자마자 5월 13일부터 황해남도 해주시, 5월 25일부터 황해북도 사리원시, 6월 5일부터 평안남도 남포시, 6월 12일부터 평안남도 안주시, 6월 21일부터 자강도 희천시, 6월 30일부터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서부지역 순회공연을 가졌다. 7월 15일부터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평양대극장 공연을 가진 후 8월 초 강원도 원산시, 8월 중순 함경남도 함흥시, 9월 초 량강도 혜산시, 9월 16일부터 27일까지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동부지역 순회공연을 가졌다. 이렇듯 경희극 <산울림>은 평양에서의 2차례 공연을 포함, 열 개 도시에서 180여 회 공연, 관객 수 21만 명이라는 북한 초유의 ‘대기록’을 세웠다.

경제선동 및 실효투쟁과 접맥된 군중동원 전투
5개월에 걸쳐 전국의 열 개 도시를 대대적으로 순회하면서 공연을 전개한 것은 국립연극단에게는 그 자체가 하나의 ‘군중동원 전투’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해주로부터 9월 청진에 이르기까지 60여 명의 국립연극단 순회공연단은 극장에서의 <산울림> 공연뿐만 아니라 현지 경제선동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고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공연준비부터 서두르고 공연활동과정의 짬시간들에는 각계층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경제선동과 군중문화사업을 벌려나가는 이들의 열정적인 화선식 예술활동은 공연에 못지않은 큰 반향과 감화력을 불러일으켰다. 편대성원들은 극장에서만이 아니라 절세의 위인들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깃들어 있는 황해남도 벽성군 서원협동농장, 황해북도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 평안남도 안주시 송학협동농장을 비롯한 농업전선의 포전들과 김책제철련합기업소와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건설장과 같은 경제건설의 주요 전투장들에 나가 경제선동, 화선오락회무대를 펼쳐 대중을 대고조 진군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로동신문>, 2010년 10월 2일자

특히 량강도 혜산시에서 공연할 때에는 백두산기슭의 삼지연군을 찾아가 <산울림>의 주요장면을 형상한 소품공연을 하는 등 북한식 ‘찾아가는 문화활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경희극 <산울림>의 순회공연에는 지역의 다양한 계층들이 관객으로 참여했다. 중앙에서는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산울림> 공연을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조선예술>이나 <조선문학> 등의 전문잡지에서는 공연대본을 연재하는 등 전 국가적으로 공연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또 공연이 이루어지는 지역에서는 도당위원회가 주도하여 관람계획 및 관람 후 ‘실효투쟁’을 조직하여 “공연에 대한 반향이 곧 높은 생산성과로 이어지도록 조직사업을 빈틈없이 하고 있다”고 한다.

대고조의 시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희극 명작을 보기 위하여 로동자, 농민들과 지식인들, 청년학생들과 군인들, 문학예술부문 창작가, 예술인들을 비롯하여 각계층 인민들이 모여들었다. 공연이 진행될 때면 온 도가 <산울림> 관람열기로 들끓었다. 한 번도 성차지 않아 두 번, 세 번 보는 관람자들이 있는가 하면 일생에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백 리 먼 길을 달려와 공연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려관들과 극장들은 여느 때 없이 흥성거리였다.                      
<로동신문>, 2010년 10월 2일자

공연을 관람한 지역에서는 관객들도 단순히 공연의 관람에 그치지 않고 <산울림>을 따라 배운다는 실효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공장이나 농장에서 ‘<산울림>의 주인공과 나’라는 주제 속에 다양한 ‘실효모임’이 조직되었으며, 현지 예술선전대, 기동예술선동대, 예술소조들에서는 “경희극   <산울림>의 명장면들과 명대사들을 반영한 선동작품들을 창작하여 경제선동활동을 벌렸으며, 명작의    실효모임을 그대로 공연작품으로 형상하여 대중을 격동시켰다”고 한다. 또한 “군인가족예술소조와 공장기동예술선동대, 예술소조들의 공연무대에 경희극 <산울림>의 대목들을 형상한 작품들이 인기 있는 종목들로 오른 사실들은 이번 지방순회공연의 감화력과 실효투쟁의 생활력을 보여주는 뚜렷한 실증으로 된다”고 평가받고 있다.

천리마 시대의 원조 경희극 <산울림>

리동춘(1925~1988)의 희곡 <산울림>은 1961년 강원도립예술극장에서 원산연극단에 의해 초연되었던 ‘옛날작품’이다. 또 북한연극사에서 경희극의 첫 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경희극 <산울림>은 당시 ‘천리마 대고조 시기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끌어올린 1950~1960년대 북한의 대중운동인 천리마 운동이 벌어진 시기’에 강원도의 한 농촌마을(강원도 법동군 어유협동농장)에서 일어난 범바위산 개간사업을 소재로 제대군인 황석철의 활약을 그린 농촌 드라마다. 패기와 의욕에 넘친 이십대 청년 황석철은 ‘당이 제시한 알곡 100만 톤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해 강 건너 범바위산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그러나 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 리송재와 작업반장 리달수 등 기성세대들은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 버려져 있던 이 산골마을이 평야지대 못지않게 잘 살게 된 사회주의 현실에 만족하면서 황석철의 제안을 ‘잠꼬대’와 같이 허황된 공상에 불과하다고 비웃는다. 돌각담을 들추어내 경작면적을 넓히거나 같은 땅에 3혼작이나 4혼작을 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황석철의 제안에서 ‘계속 혁신, 계속 전진’의 혁명정신을 발견한 리당위원장 함락주는 황석철의 제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힘을 실어준다. 함락주는 황석철에게 혼자 힘으로만 조합을 혁신하려 하지 말고 당위원회를 활용하여 군중의 지지를 받아 사업을 해야 하며, 특히 “군중 속에 들어가 민청원들을 발동시켜 보라”는 조언을 한다. 이후 마을의 고령자인 서로인의 도움을 받고 또 마을 민청원들의 협력 속에 범바위산 개간이 이루어진다.

     경희극 <산울림>의 서장                                  경희극 <산울림>의 한 장면

왜 지금 경희극 <산울림>인가
경희극 <산울림>은 초연 당시 김일성이 직접 관람한 바 있고, 그 이듬해에는 김정일도 관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에는 함경남도연극단에 의해 ‘성황당식 연극’으로 재창조된 바 있다. 2010년 다시 한 번 경희극 <산울림>이 재창조되고 또 그것이 전국적 열풍을 몰고 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엇보다 지금의 북한사회가 과거 ‘천리마 시대의 대고조’를 되살리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로동신문>은 2009년 12월 “국립연극단 앞에는 다음해 4월까지 천리마 시대의 명작인 경희극 <산울림>을 재창조해야 할 무겁고도 영예로운 과업”이 주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국립연극단에서 4개월 동안 원작대본의 재구성을 비롯한 무대화 작업을 완성한 후 4월 26일 김정일 앞에서 첫 공연을 갖게 된다. 공연을 관람한 김정일은 “선군시대 문학예술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 걸작”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경희극 <산울림>에 ‘김일성 상’을 수여하고, “인민군대도 보고 청년들도 보고 일군들도 보고 온 나라의 모든 근로자들이 다 보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또한 김정일은 5월 8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자마자 국립연극극장을 찾아 <산울림>을 재관람했다. 또한 8월 17일경에는 함흥대극장에서 순회공연중이던 <산울림>을 세 번째로 관람하는 등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김정일은 2003년 이미 리모델링을 거쳐 현대식 건물로 개조한 바 있는 국립연극극장을 7년 만에 전면 재건축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2010년 5월 중순 기존건물은 철거되었으며, 10월 17일 620석 규모의 신축 국립연극극장의 준공식이 열렸다. 또한 같은 시기에 신축된 대동강변 ‘예술인살림집원형의 30층 높이 쌍둥이 아파트’에 국립연극단 배우들을 입주시키는 등 국립연극단과 경희극 <산울림>에 파격적인 대우와 관심을 보여주었다. 10월 초에는 당대표자회의 이후 구축된 새로운 지도부를 대동하여 신축중인 국립연극극장을 현지 지도하고 예술인살림집에 입주한 국립연극단 리지영 단장과 최금향여주인공 금단이 역, 김철진남주인공 황석철 역 배우의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모든 공연활동은 개인 예술가나 개별극단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는다. <산울림> 열풍 역시 북한당국 보다 직접적으로는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에 의해 기획된 국가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지금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이라는 국가목표 달성을 위해 ‘올인’하고 있다. 이는 선군정치(先軍政治)를 표방한 김정일 시대의 국가목표였기도 하지만 최근에 공식화된 김정은 후계체제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을 목표로 한 이 국가 프로젝트는 ‘150일 전투’니 ‘100일 전투’니 하는 방식으로 국가동원체제를 풀가동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2009년부터 강성대국 진입을 목표한 2012년까지의 기간을 북한은 ‘새로운 대고조’의 시기로 설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고조라 함은 대규모의 국가동원체제를 통해 강성대국 건설에 매진해 나간다는 점이고, 새롭다는 것은 과거 천리마 시대의 대고조와 차별화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특히 북한에서는 “혁명적 군인정신과 과학기술을 강력한 추동력으로 하는 대고조”이며, “선군의 기치 밑에 다져놓은 강력한 토대와 잠재력에 의거하여 일으켜나가는 대고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0년대 초 초연되었던 천리마 시대의 경희극 <산울림>을 재창조하여 대대적인 전국 순회공연을 기획한 것은 천리마 시대 대고조의 분위기를 오늘에 되살려 북한주민들을 강성대국 건설에 동원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강성대국 건설을 향한 대고조 시대’의 북한연극을 대표하는 작품이 경희극 <산울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