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적으로 다르지만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서 행복해요. 아버지가 부러워.” 눈앞에 찾아온 죽음에 얼굴이 일그러진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앞세운 딸이 말한다. 딸의 손을 부여잡고 울먹이면서 아버지가 하는 말, “평양에 가자!” 이제 아버지의 평양은 사회주의의 낙원에서, 손자들이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천국이 된다. 그리고 딸은 아버지의 천국에 경의를 표하며 영화를 바친다. 디어, 평양…….
<디어 평양(Dear Pyongyang)>(2006)은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낸 조총련 간부 아버지와 부모의 정치적 선택이 대물림되는 것을 거부한 딸 간의 이해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조총련 가족의 북한방문, 북한으로의 원조물자 보내기, 국적을 바꾸는 문제가 주요한 내용임에도 이 다큐멘터리는 정치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카메라의 힘을 빌려 자기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 서려는 감독의 용기에 감탄하고 사상을 넘어서는 부녀간의 이해와 사랑에 감동한 바 있었다.
사회적 관점에서 <디어 평양>이 재일동포 1세대와 2세대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면,
<디어 평양>의 속편 격인 <굿바이, 평양(Goodbye, Pyeongyang)>(2009)은 재일동포 북한 귀국자 문제를 들여다보게 한다. 불가피하게 일본 땅에 남게 된 재일동포 중 약 10만 명이 일본사회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빈곤을 피해 북한에 귀국한 과거가 있었다. 이른바 ‘북한행귀국사업북송사업’을 통해, 조총련의 간부인 양영희 감독의 아버지도 30년 전 자식들을 북한에 보낸 것. <굿바이, 평양>은 전작에서 애써 외면했던 그녀의 오빠들, 귀국자의 현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굿바이, 평양>은 평양으로 귀국한 둘째 오빠의 딸인 선화의 성장을 중심축으로 한다. <디어 평양>에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한 감독은 자신과 같이 부모의 정치적 선택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고 있는 선화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감독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선화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선화에게 즉흥으로 연기하게 하고 카메라를 맡기며연출 메뉴를 고르도록선택 히스테리까지 부리지만, 감독의 바람과는 달리 선화는 무작정 밝게만 보인다.
나는 선화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안부와 더불어 화면에서 배제된 존재들의 안부를 묻는다. 귀국자 오빠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귀국자를 부러워하는 평양시민들의 삶은 어떠한가, 화면에도 비추어지지 않는 북한사람들은 안녕한가. 나의 질문은 그들의 삶에 무용하겠지만 우리가 화면 앞에 멈춰서 이런 물음을 갖게 될 때 이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유의미해진다.
<굿바이, 평양>이 우선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가족을 만나는 일이 체제의 체면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점이겠지만 북한체제의 모순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감독에게도 마음이 쓰인다. 마지막 부분, 평양의 야경과 경기장에서의 집단체조 장면 등이 교차되는 장면에서 피아니스트가 꿈인 운신큰 오빠의 아들의 피아노 연주가 배경음악처럼 사용된다. 자신의 억압된 운명을 이겨보라는 듯 운신의 힘찬 피아노 선율은 평양의 무심한 풍경을 넘어 우리에게 들려온다. 그것이 한계라는 듯 혹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듯 여기에 잇따른 두 번의 자막. 큰 오빠가 우울증으로 죽었다는, 감독의 아버지가 끝내 사망했다는. 나는 이즈음에서 울컥했다가 북한과 운신과 선화의 미래와 예술과 문학, 그리고 나의 가족 따위를 생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정서적인 것에 눈물나게 하고 정치적인 것 때문에 갑갑증을 내게 하는, 그런 성격을 가졌다.
부모의 정치적 선택은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회한을 남겼지만 역으로 감독에게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산을 남기기도 했다. 감독은 경계인으로 태어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시스템과 타인의 존재에 대해 질문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선화의 영문편지로 다큐멘터리를 마감하는 것을 보면 귀국자의 2세로 태어난 선화와 운신도 영어와 피아노를 통해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감독은 희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보다 더 가혹한 상황에서 꿈을 키워야할 조카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응원하며.
집이 정전되었음에도 그것을 되레 즐거워하던 선화의 말이 오래도록 뇌리에 머문다. “지금은 정전입니다. 정전된 북새통, 여기를 잊지 말아주세요.” 나는 이 말이 ‘쇠락하고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라도 복작거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걱정 말라’로 들렸다. 관심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곳을 인정해 달라는 말로 오역했다. 감독도 사상에 천착했던 아버지 세대에게 인사를 보내면서 정치보다 정서가 우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래도 선화가족의 안위가 걱정이다. 먹고 살만해 보이는 귀국자들보다 그들의 이웃이 더 걱정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굿바이, 하며 돌아서기가 민망하다.

이미지 제공_ 키노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