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어디서 오는지 백두에 올라가봤죠/하늘땅을 여는 폭포서 해돋이 보고 알았죠/나의 작은 가슴에 비춰준 해발(햇살)이여/이 세상 끝에 가도 영원히/우리 장군님 모습 빛나는, 해 솟는 백두여//사랑은 어디서 오는지 예 올라 새겨 안았죠/장엄하게 솟는 불덩이 해돋이 보고 알았죠/나의 얼은 가슴에 빛을 준 해발(햇살)이여/이 세상 끝에 가도 영원히/우리 장군님 모습 빛나는, 해 솟는 백두여

위 가사는 작년 7월 평양 모란 전시장 식당에서 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 손님들 앞에서 기타연주와 함께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에 맞추어 부른 노래가사다. 언제 어느 때 닥칠지 모를 검열에 대비해 노래가사를 ‘장군님에 대한 흠모’의 내용으로 바꾸어 부른 것이다.

북한에 부는 한류의 바람
1990년대 말부터 동아시아 지역에서 불기 시작한 한류(韓流), 즉 한국의 대중문화 열풍현상이 2000년대에 들어와 북한의 일부 특수계층을 사로잡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에는 북한전역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북한 내에서도 평양, 평성, 청진, 함흥, 원산, 신의주 등 중국과의 접경지역과 대도시는 한류의 온상과 같은 지역으로서 영화, 드라마, 가요, 생활용품, 패션 등의 한류현상이 주변의 지방 중·소도시나 농촌지역으로 전파되고 있다. 특히 과거 간부나 부유층 등 상류계층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불었던 자본주의 ‘황색바람’이 이제는 사십대 이상 중·장년층과 일반 서민계층에까지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과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은 언뜻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북한에서 남한 영상물을 보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경제적 부담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노트북 컴퓨터와 ‘알판’이라 불리는 CD, 혹은 컬러TV와 CD재생기, 그리고 CD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1 가격이 가장 ‘눅은싸다는 뜻’ 것은 중국산 중고TV나 재생기, 그리고 중국산 중고 미니 노트북 컴퓨터중국 돈으로 100~200위안로 값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웬만한 가정의 경우 최소 이 정도는 갖추고 있다고 한다. 알판 한 장당 장마당시장 가격은 대략 북한 돈 2,000원 선성인 여덟 끼 분량인 쌀 1kg 가격에 해당인데 대여료는 100~200원 수준이다. 이마저도 불가능한 사람은 믿을만한 마을친구나 친척 등 아는 사람 집에서 함께 보기도 한다. 

영화 <말죽거리 작혹사>의 한 장면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의 한 장면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는 2000년대 초부터 암암리에 유통되기 시작하여 2003~200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콘텐츠 자체가 남한에서 생산, 공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내 한류의 경향을 시기별로 특정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말해 초창기에는 <겨울연가>(2002), <남자의 향기>(1998) 등 멜로물이 인기였고, 2000년대 후반에는 <말죽거리 잔혹사>(2004), <목포는 항구다> (2004) 등의 액션영화나 <대장금>(2003~2004), <해신>(2004~2005)과 같은 역사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반면에 남북주민 간의 유머감각 차이 때문인지 코미디 영화나 시트콤 드라마는 <사랑이 뭐길래>(1991~1992) 외에는 이렇다 할 인기물이 없다. 지금까지는 남한의 삼사십대 이후 중장년층 취향에나 어울릴만한 콘텐츠가 북한의 모든 연령대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할 수 있고, 특히 대중가요의 경우에는 트로트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송대관의   <해뜰날>과 <네 박자>,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김연자의 <홀로 아리랑> 등이 모든 연령층에서 인기를 끌었고, 노사연의 <만남>,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등 1980~1990년대 발라드 풍의 노래가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의 일부 젊은이들이 남한의 십대문화를 직접 수용, 확산시키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대도시 고위층이나 부유층 자녀들 중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젊은이들, 특히 중학교 5~6학년우리로 치자면 고등학교 2~3학년 학생들이나 이른바 직통생중학교 졸업 후 입대하지 않고 곧바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을 일컫는 말을 중심으로 남한의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이들은 뮤직비디오로 남한의 아이돌 그룹이 부른 랩, 힙합, 록 등을 들으면서 옷차림이나 몸짓을 흉내 내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는 스토리가 뻔한 남한영화나 드라마보다 <람보 4Rambo>(2008),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2006), <슈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2006), <아마겟돈Armageddon>(1998) 등의 미국 액션영화나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 등의 미드미국 드라마에 더 열광한다. 이들은 남한영화나 드라마는 깡패 이야기 아니면 사랑타령 이야기뿐이라며, 특히 입씨름말장난이나 협잡이 너무 많아 이제는 식상하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황색바람인 미국영화의 경우 이제 <타이타닉Titanic>(1997) 같은 영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하며, 한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9)의 경우 특히 평양의 상류층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2
이와 같이 영화나 드라마, 대중가요뿐 아니라 오늘날 북한의 장마당에서는 각종 전자제품LG TV, 애니콜 손전화기, 믹서기 등과 생활용품한국도자기 식기, 장갑, 방취제 등, 식료품쇠고기 다시다 등, 기호식품커피믹스 등, 과자류초코파이 등, 의류뺑때바지라고 부르는 스키니 진 등에서부터 사치품목목걸이, 귀걸이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남한산 제품이 버젓이 남한상표를 붙인 채 혹은 상표를 뗀 채 팔리고 있다. 특히 남한산 고가제품은 뇌물이나 혼수용품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요즘 평양의 간부층 부인들 사이에는 목욕탕에 갈 때 케라시스 샴푸와 린스를 가지고 가는 것이 유행이며, 부유층 사이에는 중국산이 아닌 남한산 쿠쿠 고압가마압력밥솥 소유여부가 재력을 평가하는 신종 아이콘이 되고 있다. 2003~2004년경부터 평양의 간부층 자녀들에게 유입되기 시작한 MP3는 비디오 기능이 추가된 MP4로 진화한 이후 MP3는 이제 일반 가정집 자녀들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대학생들은 중국어나 영어습득을 위한 어학용 위주로, 청소년들은 노래를 듣는 음악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노트북 컴퓨터는 USB를 통해 손쉽게 내용을 저장할 수 있고 단속에 걸릴 위험도 낮으며, 전기가 부족한 북한에서 배터리만 충전해 놓으면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젊은 층 사이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대도시 장마당에서는 DVD알판보다는 USB에 미드를 복사해 파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북한 여대생 동영상의 한 장면 

오늘날 북한에서는 단속위험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이나 노인층, 일반서민층이나 고위간부층을 가리지 않고 외국방송을 통해 정보욕구를 충족하는 경향이 확산되는 추세라고 한다.3 특히 주목할 점은 평양과 황해도, 평안도, 동해안의 함흥, 청진 일부지역에서 남한의 TV공중파 방송이 수신되면서 많은 북한주민들이 몰래 남한 TV방송을 직접 시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과거 3개월 내지 6개월이 걸리던 한류의 북한 유입속도가 점점 빨라져 오늘날에는 위성TV를 통해 방영되는 남한의 TV드라마가 중국 옌삐엔(延邊)이나 북한 해주 등지에서 복사돼 방영 다음날이면 장마당에서 팔릴 만큼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한다.4 북한당국은 남한의 TV, 라디오방송 청취를 막기 위해 각 도마다 설치되어 있는 과학기술총국과 국가안전보위부 27국을 통해 채널이나 주파수를 땜질로 고정시키고 은박지로 리모컨 센서를 막아놓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리모컨북한에서는 막대기라 부름을 추가로 더 구입해 사용하기 때문에 땜질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최근 국경연선과 해안연선 지역에서는 가구마다 체신소우체국에서 외부 전자파를 차단하는 자동차단장치북한 돈 6,000원를 자체 구입, 설치하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무조건 기기를 몰수하고 있다고 한다.

검열과 단속으로 대응하는 북한
한류현상을 포함하여 이른바 자본주의 황색바람에 대해 북한당국의 대응은 집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안전보위부정보기관나 인민보안부구 인민보안성, 경찰기구를 동원한 직접적인 검열과 강력한 처벌은 기본이고 이와 함께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고 북한사회에 ‘군인문화’를 확산·정착시키며 민족 전통문화를 강조하는 등의 세 가지 방책이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주민들의 사상문화진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선전선동수단으로 영화, 노래 등 선군혁명문학예술의 위력을 활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젊은이들 사이에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옷차림이나 화장 등 이른바 ‘남조선 날라리풍’을 추종하는 것을 ‘비사회주의적 현상’으로 규정짓고 “썩어빠진 생활양식이 판치면 사회를 좀먹고 나라의 미래까지 망친다”면서 수시로 단속하고 있다. 북한사회에서 한류를 단속하는 검열주체는 조선로동당,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중앙검찰소, 과학기술총국, 근로단체 등 중앙조직에서부터 각급 지방단위 조직, 국경 수비대, 국경세관, 대학 정치부, 대학생 규찰대, 소년단 지도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작년 3~4월에는 국가안전보위부 정치대학위장 명칭 평양기술대학과 인민보안부 정치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한 달 동안 ‘현장실습’ 차원에서 주민검열을 실시한 사례도 있다.
보통은 중앙당, 군당 및 시당이 주도하고 인민보안부 주관 하에 중앙당, 검찰, 보위부, 각 근로단체 등에서 인원을 차출하여 검열 전담조직인 비사 그루빠비사회주의 검열그룹를 구성하는데,5 ‘비사회주의’ 행위에는 서구식 복장, 남한가요 부르기 등 자본주의 황색바람에 해당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도박, 사기, 매춘을 비롯해 관상, 사주 등 미신행위까지 포함된다. 발각될 경우 인민보안부가 조사하여 적당한 수위에서 처벌하되 ‘죄질’이 아주 안 좋을 경우에는 사건 자체를 국가안전보위부로 이첩한다. 그러나 작년 말 이후부터는 주민들의 사상동향을 조사한다는 명목 하에 국가안전보위부가 직접 전면에 나서고 있다. 12월 30일자로 북한전역의 시·군마다 당·행정·근로단체 간부들 10여 명으로 구성된 ‘비사회주의 조사그루빠’를 조직하여 그 책임자로 각 시·군 보위부장을 임명한 것이다. 단속에 걸릴 경우 노동교화소나 노동단련대로 보내는 인민보안부의 처벌수준에 비해 정치범 수용소 수감 등 처벌수준이 훨씬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 말미에 색깔영화성인영화를 넣은 알판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말미에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장면을 담은 알판이 유통되면서 단속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국방위원회 검열단이 나서서 유통 및 시청행위를 ‘반(反) 간첩 투쟁과 직결’시켜 간첩죄로 다스리고 있다는 소문이다. 한류의 유통이나 시청행위에 대한 북한당국의 처벌수위는 ‘죄질’이나 ‘범죄자’의 신분에 따라, 그리고 그때그때의 사회적 분위기나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케이스별로 달라진다. 가장 가혹한 경우는 2008년 7월 남한 드라마를 본 간부 두 명을 90여 발의 총탄으로 공개처형한 사례이며, 2년에서 5년 사이의 교화형교화소 수용 처벌이나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노동형단련대 수용 처벌은 부지기수로 이루어지고 있다.6 그러나 잦은 검열에도 불구하고 인민반장이 사전에 이를 알려 주기도 하고, 불시에 전기를 끊고 기기 속 알판을 점검하는 경우에도 이를 바로 꺼낼 수 있는 특수 배터리를 사용하며, 설령 단속에 적발되었다 해도 뇌물을 고이면바치다라는 뜻 무마가 가능하기 때문에 통제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증언도 있다.7 
한편 북한의 정부기관과 사회단체, 그리고 언론기관들은 한류 등 ‘이색적 생활풍조’가 북한 사회를 좀먹어 종국에는 체제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보고 반복적으로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 언뜻 눈에 띄는 것만 적어 봐도 「제국주의자들의 사상 문화적 침투와 심리모략전을 단호히 짓부셔 버릴 데 대하여」조선로동당 방침, 2009년 5월, 「자주위업 수행에서 청년사업을 중시해야 한다」<로동신문>, 2009년 9월 10일자, 「자본주의 향기에 절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민주조선>, 2009년 10월 24일자, 「반사회주의 책동을 추호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로동신문>, 2010년 1월 18일자,     「자본주의 사회의 도덕적 부패성은 막을 수 없다」<로동신문>, 2010년 5월 23일자 등 그 수가 많다. 그러나 북한에서 한류열풍은 이미 그 경계선을 넘어선 느낌이다. 당·군·정의 간부층 상당수가 한류 애호가들로서 주민이나 상인들로부터 압수한 영상매체를 소각하지 않고 직접 시청하거나 되팔기까지 한다는 소문이다. 더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이 한류의 팬으로서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 출연한 이영애의 팬으로 알려져 있고, 외국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장남 김정남은 말할 것도 없고, 차남 김정철 역시 영국의 뮤지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과 미국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8 최근 중국의 <신화통신(新華通訊)>에 의하면 후계자로 지명된 삼남 김정은도 청룽(成龍)의 액션영화와 <007 시리즈>, 그리고 형과 마찬가지로 마이클 조던을 좋아한다고 한다. 

외래문화에 대한 북한의 우려
북한사회에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더욱 그 영향력이 확산되어 가고 있는 남한발(發) 한류와 미국발 황색바람은 폐쇄사회인 북한사회와 체제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잠재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한영화와 드라마, 대중가요는 북한주민들이 척박한 현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지친 일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안식처다. 최소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이에 덧붙여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 북한당국이 우려하고 있는 바는 이러한 ‘이색적인’ 취미생활이 알게 모르게 점차 북한주민들의 의식과 가치관까지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남한과 미국 대중문화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관은 당연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사상에 입각한 인간관이다. 이러한 인간관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익보다는 사회공동의 이익, 즉 공동선을 우선시하고 종국에는 그것이 총폭탄(銃爆彈) 정신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정신으로 변질되어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인 수령을 옹호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인간관과 정면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북한당국이 한류를 비롯한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한과 미국의 대중문화가 바탕을 두고 있는 인간관이 점차 북한주민들의 뇌리에 자리 잡혀가면서 북한사회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 자체가 바뀌고 이것이 결국 북한체제를 붕괴로 이끄는 뇌관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도시가구 중 거의 60~70%는 장사나 이와 연관된 수공업, 운수업 등으로 먹고 산다고 한다. 장마당이라는 시장경제가 주민들의 생활터전이 된 것이다. 장마당 활성화는 북한주민의 가치관에도 변화를 불러와 당과 국가보다 ‘개인중심’의 사고가 확산되고 오직 ‘돈’이 최고라는 의식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개인주의, 배금주의 경향은 결국 친(親) 자유주의적, 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이어지고 남한사회에 대한 적대감정이 완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북한주민들도 물론 남한 드라마가 실제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남한사회에 대한 동경이 문화적인 모방으로 이어지면서 대남 적대감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류에서 비롯된 이와 같은 생활방식의 변화, 사고방식의 변화는 남북통일의 심리적인 기반이 되어 북한주민들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남한을 택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북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서비스 센터

이미 오래전부터 중앙당 간부와 군당급 책임비서 및 조직비서 이상의 고위간부들에게는 조선중앙통신이 외국방송과 신문자료를 취합해 만든 <참고신문>, <참고자료>라는 것이 정기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외국정보에 목말라 있는 고위층들이 직접 외국방송을 보고 듣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북한지역에서 휴대전화 이용자 수 또한 큰 폭으로 늘어나 북한사회 내 정보유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주민의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이집트의 이동통신회사 오라스콤(Orascom)이 2008년 12월 15일부터 시작한 휴대전화 서비스에는 작년 말 기준으로 30만 명이 넘게 가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류는 북한주민들의 미(美)의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북한사회에서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얼굴 생김새나 몸매, 몸단장이나 차림새 등의 외양보다는 그 사상정신적 풍모에서 찾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의 미학관에 근거한 미의식은 북한사회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계속되는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외양을 갖추기 위한 일부계층의 멋내기 미용성형이 오늘날에는 일반 서민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9
2007년 12월 평양 김형직 사범대학 여교수가 남한말투를 사용한 ‘죄’로 교원자격을 박탈당한 데 이어, 2008년 3월에는 평양 김책공업대학의 여교수가 수업시간에 남한말투를 사용한 것이 문제가 돼 당적과 교수자격을 박탈당하고 교화형 5년형을 선고받았다. 요즘 북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소 투박한 북한식 말투를 벗어나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서울말투를 쓰는 것이 보다 세련된 것으로 인식되면서 서울말투는 하나의 유행이 되고 있다. 주위를 살피면서 ‘동무’를 ‘친구’로, ‘오라버니’를 ‘오빠’로, ‘~다/~까’로 끝내는 북한식 말투보다 ‘~요’로 끝내는 남조선 말투를 사용한다고 한다. 특히 친한 사이에서는 ‘오빠~’라고 하면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경우까지 있다고 하며, 또 무언가를 물어볼 때 ‘~하니?’ 또는 ‘~하거든요’, ‘~해요’ 등 부드러운 어미와 억양을 사용하면서, ‘안녕’, ‘잘자’, ‘예뻐’, ‘사랑해’ 등 주로 남한 드라마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들을 부지불식간에 따라하고 있다고 한다. 한 조사연구 보고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언어적으로 적응하는 데는 3년이 걸리고 사회제도 적응에는 5년이 걸린다고 한다. 한류의 유행은 남한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외래어를 보다 쉽게 습득할 수 있게 하고 언어적인 통합에 기여함으로써 북한주민이 통일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요즘 평양의 여대생들은 사랑하는 남성에게 기타나 손풍금아코디언을 치며, 남한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청춘남녀가 은밀히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 데이트 코스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평양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남한영화에서 본 머리모양이나 화장을 따라 하고 <올인>(2003)의 송혜교 머리 등 특정형태의 외모를 공유해 집단의식을 형성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 몸에 쫙 붙는 바지, 가슴이 파인 옷, 머리핀 등 남조선 날라리풍을 추종하는가 하면, 남한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과일바구니로 인사하는 새로운 트렌드도 생겼다고 한다. 일부 고위층이나 부유층의 자제인 대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세계적인 명절로 인식하여 징글벨과 남한 유행가를 부르고, 미국문화의 아이콘인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그림이나 ‘I ♥ JESUS’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소녀가 평양거리를 활보하며, 평양 고려호텔 인근 지하식당에서는 ‘혼합주’, ‘장군님 담력주폭탄주’가 돌아간다고 하니 이와 같은 생활습관이나 행태의 변화는 남북한 주민 간에 사고방식의 동일화를 가져옴으로써 결국은 통일의 심리적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화적 통합의 가능성
북한 내 한류현상은 아직 북한의 전 지역에 고루 확산되어 있는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 접경지역과 대도시 지역에서의 한류열풍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통제국가 중 하나인 북한사회에 새로운 문화가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의 적극적인 맞불작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새로운 문화는 인간의 본능적 측면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검열과 처벌, 주민 사상교양, 그리고 군인문화의 확산과 민족 전통문화의 강조를 통해 막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결국 이러한 방책에도 불구하고 한류의 확산은 계속될 것이고 어느 시점에서는 북한당국이 형식적인 면에서나마 남한 대중문화의 패턴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인다.10 반면 문화적 통합을 위해 남한 예술계가 북한이 자랑하는 예술적 성과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미학적 관점에서 볼 때 대다수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주장으로 들린다.11
오히려 남한의 대중문화와 문화예술이 자연스럽게 북한주민들 사이에 확산됨으로써 결국 북한 문화예술계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보다 현실성 높은 전망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화예술계의 민중에 대한 끊임없는 배려, 민족 전통문화에 대한 애착, 서구의 퇴폐문화에 대한 비타협적 적대주의 등은 통일 후 문화통합의 관점에서 남한의 문화예술계가 받아들여야 할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한류의 확산은 북한주민들의 남한문화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정을 크게 약화시키는 한편, 한류로부터 형성된 자본주의적 감성과 새로운 미적감각은 점차 북한주민들의 의식상에 집단적인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전환과 가치관의 변화는 북한당국의 저지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견인해낼 수 있는 사회적 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이러한 문화현상은 통일시기 동일한 정서에 기반을 둔 남북 간 문화적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1 북한주민들은 VTR재생기, VCD플레이어, DVD플레이어를 모두 ‘녹화기’라고 부르는데, IT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목 하에 북한의 하나전자합영회사가 2005년부터 DVD플레이어를 조립, 시판하고 있고, 2006년 한 해만 해도 비디오 재생기 35만 대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수출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2  조선중앙방송이 <백설공주>, <신데렐라>, <로빈후드> 등 디즈니 영화를 이따금 방영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외국영화가 상영되는 경우는 평양국제영화제 등의 일부행사가 고작이다.
3 주로 듣는 외국방송은 KBS한민족방송(구 사회교육방송), RFA(자유아시아방송), VOA(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 중국 인민의 소리 방송, 연변 조선어 방송, 극동방송 등 남한 내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대북방송, 열린북한방송 등 민간단체들이 운영하는 대북 단파방송 등이다.
4 TV전파의 송수신방식이 북한과 중국은 PAL방식, 남한과 일본은 NTSC방식이지만, 근래 중국에서 수입되는 1990년대 이후 생산된 중고 컬러TV에는 PAL, NTSC 간 상호 전환기능이 있어 2000년대 초반부터 북한 일부지역에서 남한의 TV드라마뿐 아니라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5 비사 그루빠는 고유명칭을 가지고 있는데 2006년에는 일명 ‘109타격대’라고도 부르는 ‘109그루빠’가 조직되었고, 2010년 1월 30일에는 ‘130 상무’라는 조직이 창설되기도 했다.
6 2004년 4월 개정된 북한형법에는 남한 영상물을 복제ㆍ유포하거나 시청한 사람은 2년 이하의 노동단련형, 그리고 죄가 무거운 경우 4∼5년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또 2004년 7월에는 형벌을 적용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 다양한 위법행위를 해당기관이 행정 처벌할 수 있도록 「행정처벌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퇴폐ㆍ추잡한 녹음ㆍ사진ㆍ도서를 유포할 경우에는 벌금, 경고 또는 3개월 이하 무보수 노동에 처하고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나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자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7 반면에 평안남도 개천교화소에는 3,000여 명이 수용되어 있는데 그중 1,200여명이 남한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걸려 수감된 주민이라는 탈북자 증언(2010년 12월 6일자 기사)도 있다.
8 김정철은 ‘새별조’라는 록밴드를 만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연주하는가 하면, 독일 등 에릭 클랩튼의 공연현장을 직접 찾기도 하고 남자 농구팀인 ‘우뢰팀’을 만들어 친동생인 김정은이 구성한 팀과 경기를 하기도 했다.
9 본격적인 성형수술보다는 예컨대 박피, 쌍꺼풀 수술, 콧대 높이는 수술, 입술 색들이기(입술 선살리기), 눈썹 및 아이라인 문신, 얼굴주름 펴기, 주근깨 없애기 등 간단한 수술이 주류를 이룬다.
10 만수대예술단 소속 삼지연악단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악단의 연주가와 독창가 50여 명은 평균 나이 이십대 초반에 ‘모두가 멋쟁이, 쌩쌩한 젊은이들’로 구성돼 있으며, 명문인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성악장이 지휘도 하고 연주 도중에 단원들이 악기를 놓고 손뼉을 치며 청중의 박수를 유도하는 등 파격적인 연주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조선신보>, 2009년 9월 25일자) 
11 북한이 자랑하는 예술적 성과로는 전시분야에서 조선화, 보석화, 청봉체, 공연분야에서 흐름식 입체무대, 방창의 도입, 자모식 무용표기법, 국악기 개량, 문학분야에서 종자론, 속도전, 그리고 실제로 세계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는 교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