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in-Cheon

멈추지 않는 상상의 오버 앤 오버

전시 《크로스 앤 오버 Cross & Over》 (인천 선광미술관, 2015년 8월 14일-8월 23일)

이근욱

상상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상상은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지금의 상상이 예술과 창작을 연관 검색어로 삼고 있다면, 과거의 상상은 자본과 생산을 연관 검색어로, 심지어 선동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그 이전에 없었던 자동차, 로봇, 스마트폰과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고 혹은 사방으로 뻗은 도로, 높은 건물, 살기 편한 도시를 지어야 하니 그에 걸맞은 상상력을 발휘해보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단연코 목표는 생산성 향상과 편의성 추구, 자본력의 증폭이다. 구성원들은 하나의 동일 목표에 저마다의 상상력을 집중시킨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도구로 삼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시적 언어가 설득의 기제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한 방울의 물이 딱딱하게 버티고 앉아 있는 바위를 뚫는다’라거나 ‘햇볕 한 점이 산천의 나무를 태운다’ 등. 하지만 상상마저 하나로 뭉쳐져야 한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학습된 상상, 식상한 상상, 상상의 ‘상’자도 아까운 상상도 무의미하긴 마찬가지다.

네 명의 작가가 서로 다른 예술 매체들을 재해석하는 전시가 인천시 중구 중앙동4가에 위치한 선광미술관에서 열렸다. 네 가지 색 <크로스 앤 오버(Cross & Over)> 전시는 젊은 작가들의 상상이 표현된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참여작가는 경지연, 김혜영, 김진우, 박상희이다. 젊고 열정 넘치는 작가들의 특성을 반영하듯 작품도 새로운 상상과 실험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수많은 재료와 기계적 메커니즘, 과학, 인문학과 지리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확실히 새롭다는 느낌은 이질감의 조화에서 피어난다. 이질감은 다른 것들의 이합집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감정인데, 그것이 부정적이지 않을 수 있어야 가치가 있다. 만날 수 없거나 만나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것들이 서로 가까이에 있으면 당연히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의 조화로움이 가치로 읽히면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있는 ‘주위 환경 적응하기’ 센서가 작동해 마음을 열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수용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네 명의 작가는 상상의 여러 층위를 선보인다. 상상이라는 단어는 특정한 하나의 상황이나 결과물을 지칭하지 않는다. 지금은 네 명이 네 가지 상상력을 보여주지만 백 명이 모이면 상상은 백 개가 되고 만 명이 모이면 만 개가 된다. 상상은 얼마든지 쪼개질 수 있으며, 심지어 개인이 가진 하나의 상상도 다시 분할될 수 있다. 이 전시는 이러한 상상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네 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크로스를 실험한 만큼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김진우는 스테인리스스틸, 알루미늄, LED, 서보모터, 모션센서를 활용해 만든 <플라잉맨>. 스테인리스스틸, 알루미늄을 이용해 만든 <스케이터>와 같은 작품을 선보였다. 김진우의 작업은 기계학적 메커니즘을 이용해 로봇을 만들고 그 위에 인간의 다양한 문화적 결과물을 덧쉬웠다. 철과 알루미늄 그리고 동력을 이용한 회전과 움직임을 부여해 작품에 생명력을 더했다. 김진우의 상상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미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삶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계의 발달에 주목한다. 작가는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늘날의 어떤 기능들이 융합되어 탄생하는가에 주목하며 로봇을 실제로 제작했다. 작가는 말한다.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끝없이 진화를 한다. 먼 미래에는 인간과 동ㆍ식물 등 생물도 기계를 구성하는 금속, 엔진, 모터 등의 무생물과 유전자를 소통하며 얽혀 진화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경지연은 <망각에 묻힌 배+우유니>, <리오 틴토+히말라야>, <작전동+타임스퀘어>,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타임스퀘어> 등의 작품을 전시했다. 가상의 여행을 구글 어스(Goole Earth)의 도움으로 현실에 펼쳐보였다. 가보지 않아도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또렷하게 알 수 있다. 상상의 여행인 만큼 산, 바다, 도시를 자유롭게 오가며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여행의 결핍을 상상력으로 해소했다. 지금까지 국가, 사회의 목표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산업을 일으키고, 문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계몽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기업, 국가, 사회는 개인의 결핍까지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경지영 작가는 자신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이뤄놓은 발달된 기술을 활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낯선 미지의 공간을 탐색하고 그곳에서 얻어진 위성지도의 정보는 그림을 통하여 더 이상 단순지도 이상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인 지도상의 데이터를 작품에 반영하지만, 재해석되고 편집된 작업은 이제 더 이상 지도의 이미지를 갖기를 거부한다.”

김혜영은 덫-유혹하는 미로>, 독설>, 방법>,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김혜영의 작품은 회화와 문학의 크로스를 실험했다. 한 단어와 문장에서 동의어나 유의어를 되풀이해서 쓰는 ‘동어 반복’은 같은 단어를 얘기하나 여러 번의 동음 반복으로 나중에는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읽혀지게 만든다. 작가의 동어 반복적인 회화는 가위나 레고, 사과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의 변주를 통해 우리가 늘 사용하는 말에 시적인 페이소스(Pathos)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김혜영의 크로스 앤 오버는 외형의 변형을 통해 심리의 변화를 이끈다. 가위를 활용한 작품 독설>이나 방법> 같은 작품은 가위가 가진 실용적 도구성을 넘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상징하거나 인간 내면의 고통을 드러낸다. 작가는 말한다. “날카로운 가시나 이빨을 품은 가위의 모습은 잘려지는 마음의 고통에 대한 이미지의 시각화이다. 사물이 그 기능이 가진 목소리로 이미지를 가질 때 그것은 시각화시키는 일은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에 따라 다른 사물의 이미지를 가져오고 작품 속에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주제에 맞게 배치하고 조형적으로 그려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시적으로 느낀다거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상상에 빠져드는 것이 그림을 보는 것의 중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