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in-Cheon

사랑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보고 나를 응시하라

김광미 개인전 《삶-풍경…愛 Life – Scene...Love》(갤러리 지오, 2015년 8월 15일-28일)

이근욱

갤러리로 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진행자가 로렌차 젠틸레(Lorenza Gentile)가 쓴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라는 책의 일부를 낭송했다. 나는 꼭 이겨야 하는 아주 중요한 전투를 하고 있는데, 나폴레옹만이 나를 도와 줄 수 있다. 여덟 살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려면 자신도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사람이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은 테오의 질문에 관심이 없다. 수지 아줌마만 빼고.

테오는 수지 아줌마에게 진지하게 질문한다. 아줌마,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돼요? 아줌마가 대답한다.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지. 그래서 사실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테오의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자 수지 아줌마가 테오에게 말한다. 일단 자고, 꿈속에서 답을 찾아 봐. 꿈은 현실보다 더 진짜일 수 있어. 왜냐하면 네 안에 있는 거니까. 네 거니까. 문득, 화가 김광미의 작업이 테오가 가진 삶의 의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와 인간,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엇을 내려놓으려는가? 분명한 것은 내려놓아야 다시 얻을 수 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날, 푸른빛 나뭇잎이 떨어지는 광경은 손아귀에 힘을 주어 움켜잡고 있는 욕망의 근육을 느슨하게 했다.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15번길 69에 위치한 갤러리 지오(Gallery GO)는 3층으로 나눠진 공간을 가지고 있다. 1층은 카페이고, 2층과 3층은 여느 갤러리처럼 흰 벽으로 된 공간이다. 세 공간은 좁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김광미는 사람들이 붐비는 1층을 1호에서 5호쯤 되는 캔버스로 채운 뒤 2~3층으로 올라갈수록 캔버스 크기를 점점 키워 간다. 서 있을 때와 앉아 있을 때의 주목도를 고려한 배치일까. 전체 40여 점 가운데 20여 점이 빼곡하게 걸려 있는 1층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것만큼 자유롭고 동적이었다. 하지만 2층과 3층의 분위기는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한다. 의자에 앉아 한 작품을 집중할 수 있도록 작품을 배열하고 있다.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는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읽고, 사색하기에 충분했다.

김광미는 삶의 풍경을 그리는 작가다. 인간의 정신과 사유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화폭 위에 드러낸다. 삶의 풍경은 자연과 조우한다. 화폭은 변화무쌍한 자연의 일부를 그대로 불러들이고, 그 위나 아래, 혹은 좌우에 삶의 한 장면을 배치한다. 나뭇가지, 흙이 입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가 하면, 테라코타 군상과 석판 조각과 같은 오브제와도 어우러진다. 평면과 입체, 자연의 소재와 인간이 만든 문화적 오브제가 상호 관계를 맺으며 삶의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사는 오늘의 풍경 같은 것이다.

2015년 S(Square)형 캔버스 50호(91×91cm) 작품 <삶-풍경…愛>는 검정 배경에 작품의 3분의 2를 나뭇잎이 여러 장 겹쳐진 봉우리가 차지하고 있다. 봉우리의 아래쪽에 알루미늄 판을 사람 형상으로 오려내 붙였고, 좌측에 산 모양의 형상도 붙였다. 마치 어두움 밤 커다란 나무와 멀리 있는 산만이 불빛을 받은 모양이다. 침엽수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잎들이 만들어내는 덩어리는 마치 산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느낌을 자아낸다. 디테일을 강조한 덩어리는 멀리 있는 산도 이와 같다는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한 크기의 사람. 멀리 있는 산을 응시한다. 검은 우주 속 작은 자연, 작은 인간. 우주에서 바라봤을 때는 인간은 숲 속 작은 짐승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말한다.

‘자연의 이미지들을 통해 나의 삶과 정신을 담아내는 작업들…. 우연과 필연적 만남들 속 삶이 무의식과 의식을 통해 파헤치고 거르기를 거듭하며 본성적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오늘의 길을 드러내며 표현하고자 한다.’

밤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게 쉼의 시간이다.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발 빛난다. 새들은 보금자리 찾아야 한다. 천상의 높은 정자 위에 달은 한 송이 꽃과 같이, 조용한 희열 머금은 채 밤 위로 자리해 미소 짓는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 <밤>에서 노래하듯, 인간의 보금자리는 어디인가. 인간은 결국 어둠이 내리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김광미의 그림에는 인간을 보살피는 자연, 더 좁혀 산, 더 좁혀 나무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정신, 사유를 온화하게 감싼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주의 시간으로 인간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백 년. 150억 년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하다. 유한한 삶의 끝을 잡고 인간은 무한한 생을 노래한다. 김광미의 그림 속에서 인간은 나무 사이 혹은 나무와 떨어져 있다. 인간은 나무들 사이나 나무 곁에 홀로 서 있다. 혹은 테라코타로 인간 형상이 군집을 이루어 일렬로 서 있다. 인간이 화폭 어느 위치에 있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내면에서 인간과 자연은 이미 하나가 아니다. 오늘날 인간을 보라. 이미 인간은 다시는 자연 속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고뇌한다. 오랜 시간 자연 밖으로 나오길 공들였는데, 밖으로 나와서 나를 보니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 작가는 인간 실존의 시작을 ‘바라보기’에서 찾는다. 작가는 말한다.

‘인간 존재 가치에 대한 사유는 나의 눈과 마음으로 담아 놓았던 세계를 의문과 질문으로써 미학적 개념을 넘어 자아 성찰을 하게끔 한다. 나의 ’삶-바라보고...바라보기‘ 속 실존적 자아의 표징으로써의 석판군상과 융기된 이미지와 산의 형상은 현실적 내면의 정체성에 대한 소통 분출구이며 휴머니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결코 가볍지 아니함을 보여주는 시간 속 텍스추어. 이 소리 없는 조용한 울림들 안에서 세상의 숨소리를 듣고 싶었다. 우리의 정신적 나눔과 소통, 유대감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진정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러한 정신세계를 나의 예술표현 행위에 적용시킨 실존과 휴머니즘은 작품 안에 늘 공존해 있다.’

어느 날, 문득 한 알의 씨앗처럼 사람이 이곳에 왔다. 씨앗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햇볕을 받고, 비와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아이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성장하면서 서서히 사회에 눈을 뜨고 가족의 울타리를 한 발 한 발 벗어나는 훈련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잡아간다. 육체적 성숙과 함께 정신적 나눔, 소통, 유대감을 공유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 인간 사회. 인간 사회는 구성원이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오는 것에서 생동감을 찾던 단계를 넘어 인간의 삶과 무관하게 그 스스로 유기적 활동을 해나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생동감 넘치는 인간 사회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작가 김광미의 그림은 이 지점에 놓인다.

서양화가 김영웅은 김광미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실험적 표현은 삶에 대한 회의와 부정을 딛고 자연의 순리와 긍정의 중간지대를 거치며 보다 명쾌한 형상들과 리듬을 획득함으로써 자아존재의 뚜렷한 발기와 적극적인 자아실현의 궤도를 형성해 내고 있다. 이는 몽환적 질감의 배경에 달과 구름 등의 구체화된 주변요소와 어울리며 내보여지고 드러내지는 자아의 실체를 힘 있게 융기된 산으로 상징 암시함과 동시에 강렬하고 명료하게 표현한 자아를 중심으로 자연적인 삶의 생동감을 유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작가 김광미는 이러한 말에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작업들은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인간의 본질과 자연의 이치에 대한 탐구와 탐색으로서 풀어내 조형성을 넘어 필연적인 감성과 이성을 실험적 표현들로 다양하게 표출하고자 했었다.’

작가는 인간을 탐구한다. 그 탐구의 시작은 작가 자신일지 모르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우주의 시간 안에서 유한한 생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바로 바라보는 것이며, 그 시선은 사랑의 시선이어야 한다. 사랑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세상을 보고, 자연을 보고 우주를 바라봐야 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세상에 이와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 자연 속으로 걸어가는 것, 자연을 닮으려는 것. 그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랑으로 인간의 삶은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