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떤 여행에 대해 말하려 한다. 불가능하지만 그래서 외려 더 매혹적인 여행. 오직 언어로만 시동이 걸리고 상상력으로만 나아갈 수 있는 여행. 이 여행은 여행사에서 정해놓은 루트에 따라 진행되는 순탄한 여행도 아니고 마음 내키는 대로, 혹은 발 닿는 대로 진행되는 무계획적인 여행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텔레포트(teleport)도 필요하고 이따금 시간을 멈추는 마법이 동원되어야만 할 때도 있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의 여행. 자신의 네 번째 시집 『키르티무카』에서 함성호는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을 ‘감히’ 시작하려고 한다.
이 불가능은 일종의 “불멸의 모순”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부정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상념 같은 것, 아무리 제거해도 다시 고개를 드는 질긴 뿌리 같은 것. 우리가 자신의 혀끝에 착 달라붙은 말을 가슴에서 완전히 내칠 수 없듯이, 몸의 곳곳에 새겨진 질서를 훌훌 떨치고 최초의 인간처럼 살아갈 수 없듯이. 따라서 함성호가 시작하고자 하는 이 여행은 이미 출발부터 ‘없는 여행’, ‘여행 이상의 여행’이다. 가면을 벗고 규율을 무시하고 편견을 극복해서 기필코 언어의 근원까지 가닿으려는 처절한 몸짓. 그 몸짓의 총합.
그는 “7번국도”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KTX #0144 일반실”에서 “유한무경계 3차원 우주의 끝”까지 나아간다. 함성호에게 있어 대륙을 가로지르고 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인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국경을 넘고 종래에는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당신의 마음까지 비집고 들어간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도 다음 날 거짓말처럼 다시 배고파지는 사람이라면, 이 시집 때문에 허기가 지고 포만감에 휩싸였다가 과식으로 인해 배탈이 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배고픔에서 배부름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출발지에서 종착지까지의 여정이 결코 선형적이지 않다는 점과도 교묘히 맞닿아 있다. 그는 욕망이 언제 눈뜰지 모르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가도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그리고 이 세계는 “제국주의의 생일 케이크”처럼 우리를 유혹하다가 “목 안에 걸린 가시”처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비인 그물에 걸린 물방울처럼” 배고픔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욕망(들)의 궤적은 과거와 미래가 뒤죽박죽된 현재로 집중된다. 이를 위해 함성호는 작고 좁은 곳에서 크고 넓은 곳으로 떠나기도 하고 황량한 사막에서 대도시의 소음 속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또한 그는 그 반대의 체험 역시 기꺼이 받아들인다. 요컨대 이 여행은 현재 돌아가는 이 사회의 모습을 좀 더 잘 보여주기 위해 과거와 미래, 저기와 거기를 동반하는 전략을 띠고 있는 셈이다.
함성호의 말마따나 그에게 있어 이 여행은 ‘de-light’의 과정과 다를 바 없다. ‘delight’는 기본적으로 기쁨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de’와 ‘light’ 사이에 하이픈이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접두사 ‘de’는 반대나 분리를 뜻하므로, 결국 ‘de-light’는 빛에서 멀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빛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계몽의 빛’을 의미했다. 결국 ‘de-light’는 지식이나 진리로부터 자발적으로 물러서기, 그러니까 지(知)를 미지(未知) 혹은 무지(無知)로 만드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이성이 된 말을 다시 말로 환원하는 과정. 말의 기원을 재촉하는, 자맥질하는 과정. 부족에게 풍습을, 아기에게 옹알이를, 세계에 질서가 아닌 평화를 가져다주는 과정. 그리하여 결국 “새로울/나의 우주”에 한껏 들떠 힘껏 소리치는 과정.
이윽고 그는 학살현장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거나 CAD 프로그램의 내부에 바이러스처럼 침투해 있는 “검은 우주”를 발견한다. ‘영광의 얼굴’을 뜻하는 키르티무카가 자신의 몸을 먹어치우며 스스로 영(0)이 되어가는 쓸쓸한 풍경 속에, 그는 서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날카로운 이빨과 그 이빨에 야금야금 갉아 먹히는 자본주의의 조각들, 아무리 애를 써도 완성이 불가능한 모자이크가, 지금 그 앞에 널려 있다. 돈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빨아들이는 근대성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무지막지함을 잡아채는 것이다.
결국 함성호에게는 자본주의의 모순들을 거슬러 올라가 시간의 중요한 지점들에 자기 자신을 맺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근대가 훔쳐 간 루바토(rubato)*를 되찾는 일과도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자본주의는 더 만들고 더 갖기 위해 언제나 배고프고,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우리 역시 이 패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건물은 높이 더 높이 올라가고 사람들은 빨리 더 빨리 이동하는 게 ‘표준’이 된 현실에서 루바토가 품고 있는 자유는 너무나도 작고 힘없어 보인다.

이렇듯 우리는 발전을 위해 스스로 루바토를 도둑맞았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끊임없이 몰려드는 허기와 부풀어 오르는 식탐뿐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제 우리와 싸워야 한다. 인간이 인간과 싸워야 한다. 더할 나위 없이 비인간적으로. 그리고 “때 이른 폭설처럼” “너무 왕성”한 식욕이 다 녹아버릴 때까지 정형화된 사회에서 루바토를 찾기 위한 분투는 계속된다. 그가 이 세계를 가리켜 “언어의 연옥”이라 명명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함성호는 스스로 중간계에 발을 들이고,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말들의 수런거림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귀는 가청역치(可聽?値)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의 세기를 점점 높여가며 멀리 더 멀리 나아간다. 귀가 듣기를 “포기한 거기가 끝이”지만 이 말은 여행은 계속될 거란 소리와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식욕은 끝이 없으므로, 진짜 ‘끝’을 보기 전까진 탐욕(探慾)도 그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또다시 각자 떠돌아다니다가 우연인 듯 필연처럼 “언젠가, 어디선가 만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가져다주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따라서 여행은 끝이 났지만 끝이 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다른 여행의 첫발을 내딛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도둑맞은 루바토를 우리로부터 근사하게 다시 훔친다.
* 이탈리아어로 ‘도둑맞다’를 뜻하는 단어. 음악에서는 보통 ‘템포 루바토(tempo rubato, 임의의 템포)’라고 사용되며, 이 기호가 등장하면 연주자가 획일적인 템포의 틀에서 벗어나 거침없이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