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공연 업계, 혹은 팬들 사이에 대표적인 희망사항으로 꼽혀왔던 이들이 있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마돈나(Madonna), 밥 딜런(Bob Dylan), 유투(U2). 이름만으로 어떤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들이다. 몇 년간 내한공연이 활성화되었음에도 이런 거물들은 당최 한국을 찾지 않았다. 사실 기대도 별로 없었다. 밥 딜런이 온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정식으로 발표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던가. 이글스(Eagles)도 그 중 하나였다. 지난 10년간 어디서 이글스 내한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도, 어림잡아 열 손가락을 넘는다. 그것은 그들이 한국음악 수용사의 어떤 시기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지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음악술집의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 만취한 청년들은 흥에 겨워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곤 했다. DJ는 또 이 노래냐, 라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지글지글, LP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드럼은 약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베이스와 기타가 그 위에 소리를 얹었다. 취객들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맥주잔을 입에 댄 채 음악에 빠져들었다. 4분 30초 정도가 지난 후, 세 대의 기타가 경합을 벌이면 취객들의 표정도 비장해졌다. 이것이 록이지, 라는 얼굴로 그들은 말없이 음악을 듣곤 했다.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1976)가 흘러나오는 음악 술집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음악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사회에 들어간 후 뒤늦게 다시 기타를 꺼냈다. 비슷한 처지의 이들끼리 밴드를 결성했다. 세상에서는 그들을 직장인 밴드라고 불렀다. 그렇게 결성된 수많은 직장인 밴드들. 그들 최고의 단골연주 레퍼토리가 이글스의 노래였다. 몇 명의 기타리스트들이 함께 등장하여 <호텔 캘리포니아>를 피날레로 연주하곤 했다. 아니, 하고 있다.
비단 <호텔 캘리포니아>뿐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만 유독 인기 있었던 <더 새드 카페The Sad Cafe>(1979)를 비롯, <데킬라 선라이즈Tequilla Sunrise>(1988)나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1972) 등, 수많은 히트곡이 함께 했다. 록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시대에도 그들의 음악은 록이 아닌 팝으로서 라디오와 술집을 수놓았다. 록이되 팝으로서의 자리는, 그리고 한국에서만의 그것은 아니었다.
1971년 LA에서 결성된 그들은 1972년 《더 이글스The Eagles》로 데뷔했다. 당시까지 록은 청년문화의 상징과 같은 음악이었다. 시대를 선도하는 뮤지션들은 자극과 혁신을 추구하며 기성문화에 대해 도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록에 손사래를 치던 기성세대를 끌어들였던 것이 이글스였다. 컨트리와 포크, 그리고 편안한 창법과 여유로운 멜로디는 그들의 사운드를 규정짓는 요소였다. 전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 ‘순한’ 음악을 거부할 이유는, 기성세대에게도 없었다. 그들에 의해, 저항의 상징이었던 1960년대의 록은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서의 가능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까지 1억 2,0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팔아치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보편성 때문만이 아니다. 사이키델릭으로 촉발된, 대중예술로서의 록이 가진 쾌감을 그들은 또한 잃지 않았다. 거대한 스케일과 비장미로 지금까지도 이글스의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수많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들이 도달하고 싶은 어떤 경지의 상징인 <호텔 캘리포니아>는 이를 증거하는 6분 29초의 시간이다.
이글스는 공연의 밴드기도 하다. 데뷔한 지도 40년, 그들이 낸 앨범은 그 기간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단 일곱 장. 그 중 여섯 장은 모두 1970년대에 발표했다. 그 기간 동안 자신들의 모든 것을 완성했다. 그 후의 시간들은 그 노래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재현하는 나날이었다. 그들에게 성공을 안겼던 주된 계층인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글스의 공연장에서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앨범 록의 시대를 음미해왔다. 《더 롱 런The Long Run》(1979)을 끝으로 1980년 “지옥이 얼어붙을 때까지는 재결성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해체했던 그들이 1993년 재결성하고 세 곡의 신곡과 함께 1994년 발표한 라이브 앨범 《헬 프리지즈 오버Hell Freezes Over》이래, 그들은 오직 투어만을 돌았다. 그 공연들은 모두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이었으며, 그들이 투어를 돈다는 사실은 곧 그해 최대 공연수익을 올린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신곡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공연장을 찾는 이들도 줄어든다는 상식이 적어도 이글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7년 그들은 《롱 로드 아웃 오브 에덴Long Road Out Of Eden》이라는 새 앨범을 발매했다. 1979년 《더 롱 런》 이후 거의 20년 만에 내놓은 정규 스튜디오 앨범이었고, 이 말은 곧 이글스의 신곡이 담긴 투어가 시작된다는 걸 의미했다. 그때는 짐작도 못했다. 그들을 한국에서 볼 수 있을 줄은. 그리고 4년, 짐작도 못한 일이 현실이 됐다.
지난 3월 15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 이글스의 첫 내한공연이 열리는 곳이었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일대는 여느 때 보다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온갖 공연이 열리는 올림픽 공원이지만 이날은 특히 심했다. 차를 가지고 온 이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일 테고, 그만큼 연령대가 높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이십대 대학생부터 반백의 신사들까지 고른 연령대가 공연장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전설의 뮤지션이 내한할 때 중장년 관객이 보이는 게 특이한 일은 아니다. 흥미로웠던 건 그들의 차림새와 대화였다. 보통 중장년층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을 때는 가족과 동반하는 게 일반적이다. 아들의 손을 붙잡고 온 아버지, 아내와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남편. 편안한 차림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감회에 젖곤 한다. 그런데 이글스의 공연장에서는 유독 정장차림의 남녀가 많이 보였다. 척 봐도 대기업이나 관공서의 고위 임직원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내국인 외국인을 가릴 것 없이 그랬다. 나누는 대화역시 자못 격이 있었다. 김 대표, 이 대표……. 그들이 서로를 일컫는 호칭이었다. 내한공연 사상 가장 비싼 티켓값의 공연이니, 아무래도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이 공연이 가지는 의미가 단순히 전설적 밴드의 첫 내한 이상임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클래식이나 재즈가 아닌 이상, 공연에 인터미션(intermission)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글스의 공연은 록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음이 고지됐다. 그럴 만도 했다. 두 시간 반 동안 20여 곡이 연주됐다. 1부는 찬찬히 흘러갔다. 열광보다는 감회를 자극하는 노래와 연주, 분위기였다. 이글스의 공연이 미국에서는 ‘중산층 여피(yuppie)들의 넉넉한 여가’를 상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런 듯 했다. 마지막이나 앵콜 때 하리라 예상했던 <호텔 캘리포니아>를 불과 네 번째 곡으로 선택했기에 드라마틱한 절정의 순간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드럼이자 보컬인 돈 헨리(Don Henley)가 기획사인 CJ의 이미경 부회장(실제로는 뭔가를 착각했는지 CJ대신 삼성이라 했다)의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니, 나의 판단은 틀렸다. 2부가 시작되고 중간쯤 지났을 무렵, 기타인 조 웰시(Joe Walsh)가 정면에 나섰다. 멤버들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장발을 유지하고 있는 육십대의 로커. 그가 클리넥스를 마구 뽑으며 쇼맨십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순간, 더 이상 중산층이니 여피니, 여가니, 여유니 하는 단어는 생각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이 록 밴드임을, 그리고 록은 나이 들지 않는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연주는 장대했고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어느새 좌석에서 일어난 중년의 신사들이 넥타이라도 풀어헤칠 기세로 열광하고 또 열광했다. 여덟 시에 시작한 공연은 열한 시가 다되어 끝났다. 감상을 자극하며 시작한 공연은 흥분을 불사르며 끝났다. 입구에서 점잖은 얼굴로 낯선 분위기를 의식하던 이들이, 출구에서는 상기되어 이글스의 티셔츠를 고르고 있었다. 이글스가 왜 위대한 밴드인가를, 왜 과거의 팬들만으로도 스타디움을 매진시킬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음악다방에서의 고색창연한 추억이나 끄집어서 팔아먹는 밴드가 아니었다. 어쩌면 세포 깊숙이 숨어 잊혔을지도 모를, 그때 그곳에서의 열기를 자연스럽게 소환할 줄 아는 대가들이었다. 현재에 과거의 망령을 소환하는 게 아닌, 과거 그 자체를 현실로 리셋(reset)시킬 수 있는 달인들이었다. 그리하여 왜 1970년대를 록의 르네상스 시기라고 했는지, 그 많은 밴드들의 백가쟁명에서 그들이 우뚝 설 수 있었는지를 애써 증명하지 않고 그 자체로 보여주는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관객들이 달랐다. 공연자가 달랐다. 전자의 다름이 여느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그것이었다면 후자의 다름은 여느 추억의 뮤지션들에게서 찾기 힘든, 하나의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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