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구인성의 이번 전시는 후기 구조주의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디페랑스(differance)차연(差延)라는 조어를 끌어와 접목시키고 있다. 때문에 소위 철학과 미학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관람객이라면 짐짓 ‘멈칫’할 소지가 컸다. 하지만 막상 전시장에서 마주한 작가의 작품은 주제가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난해한 체감을 동반하지는 않았다. 익숙한 이미지들의 배열은 되레 접근을 용이하게 함은 물론 이중구조로 된 화면구성은 상상의 시간을, 그리고 골판지라는 재료와 요철을 이용한 정밀한 기법은 신비로움까지 자아내도록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디페랑스’, 즉 ‘차연’과 온전히 근거리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지의 해체’, ‘의미전복’이라는 장식을 단 채 위장하는 긍정적 유희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실상은 ‘과학적’이거나, 혹은 ‘재료적’인, 또는 ‘기법적’인 범주가 더욱 무게 있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었던 탓이다.
작품이해를 위해 순연상 데리다의 디페랑스를 언급하면, 우선 ‘differance’는 차이(差異)와 연기(遲期)의 합성어다. 데리다는 기존 대문자로 표기된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의문차원에서 소문자의 가치 체계적 문제제기로 발음은 같지만 문자는 엄연히 다른 프랑스어 ‘difference’의 어미 ‘-ence’를 ‘-ance’로 바꾸어 ‘differance’라고 했다.
여기엔 다르다(differ)와 연기하다(defer)라는 의미인 differer(디페레)가 포함되어 있으며, 데리다가 ‘차이’를 뜻하는 ‘difference’를 굳이 ‘differance’로 한 이유는 ‘difference’가 내재하고 있는 ‘고정관념’과 ‘통념’을 거부하기 위해서였으며, 그것은 특히 ‘말’과 ‘문자’를 통한 위계의 역전이라는 개념,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로부터 빌려 온 ‘존재론적 차이’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즉 자크 데리다가 ‘difference’의 ‘e’를 ‘differance’의 ‘a’로 이동시킨 것은 어떤 텍스트가 지닌 의미란 궁극적으로 결정(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작용의 연쇄 속에서 하나의 대체 가능한 언어해석으로부터 다른 해석으로 지연된다는 자신의 디컨스트럭션(deconstruction)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창안된 ‘differance’는 공간화, 시간화의 문제이며 기존 사유체계에 대한 절대성에 대한 해체를 수반하고, 또한 동적인 사유의 운동성을 탐지하는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인성의 작업들은 온전히는 아니지만 이러한 디페랑스의 속성과 맞닿는다. 일례로 그의 작업들은 차이를 통해 무한적 의미를 생성해내는 영원한 기표놀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성을 지닌다. 골판지를 통한 기의들의 발현과 은둔에 따른 고정적 의미의 형상들이 해체되어 개개인에게 미끄러져 부유하게 된다는 것 또한 상대적 개념인 이분법적 구조주의를 이탈한다. 쉽게 말해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한’ 그의 그림 속 이미지들은 디페랑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체성은 생각보다 호소력이 얕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
<모나리자Mona Lisa>(1503~1506), 반 고흐(V. Van Gogh, 1853~1890) 등의 고전적 텍스트의 은유와 상징의 해석에 관한 전복성 역시 기대만큼 강하지 않다. 이미지들은 지나치게 낯익으며 골판지에 의한 착시는 반복을 통한 차이의 생성을 목도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적’, ‘재료적’ 탐닉에 주안점이 가도록 이끈다.
특히 고전적 아이콘들과 겹쳐진 날아오르는 새, 푸른 하늘, 구름, 떨어지거나 분출하는 물의 도상들은 우리의 고정적 학습과 관념에 의해 하나의 공간과 시간을 거슬러 차이 되며 존재하는 것임에도, 이미 정의되어진 것의 연장이라는 느낌이 크다. 그래서 어떤 지시어와 만나 다시 다른 의미로 미끄러지는 현상의 강도 등은 비결정의 속성을 시각성에 의존하고 있지 않나 싶은 판단으로 대체된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관계성 속에서 종횡무진으로 샅샅이 횡단하며 새로운 차이를 발생시키는 ‘차연’, 파지적 흔적과 예지적 열림 속에서 끝없이 전치되고 해체되며 재 기술되는 사유의 출발점으로서의 디페랑스에는 깊게 다가서지 못한 감이 없지 않다.

이미지 제공_ 한원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