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Moliere, 1622~1673)의 <동 주앙Don Juan>(1665)이 명동예술극장 제작으로 공연되었다. 몰리에르는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 치하의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희극작가지만 국내에서의 공연은 뜸한 편이다. 대학극이나 몰리에르에게 영향을 주었던 코메디아 델 아르테(Commedia dell'arte)*식의 곡예에 가까운 신체연기로 꾸준하게 몰리에르를 소개해 온 극단 수레무대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하긴 몰리에르만이 아니다. 셰익스피어(W. Shakespeare, 1564~1616)와 브레히트(B. Brecht, 1898~1956), 체호프(A. V. Chekhov, 1860~1904)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고전작품들이 한국연극계의 꾸준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익숙한 경로로만 가려는 우리들의 기질, 잘 만들기 어려운 명작의 까다로움에 대한 공포가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명동예술극장의 레퍼토리 선정은 치하할 만하다. 고전중심의 레퍼토리로 관객과 만나려는 시도 속에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1956)를 비롯하여 최근의 <동 주앙>에 이르기까지,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은 명작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냈기 때문이다. 명동예술극장 봄 시즌의 첫 작품으로 공연된 <동 주앙>은 카사노바에 가까운 바람둥이, ‘동 주앙’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돈 주앙이라는 소재는 바로크 시대의 몰리에르만이 아니라 이후의 작가들, 심지어 20세기의 카뮈(A. Camus, 1913~1960)나 잉그마르 베르히만(Ernst Ingmar Bergman, 1918~2007)에 의해서도 변주되며 욕망에 탐닉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반영해 왔다. 우리 모두 마음 깊은 곳에서 욕망의 끝까지 달려가고 싶지 않은가. 윤리에 구애받지 않고 형이하학적인 욕망이 원하는 대로 가보기, 영원이나 절대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자체에 탐닉하기. 물론 인간이란 존재는 숨어서는 부도덕한 욕망을 적당히 충족시키며 살아가지만 밝은 광장에서는 도덕이라는 위선의 가면을 쓰는 법이다. 그런데 가면을 벗고 밝은 광장에서 노골적으로 도덕을 전복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 인물은 니체(F. W. Nietzsche, 1844~1900)가 말했던 차라투스트라(S. Zarathustra)적 인물, 가시면류관 대신 장미화관을 쓰고 환호작약하며 인간을 억누르는 도덕과 규율, 심지어 종교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힘이 왕권 이상으로 강했던 몰리에르의 시대에는 당연히 이런 위험한 신인류 동 주앙을 추앙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몰리에르는 자신이 창조했던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동 주앙을 그려내면서도, 종국에는 천둥과 벼락을 내리치는 엄벌로 그를 다스리며 관객들에게 도덕을 따를 것을 종용했다. 반면 물질의 욕망이 전면에 노출된 우리들의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동 주앙이라는 인물을 영혼을 포기한 채 물질적 욕망에 탐닉하는 위험한 인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명동예술극장의 <동 주앙>은 어떤 해석에 방점을 찍었을까. 작품을 연출한 최용훈은 원작의 틀은 충실하게 따르되 심각한 해석은 지양하고 동 주앙 김도현, 이율 분의 욕망을 경쾌하게 그려내면서 우리시대의 욕망과잉을 가볍게 풍자했다. 동 주앙이 가진 전복적 힘을 강조하기 보다는 바람둥이의 경쾌한 여정에 초점을 맞추며 대중과의 교감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덕분에 배우들의 익살스런 외모나 연기, 시종 가벼운 장난기를 유지하는 동 주앙이라는 인물, 순발력 있게 흘러가는 장면의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무대는 장소가 계속 이동되는 희곡의 특성을 살려내기 위해 뒷무대에 액자틀 같은 프레임을 세우고 그 안에서 다채로운 장소의 이동을 연출했다. 잦은 장소의 이동을 연출하느라 산만하긴 했으나, 욕망이란 종착역이 없으며 달리는 차창 밖의 세계처럼 계속 이동한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시각적 해석은 흥미로웠다. 그런데 조금 더 가도 되지 않았을까. 고전작품의 매끄러운 소개나 대중과의 즐거운 만남도 물론 중요하지만 세상과 온몸으로 맞섰던 거침없는 동 주앙의 행보를 고려할 때 제작진의 예술적 야심이 매우 모범적인 수준이었다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 16세기 이탈리아의 연극양식으로 배우들의 신체기술 및 기예에 크게 의존하고 특이한 반가면 의상을 소재로 하는 즉흥연극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