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의 소통부재를 또 한 번 실감한다. 부산예술회관 입주를 둘러싼 문화예술단체간 반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완공된 부산예술회관은 지역문화계의 용광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애초 부산민예총과 부산예총이 함께 입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두 단체가 한 공간에 거주하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국내 최초이기도 하다. 긴 시간 등을 돌렸던 두 단체의 화합에 문화계의 관심이 쏠렸다. 부산시민들은 이질적인 단체가 어울려 역동적인 지역문화를 창조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말은 예상과 달랐다. 약속은 깨졌고, 서로 탓만 했다. 부산예술회관에는 부산예총만 입주했다. 통하기가 참 어렵다.

숙원을 이루다
2011년 3월 3일은 부산 문화예술계가 기억할 만한 날이다. 바로 부산예술회관 개관일이었다. 지역의 문화예술계가 꿈꿔온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다. 부산의 문화단체 대부분은 그동안 부산시민회관 뒤편을 비롯한 곳곳에서 더부살이를 해왔다. 낡고 오래된 일부 사무실은 퀴퀴한 냄새마저 났다. 몇몇 단체는 협소한 공간을 함께 나눠 쓰기도 했다. 변변한 연습실조차 없었다. 쾌적하고 깨끗한 문화공간이 절실했다. 부산 문화예술인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기회는 2003년에 찾아왔다. 부산의 한 독지가가 땅(황령산 일대 약 3,300㎡)을 부산예총에 기부한 것. 부산예총은 회관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건립예산이 없었던 것. 기증받은 부지가 황령산 일대여서 접근성도 떨어졌다. 부산예총은 이러한 상황을 부산시에 상세히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계속된 논의 끝에 지난 2007년 부산시의 예산지원이 결정됐다.
부산시와 부산예총이 확정한 방안은 이러했다. 부산시가 예술회관 건립예산을 낸다. 황령산 부지와 옛 차량등록사업소 부지를 맞바꾼다. 옛 차량등록사업소 자리는 남구 대연동에 있는 요지다. 다만 부산예총회관이 아니라 부산예술회관을 짓는다. 부산시 측은 “당시 부산문화계를 대표하는 부산예총과 부산민예총이 함께 입주하기로 구두로 합의했다”라고 말했다. 부산예술회관은 ‘문화계 화합의 상징’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부산예술회관 건립안이 확정되자 일은 착착 진행됐다. 2008년 5월 부산시의회는 부산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을 승인했고, 그해 12월 예술회관 설계공모작을 선정했다. 그리고 착공한 지 1년 5개월 만인 올해 3월 3일 부산예술회관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부산시는 건립비용으로 71억 원을 지원했다. 부산예술회관의 규모는 알차다. 지상4층, 지하1층에 공연장, 전시장, 회의실, 연습실, 사무실 등을 고루 갖추었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자유롭고 편하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부산예술회관은 지역문화의 중심지에 들어섰다. 인근에는 부경대학교, 경성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명대학교, 부산예술대학과 중·고교 등 학교 서른 여 곳이 밀집해있다. 뜨거운 젊음의 문화가 분출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기존 문화예술단체들이 품지 못했던 대안도 넘쳐흐른다. 예비예술인들에게도 공간을 제공한다면 이 지역은 색다르고 독특한 문화지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에게 예술회관 앞마당을 조건 없이 내준다면 음악, 퍼포먼스 등 부산시민들은 다양한 공연을 지속적으로 맛보게 될 것이다. 부산예술회관 인근에는 부산문화회관, 부산시립미술관 등 문화시설도 들어서있다. 이는 부산예술회관이 지역문화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기대를 저버리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개관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부산민예총이 예술회관 입주를 거부한 것이다. 부산예술회관 운영을 둘러싼 부산민예총의 불만이 발단이었다. 부산민예총은 “예술회관 운영과 사무실 분배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예술회관 준공이 다가오는데도 사무실 배정이나 운영회의에 참석하라는 요청을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사무실도 부산예총은 회원단체 열 곳과 준회원단체 두 곳을 배정받았지만, 부산민예총은 사무실 하나만 배정받았다. 부산민예총은 즉각 반발했다. 부산민예총은 입주거부를 결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부산시가 예산 수십억 원을 들여 부산예총건물을 지어준 꼴이다. 특정 문화단체에 예산 수십억 원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부산민예총은 이 문제를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해 공론화할 계획이다. 파문이 예상된다. 부산민예총은 부산시에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부산민예총은 올해 초 있었던 부산예술회관 운영 위탁업체 공모에 참여하지 못했다. 부산시가 시청 홈페이지에만 공고를 냈기 때문이다. 부산민예총은 “지역의 대표 문화단체에 공문이나 전화를 통해 예술회관 운영 위탁업체 공모를 알리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원칙대로 했다”라고 말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문제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부산민예총의 공모불참으로 예술회관 운영은 부산예총이 맡게 됐다.
부산예총도 할 말이 많다. 부산예총은 “부산예술회관 건립추진을 주도한 것은 부산예총”이라고 말했다. 독지가가 기증한 부지를 바탕으로 부산시의 지원을 이끌어냈다는 말이다. 부산민예총이 예술회관 운영에 관심이 있었다면 부산시나 부산예총에 적극적으로 문의를 해야 했단다. 부산예총 측은 “부산민예총은 지난 2009년 7월 예술회관 기공식에 참여한 이후 단 한 차례도 연락을 취해 온 적이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놓겠다는 의사로 보인다는 의미다. 부산예총 측은 “예술회관 공간배분 논의가 끝난 뒤 부산민예총이 사무실(46㎡)이 협소하다고 주장해 더 넓은 곳(56㎡)으로 옮겨주었음에도 입주를 거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부산시 측은 “중재를 위해 부산민예총과 부산예총 회장이 만나도록 했는데 양쪽은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반목은 이제 그만　
부산예술회관을 건립한 뜻을 안다면 이런 사태는 없었어야 했다. 부산예술회관은 세금으로 지어졌다. 한 해 동안 부산문화계에 지원하는 정부지원금의 세 배 이상이 부산예술회관에 투입됐다. 왜 그랬을까, 세금이 남아돌아서일까? 아니다. 부산민예총과 부산예총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부산시민들이 두 단체의 해묵은 갈등을 벗어던질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하지만 두 단체는 그 소망을 걷어찼다. 이유도 전혀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다. 부산예술회관 운영방안 회의가 있을 때 서로 연락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될 일이다. 두 단체가 연락담당자를 한 명씩만 두었어도 문제는 없었다. 결국 두 단체는 자존심만 내세우다 ‘화합’이라는 대의를 저버렸다.
지역문화계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문화예술인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두 단체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일부는 “부산예술회관이 개관할 때까지 조정역할을 제대로 못한 부산시도 문제”라고 말했다. “부산예술회관은 지역문화인 모두의 공간”이라며 “부산시는 부산예총이나 부산민예총뿐만 아니라 두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문화인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예술회관 운영계획을 마련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두 단체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쪽 날개만으로 새는 정상적인 비행을 할 수 없다.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날지 못하게 된다. 부산민예총과 부산예총도 마찬가지다. 두 단체가 건전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면 부산문화는 올곧게 발전할 것이다. 최상윤 부산예총 회장은 부산예술회관 개관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화는 시민의 끝없는 관심과 투자로 성장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미 시민들은 투자와 관심을 보였다. 이제 두 단체가 화답할 차례다. 서로 만나서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라. 과거를 잊고 미래를 생각하라. 상생하는 답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