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타이완 뉴스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2010 타이베이 국제화훼박람회(臺北國際花卉博覽會)였다. 매일 갱신되는 관람객 숫자와 더불어 봄방학을 맞아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몰려든 학생과 학부모들로 붐비는 박람회장의 모습이 연일 뉴스를 통해 안방으로 전달되었다.
작년 11월에 개막하여 올해 4월 25일까지 총 6개월 동안 열린 이 행사는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의 정식인증을 받은 타이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예박람회로 타이완 원예산업의 규모와 과학기술 수준, 그리고 환경보호 관념을 결합시킨 녹색공간의 탄생을 표방하고 있다. 박람회의 면적만 91.8㏊에 달하며, 모두 네 곳의 전람구역에 총 14개 테마전시관을 갖추었다. 또한 박람회 기간 동안에는 7,000여 차례의 문화예술 공연이 이루어졌고, 국내외 관람객 수는 800만 명 이상이 추산될 예정으로 약 168억 타이완달러한화기준 약 6,315억 원의 경제효과를 전망하고 있다.
아열대의 분지에 위치한 타이베이는 온도와 습도 등의 자연조건이 식물의 생장에 매우 적합하여 그간 양밍샨(陽明山) 꽃축제, 두견꽃 축제, 알로카시아 축제 등의 각종 화훼활동이 있어왔다. 그러나 기존의 꽃축제가 생장지 혹은 재배지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진 데 비해 이번 국제화훼박람회는 원예기술을 동원하여 타이베이에서 가장 번화한 도심에 녹색공간을 조성, 도시인으로 하여금 자연의 숨결을 바로 곁에서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환경보호와 생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원예박람회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 문명의 발전과 공업사회로의 변화는 인류의 주거공간을 자연으로부터 점차 멀게 만들었고, 이에 녹색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도 그만큼 깊어졌다. 이번 타이베이 국제화훼박람회 역시 바로 이러한 도시인의 자연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면서 타이완의 화훼기술과 그 수준을 세계에 알리고 문화예술과 자연을 융합한 새로운 도시공간을 창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맞추어 타이베이 시정부가 야심차게 기획한 이번 국제화훼박람회는 단순한 꽃의 축제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기획한 도시계획의 일환이며, 또한 그 배후에는 지역선거라는 지방자치제와의 관련이 깊게 자리하고 있어 문화정치의 한 전형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우선 박람회라는 형식이 가지는 힘의 논리와 일방성의 문제인데, 인류역사에서 박람회의 개최가 서구문명을 전시하는 동시에 서구 이외 지역에 대한 식민지 개척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해왔듯이 이번 국제화훼박람회 역시 타이베이라는 도시문명을 전시하는 논리로 시민들의 자부심과 자발적 참여를 고취시키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낡고 오래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도시재개발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 세계박람회장을 건축하기 위해 몇 만의 가구를 쫓아냈듯 타이베이 국제화훼박람회 전람관 부지 역시 원래 이곳에서 살던 50여 가구를 강제철거한 후 건립했으며, 또한 이렇게 건립된 전람관이 보여주고 있는 상품화된 도시문명이란 생산성의 사회적 맥락을 탈각시킨 상품으로서의 화훼인 것이다. 그리하여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원래 이 지역에 있었던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가 아니라 타이완 각지에서 옮겨 심은 수천 그루의 나무와 수십만 포기의 꽃이다. 즉 ‘아름다운 타이베이’의 이름으로 진행된 국제화훼박람회가 실은 그 배후에 이곳 주민들의 희생과 도시-농촌 사이의 차이를 은폐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전시문명의 야만적 본질이라는 것이다.
국제화훼박람회가 열린 네 구역은 타이베이의 풍부한 역사와 인문경관을 간직한 곳이다. 유안샨(圓山)지역의 패총과 어린이동산, 쫑샨베이루(中山北路)의 미군주둔 흔적과 외국인 노동자의 집결지, 쫑샨챠오(中山橋) 부근의 고적, 그리고 힘없는 도시 약소층이 쫓겨나면서 치른 희생을 통해 타이베이의 상처라 불리는 14, 15호 공원의 역사공간이 이 장소로 편입되었다. 타이베이의 역사지리 경관을 판이하게 바꾸어 놓은 이 박람회장의 아름다운 꽃담 뒤에는 잊고 싶은 도시의 역사를 쓸어내고자 하는 목적의 대청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타이베이 국제화훼박람회의 또 다른 목적인 문화예술 공간의 창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는 최근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는 미학경제의 개념을 따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문화예술과 도시계획을 결합한 소위 문화정치가 그 본질인데, 앞서도 보았듯이 국제화훼박람회라는 합법적인 기회를 이용하여 도시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 개발에 문화예술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배후에는 ‘대형기획과 도시위상’이란 아시아 도시경쟁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타이베이 국제화훼박람회가 시작된 2010년은 타이베이뿐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 역시 국제적인 대형행사를 치렀던 해다. 상하이의 세계박람회는 물론 서울 또한 세계수도디자인박람회를 열었고, 하노이(Hanoi) 역시 ‘수도건설 천 년’을 경축하는 대형 축하행사를 시리즈로 개최했다. 이러한 아시아 도시들의 경쟁적인 대형행사 유치는 도시의 스펙터클한 경관을 창조하고 세계에 과시하여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국제적 자본을 유치하는 경제적 효과를 노리기도 하지만 최근의 추세로 보아 그보다는 도시, 특히 수도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바로 지역선거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다. 타이베이 시에서 발표한 국제화훼박람회 관련 보도자료만 살펴봐도 경제적 수요에 대한 언급보다는 ‘타이베이를 세계지도에 올려놓자’는 취지가 더 강조되고 있는데 이 배후에는 현 타이베이 시장의 연임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타이베이 국제화훼박람회 유치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 것이 서울이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서울에 대한 타이완의 보도를 보면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는데, 2002년 월드컵 길거리 응원 이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의 서울광장 조성계획 선거공약, 그리고 청계천 복원과 대통령 당선 등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특히 도심 빌딩지대와 인사동, 광화문 등 역사유적지를 가로지르는 청계천 복원은 새로운 도시문화의 창조라는 시각에서 유래 없는 성공으로 비추어졌고, 이러한 도시개발은 곧 서울시장의 정치적 성공으로 조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맥락에서 광화문광장의 조성이나 동대문 디자인광장의 건축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울의 대형공사 또한 보도되고 있다. 이를 참고한 대규모 국제화훼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대대적인 선전에 힘입어 타이베이 시장이 연임에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과 용산지역 개발안에서 불거진 영세상인과 주민철거 문제와 같이 이들 도시경관 개조와 대형공정이 많은 문제점을 남긴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국제화훼박람회 같은 정부주도의 대형기획은 개최 몇 년 전부터 국제적인 행사라는 명분을 이용해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대규모의 공공 공정을 시행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비록 문화예술을 도입한 새로운 도시공간 창조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해당도시의 역사를 배제하고 일반시민들의 생활맥락과 무관한 재개발에 그 목적을 두는 것이 사실이다. 타이완달러 123억한화기준 약 4,607억 원이 소요된 이번 타이베이 국제화훼박람회 역시 타이완의 원예기술, 생태관념, 문화예술과 녹색도시의 창조라는 세 가지 이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도시재개발과 이로 인해 얻게 될 정치적 타산이 놓여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지방자치와 정부주도의 개발논리가 아직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문화정치와 미학경제의 틀을 깰 수 없다면 적어도 더욱 다원화된 미학을 개발하고 일반시민들의 수요와 결합시키는 방식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타이베이 국제화훼박람회 역시 그래야만 아름다운 타이베이라는 구호에 걸맞은 시민들의 축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