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서바이벌 사건일지
발단 : 음악산업의 발전과 역량 있는 신인가수들을 발굴,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09년 엠넷에서 한국형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시작. 시즌 1에 이은 시즌 2가 케이블 역사상 기록적 시청률을 갱신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장르의 붐을 일으킴.
전개 :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의 위기를 겪던 MBC가 케이블에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흡수, 발전시킨 멘토 중심의 <위대한 탄생>을 시작, 갖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회를 거듭할수록 화제와 관심을 끌며 순항 중.
위기 : 마찬가지로 오랜만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주말 MBC 예능 프로그램의 침체기를 쉽게 회복하지 못했던 김영희 PD가 <일요일일요일밤에>를 전면
개편,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와 <신입사원>으로 심기일전했으나 <나가수> 서바이벌 과정에서 김건모의 탈락과 관련된 자충수로 네티즌의 심한 뭇매를 맞고 결국 김재철 사장에 의해 경질. 이어 김건모 눈물의 자진사퇴 후 프로그램 잠정 중단 결정. 심지어 <100분 토론>까지 ‘오디션 프로그램, 어떻게 볼 것인가’를 편성, 최근 늘어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 갑론을박!
절정 : KBS <도전자>, SBS <기적의 오디션>, tvN <코리아 갓 탤런트> 등 엄청난 상금을 건 음악분야 외의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등장. 심지어 정부 에너지 절약 캠페인조차 오디션 방식을 채용하는 등 대세를 넘어 과잉으로 넘어가는 즈음.
결말 : 서바이벌이 서바이벌을 하다?

권불 십 년
유재석, 강호동이 방송 3사의 연예대상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 지도 벌써 몇 년째. 그런데 드디어 2010년 이경규가 KBS 연예대상으로 그 관행을 깨뜨렸다. 이경규가 수상을 하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남자의 자격> 합창편.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합창단 단원을 뽑고 독창파트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껴안은 과도기적 형태였다. 적극적으로 예능의 변화를 감지하고 받아들인 것이 결국 과거의 인물 이경규로 하여금 유재석, 강호동의 투톱 신화를 무너뜨린 결과를 낳았고, 새로운 예능체제의 돌파구를 열게 한 것이다.
<무한도전>, <1박2일>로 대변되는 이들이 이끌고 간 것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예능적 기술’1이 뛰어난 출연자들이 실제보다 더 ‘리얼’하게 상황을 이끌어나가는 예능체제였다. 그에 앞서 한때는 신동엽 등 언변이 뛰어난 MC가 몇몇의 연예인을 데려다 말장난식 토크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이 대세인 때도 있었으나 유재석, 강호동의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활동에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의 성격을 나타내는 리얼이라는 말 자체가 함정이 되어 늘 ‘짜인 각본’이나 ‘조작’이라는 구설수에 시달리곤 해왔다. 권불 십 년이라 한때 시청률 40%를 넘기도 했던 강호동의 <1박2일>은 이제는 겨우 20%대를 유지하고 심지어 유재석은 방송 3사를 넘나들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20%대를 넘는 프로그램이 없어 조급하게 위기론이 등장하고 있는 지경이다.
막장 드라마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나 시청자들에게 극대화된 감동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가면 갈수록 더 리얼하고 좀 더 센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된다. 그러니 일반인을 데려다 ‘출연자의 인생 그 자체를 재료로’2 감동을 연출해내는 오디션 서바이벌은 이미 리얼인 척하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환풍기 수리공이 각고의 과정을 겪어내며 미국 명문대생을 제치고 1위의 영광을 얻는 <슈퍼스타 K2>나 인생의 갖은 굴곡을 겪은 김태원이 자신과 비슷한 제자들을 선택한 이른바 ‘김태원과 외인구단’식의 <위대한 탄생> 멘토 시스템에 시청자들은 채널을 고정하게 된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국민가수’ 김건모가 손을 떨며 노래 부르는 전율의 광경을 <나가수>가 아니면 또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우리가 남이가’의 확산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과 서바이벌 프로그램 사이에는 리얼을 차치하고도 결정적이고 질적인 차이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시청자의 참여여부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 참여특집을 제외하고는 그 결과를 놓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열폭(?)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일 수 있는 반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가 있다. 실제로 <슈퍼스타 K2>에서는 결과를 놓고 매회 논란이 일어났고, 이승철 등의 심사위원이 특정 참가자에게 매번 낮은 점수를 주었음에도 이미 팬덤(fandom)을 형성한 시청자들의 반발로 강승윤 등이 높은 단계에 이를 때까지 생존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가수>의 김건모 탈락논란도 마찬가지다. 방송현장에 초대되어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500명이지만 시청자 참여단을 마련한 순간 이미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도 투표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심정으로 시청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시청자들의 엄중한 선택에 대해 PD가 자의적으로 뒤집고 재도전을 시행하고 그에 대해 가수들이 얼싸안으며 분위기를 만들어갈 때 시청자들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우롱당한 듯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청자의 참여로 프로그램은 더더욱 조작이나 짜인 각본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틈 없이 한결 더 드라마틱해졌으며, <나가수>처럼 담당자가 제어할 수 없을 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 된다.
이러한 ‘참여’의 근저에는 여전히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조차 알아야하는 ‘우리가 남이가’ 식의 전근대적이고 공동체적인 사고가 잔존해 있다. 아니 보다 근원적으로는 무리 동물로서의 집단주의적 본능에 충실한 행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능적이든 전근대적이든 이러한 의식들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협소한 지역적 공간을 넘어 확장되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이집트나 리비아의 경우처럼 한 정권의 생명조차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일로에 놓여있는 중이다. 따라서 시청자 참여를 통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에 목매여 선뜻 따먹은 이 선악과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누구도 쉽사리 예측하기 힘들다. 

Reality killed the Video star3
이소라는 완벽주의로 소문난 가수다. 심지어 자신의 콘서트에서는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까닭으로 무대에 오르지 않았고, 관객들에게 돈을 돌려주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노래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서바이벌 무대에 올랐다. 이에 대해 ‘가수로서의 자존심’조영남을 운운하거나 ‘과도한 등수 놀음의 폐해’신해철, 심지어는 ‘신자유주의 폭력이 대중예술에까지 미친 폐해’진중권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주말 저녁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자리에 가수들이 ‘순수하고 절실한 욕망을 안고 부담을 견뎌내며’박정현  설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이다.
최근 SBS <김정은의 초콜릿>이 폐지되었다. 그 얼마 전에는 MBC <음악여행 라라라>가 폐지되었고, 오랜 전통을 지닌 <수요예술무대>는 케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음반수입도 예전 같지 않고 음원도 마찬가지다. ‘한 달 만 원 안팎의 정액제로 무제한 스트리밍이 가능한 세상이고 그나마도 유료가입자의 수가 과거 김건모 히트앨범 구입자의 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4 “내 새끼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다”는 김태원의 자조적 예능론에 절대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 소비자의 취향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이돌 투성이에 후크송 남발인 대중음악에 지친 사람들은 3단 고음을 지르며 청아한 목소리를 내뿜는 아이유를 대세로 만들고 <슈퍼스타 K2> 출연자들이 부른 이문세의 노래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 특집에 불과했던 ‘세시봉’이 음반매출에서 아이돌의 제왕 ‘동방신기’와 ‘빅뱅’을 누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른바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의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수모를 감수하고 <나가수>에 오른 가수들의 음원은 순식간에 1위를 차지했고, 그에 따른 엄청난 매출을 올렸으며, 오히려 이들이 기존 가수의 앞길을 막는다는 섣부른 진단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대중의 음악적 취향은 아이돌 시대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기존에 있던 음악 프로그램들을 폐지해버린 방송사들조차
<위대한 탄생>이나 <나가수>와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듣는 음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서바이벌이 최선입니까
미국의 방송계에서도 시청률 1위는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미국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와 흡사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까.
그간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들이 일본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것은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한계에 봉착하자 폴 포츠(Paul Potts)영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 등 외국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동영상들이 화제가 된 틈을 타 케이블 방송인 엠넷에서 <아메리칸 아이돌>을 ‘복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슈퍼스타 K2>가 붐을 조성하자 공중파인 MBC가 공중파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에도 ‘거침없이’ 그 포맷을 받아들였고, 약간의 각색을 거쳐 <위대한 탄생>을 등장시켰다. 뿐만 아니다. ‘양심 냉장고’ 등을 통해 MBC <일요일일요일밤에>를 이끌었던 김영희 PD가 선택한 것 역시 기존 가수들을 데려다 서바이벌을 시키는 <나가수>였다. 이는 마치 돈벌이가 된다면 구멍가게의 몫이었던 골목상권이라도 거침없이 파고드는 대기업의 SSM(super supermarket) 진출과도 너무나 흡사하다. 또한 <나가수>의 김건모, 이소라, 김제동의 경우처럼 여론의 뭇매를 고스란히 출연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모습은 손님을 끌기 위해 싼값에 물건을 내놓고 그 손해를 하청 중소기업들에게 떠넘기는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 이것이 대한민국 3대 고시 중 하나인 언론고시를 통과한 이들에게서 나온 작품인 것이다. PD들뿐만이 아니다. <슈퍼스타 K2>든 <나가수>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실시간으로 고스란히 중계하며, 그것을 ‘침소봉대’시키는 데 앞장선 것은 언론이었다. 오죽하면 네티즌의 말을 토씨 하나 빠짐없이 기사화시키는 기자들에게 네티즌들이 ‘기자질 참 쉽다’라는 댓글을 냉소적으로 달까. 대세라든가 대중의 취향이라든가 하는 것을 방패막이로 안일하게 혹은 적극적으로 너도 나도 서바이벌에 앞장서는 대한민국의 방송제작자들로 인해 결국 하반기에 이르면 각 방송사들은 각각 하나 이상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양산, 결국 프로그램 자체가 서바이벌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살벌한 시대의 산물인가
<나가수> 등의 논란이 거세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바이벌의 당위성을 현실에서 찾고 있다. 사회에 대한 불신, 불안, 그리고 절망이 그나마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5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끌어당긴다고도 하고, 삶이 서바이벌인데 노래순위와 서바이벌이 무엇이 다르냐며 서바이벌이 아니라면 과연 주말 저녁에 사람들이 가수들의 노래나 듣고 있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놀러와>의 세시봉 특집과 <나가수>의 경우가 보여주듯 반드시 극단의 선택만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유행이 지난 가수들을 불러 모아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음원과 음반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를 통해 세시봉이 레전드로서의 그들의 진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나가수>는 20년 된 국민가수조차 순식간에 ‘니가 뭔데’를 만들어 버리고 동료가수들을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라는 자괴감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나가수>가 대중에 회자된 것은 서바이벌 때문이 아니라 서바이벌이라는 긴장감을 딛고 무대에서 보여준 가수들의 순수한 열정이 감동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노래를 꼭 가수들을 벼랑으로 몰아세운 채 덜덜 떨면서 부르게 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이들을 자신의 콘서트에 세운 김태원처럼 경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아름답게 보여줄 수도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범람’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이즈음 그것이 아이돌의 후크송처럼 질릴 때까지 시청자들의 정서를 헤집는 막장극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진정 신인을 발굴하고 잊힌 노래들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인가는 결국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의 자세에 달려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지만 사람이든 꽃이든 꺾이고 나면 그 아름다움을 보존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1  정덕현, 「정덕현의 네모난 세상-우리 시대, 가수란 어떤 존재인가」, , 2011년 3월 29일자.
2  강명석, 「강명석의 100퍼센트-우리는 가수의 목숨을 원한다」, <10 아시아>, 2011년 3월 8일자.
3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의 노래 제목, 최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 강명석, 「강명석의 100퍼센트-‘나는 가수다’,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를 애도함」, <10 아시아>, 2011년 3월 29일자.
4  강명석, 같은 글.
5  하재근, <100분 토론>, MBC, 2011년 3월 31일 방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