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불멸의 목소리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의 노래에는 삶의 궤적이 있다. 거리의 가수에서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수가 되기까지 피아프의 삶은 어떤 영화나 연극보다 뜨거우며 드라마틱하다. 밑바닥에서 날개를 달고 비상하려는 순간 추락하며* 바닥에 짓이겨지려는 찰나 부활한다. 초반에는 레이몽 아소(Raymond Asso, 1901~1968) 등과 같은 조력자가 등장하지만 연인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 1916~1949)의 죽음 이후 피아프 스스로 날갯짓을 한다. 바로 노래를 부름으로써 삶의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에디트 피아프에게 사랑과 노래는 삶의 동의어다. 연인과 어떤 형태의 이별을 하더라도 노래는 그녀를 무대에 세운다. 그리고 피아프는 폭우를 견디는 장미처럼 악조건 속에서도 뜨거운 사랑을 한다. 피아프의 삶에서 사랑과 노래는 순수한 열정의 힘으로 피어나는 장미와도 같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노래’와 ‘사랑’은 에디트 피아프의 삶에 중요한 키워드를 차지한다. 충무아트홀에서 상연된 연극 <피아프(Piaf)> 역시 두 키워드를 비껴가지 않는다.
첫 장면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페르소나 최정원은 검은 옷을 입은 채 구부정한 모습으로 마이크 앞에 서 있다. 그녀는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1944)을 몇 소절 부르다가 쓰러지고 만다. 이후 무대에는 피아프가 거리의 가수생활을 하던 중 루이 르플레(Louis Leplee)를 만나 비상과 첫 번째 시련을 겪는 과거의 장면이 펼쳐진다. 피아프는 사랑에 빠졌을 때 노래를 남겼는데 이브 몽탕(Yves Montand, 1921~1991)과 연인이던 시절 부른 곡이 <장밋빛 인생>이다. 이브 몽탕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표현한 이 노래는 약물에 의지한 중년의 피아프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피아프의 삶을 들여다보면 장밋빛이 화려한 붉은색만을 뜻하지 않음을 알아챌 수 있다. 장미의 붉은 빛은 한편으로 삶의 생살이 찢기면서 튀어나오는 핏빛이기도 하다. 인생의 양면을 치열하게 경험한 피아프에게 어울리는 색이 바로 장밋빛이 아닐까. 장밋빛은 피아프의 삶을 관통하는 색이다. 중년의 피아프에게 <장밋빛 인생>이 어울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연극은 루이 르플레 피살사건 이후 마르셀 세르당의 연인 피아프를 조명한다. 마르셀이 퇴장한 후 시간적 순서로 앞에 배치되어야 할 이브 몽탕이 등장한다. 이처럼 연극 <피아프>는 실제사건을 재구성하고 배열하여 극이 전개되며, 무엇보다 노래 부르는 피아프의 모습을 강조한다. 장밋빛 인생을 부르다 쓰러지는 피아프,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피아프, 히트곡을 부르는 피아프. 그중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1949)는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을 사고로 잃은 후 피아프가 절실함으로 부른 노래다. 피아프는 마르셀의 사고 이후 영매술에 의지해서라도 죽은 연인을 만나길 바랐다. 루이 르플레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비상과 추락의 구조가 삶을 지배한다고도 여겼을 것이다. 그 우연이 피아프의 운명이라고 해도 피아프는 거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마르셀 세르당의 경우를 보더라도 에디트 피아프의 삶에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피아프는 비극을 비극으로 노래하지 않는다. ‘사랑의 찬가’라는 곡명에서도 알 수 있듯 상실의 아픔을 딛고 서서 사랑을 찬양한다.
죽기 전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피아프에게 사랑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에너지다. 피아프는 마지막 연인 테오 사라포(Theo Sarapo, 1936~1970)와도 <사랑이란 바로 그런 거지A Quoi Ca Sert I'amour>(1962)를 불렀다. 피아프의 삶에서 노래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사랑 없는 노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삶에서 붙들고 있었던 것이 바로 노래와 사랑이었다. 피아프는 열정을 다해 사랑했으며, 그 사랑의 힘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가수는 목숨이 다하더라도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한다고 생각했다. 약물에 의지해서라도 무대에서 열정을 다한 에디트 피아프.
연극은 최정원의 목소리로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Mon, Je Ne Regrette Rien>(1960)를 들려주며 절정과 끝을 보여준다. 실제로 피아프는 이 노래를 올림피아 극장에서 사력을 다해 부른 후 1963년 노래와 사랑으로 채워진 삶을 마감한다. 에디트 피아프는 20세기 세상을 떠났지만 삶의 궤적, 노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상하려는 순간 추락하지만 끝내 부활하는 것이 바로 영웅의 이야기다. 영웅은 시련을 이겨내고 비상하면서 신화로 남는다. 최근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나온 임재범에게 대중이 열광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연극 <피아프>에는 피아프가 남기고 간 ‘노래’가 있다. 마지막으로 피아프를 대신하는 최정원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이 연극만의 특별한 관람방법이 될 것이다.
* 에디트 피아프의 삶은 비상의 순간 추락하는 듯싶다가 다시 날아오르는 패턴을 보인다. 가수로서 이 패턴이 처음 적용되는 경우는 바로 루이 르플레 살인사건이다. 에디트는 자니스의 사장 루이 르플레의 눈에 띄어 거리의 가수에서 무대에 오르는 가수가 된다. 루이 르플레는 에디트에게 피아프(참새)란 이름을 지어주며, 검은 옷을 입게 하는 등 초기 피아프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루이 르플레가 피살되면서 피아프는 시련을 겪는다. 이때 시인 레이몽 아소가 새 조력자로 등장한다. 연극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피아프에게 예술가와 동료로서 영혼의 동반자 역할을 해 준 사람이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다. 장 콕토는 피아프가 초반 미국공연 실패, 약물중독과 심신쇠약 등으로 힘들어할 때마다 조언을 해주었다. 특히 피아프 사망 후 바로 장 콕토가 운명을 달리하면서 두 사람은 영혼의 동반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