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대중문화계는 때 아닌 복고열풍에 휘말려 들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더니 21세기의 첨단을 달리는 대중문화에도 아날로그적 복고의 낭만은 살아있었던 것일까. 2000년대 들어 가요계를 주름잡던 아이돌 열풍에 마치 대항이라도 하듯 2010년 한국의 가요계는 ‘포크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쎄시봉’을 시작으로 아이돌에 대한 반격의 발판을 다졌다. 또한 이렇게 시작된 변화는 가요계의 현상으로만 그치지 않는 양상이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복고에 대한 향수를 전면에 앞세운 영화 <써니>는 440만2011년 6월 10일 기준 관객을 동원하며 <과속스캔들>(2008)에 이은 강형철 감독의 영민한 대중영화 연출감각을 증명해내고 있다.
영화 <써니>는 대중영화로서 그리고 복고감각을 충실히 이행한 영화로서 손색이 없는 듯 보인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살아오던 나미유호정 분는 어느 날 친정엄마의 병실에 들렀다가 고등학교 시절 절친했던 동창 춘화진희경 분를 만나고 곧 그녀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말기 암환자임을 알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춘화의 바람대로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써니’의 멤버들을 찾아 나서게 되고 이 과정에서 회상하는 그녀들의 1980년대는 흥미롭고 가볍게 그려진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사는 친구를 위해 지난 추억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 시절의 향수에 관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민주화 과정 속에서 하루하루가 위태롭던 1980년대의 일상 속에서도 영화 <써니>가 회상해 내는 과거는 결코 어둡지 않은 형태로 표현된다. 이 시절을 사는 여고생들은 심야 라디오 방송에 열광하고 앞으로 펼쳐질 핑크빛 미래에 대한 부푼 꿈에 가득 차 있다. 세력싸움 혹은 기싸움에 불과할 인근 학교 여고생들과의 패싸움조차도 영화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귀여운 에피소드일 뿐이다. 1980년대의 어두운 정치·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환경을 온전히 배제한 채 흘러가는 듯 보이는 이 영화는, 흥미롭게도 어느 순간 도저히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을 기이하게 마주한다.
영화 <써니>는 1980년대와 2000년대에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삶의 방식이 현실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이들이 처한 각기 다른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1980년대와 2000년대의 사람들의 삶을 지배한 것이 어떠한 것인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1980년대로 대표되는 고등학교 시절 써니의 모습은 폭력과 뗄 수 없다. 일종의 ‘폭력서클’처럼 보이는 이들의 모임은 종종 경쟁상대인 ‘소녀시대’와의 패싸움으로 연결되고 서로의 신경을 거스르는 이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있었던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현장에서 벌어진 써니와 소녀시대의 패싸움은 이 시절을 지배하는 것이 (이유에 상관없이)폭력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렇게 1980년대 사람들을 지배했던 것은 폭력이었고, 이는 곧 상대가 가진 힘(폭력 혹은 권력)에 대한 공포였다. 영화는 1980년대를 그려냄에 있어 그저 평범했을 뿐인 그녀들의 인생에도 ‘폭력’이라는 힘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써니’들을 지배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돈’이다. 나미는 잃어버린 자신의 인생을 남편이 주는 돈과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이 주는 틀 안에서 보상받고, 춘화는 성공한    사업가로 다시 친구들 앞에 나타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한다. 이처럼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폭력을 통해 입은 피해(수지의 부상)를 시작으로 잃어간 이들의 꿈은 성공한        한 친구의 죽음과 그녀가 남긴 막대한 돈을 통해 해결된다.
두 시대에 속했던 그녀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삶의 해결방식은 이것이 결국 각 시대의 사람들을 가장 크게 지배했던(혹은 하는) 것이 ‘폭력’과 ‘자본’이었음을 상기시킨다. 1980년대의 사람들을 억눌렀던 것은 상대가 가진 힘에 대한 두려움과 폭력이었으며, 2000년대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자본이다. 이처럼 영화 <써니>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등장인물들을 지배하는 가장 큰 두 가지의 가치가 결국 영화 밖 우리의 현실 또한 지배하고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사회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갈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낭만주의는 발전한다. 1980년대 험난했던 시절 극단적인 낭만을 보여줬던 포크음악이 다시 2000년대의 현실로 내려앉은 것은 또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시절 우리를 두렵게 했던 폭력이 이제는 ‘돈’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를 또 다른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어떠한 증명은 아닐까. 흘러간 문화와 복고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비단 추억뿐만이 아니다. 과거 우리를 위로했던 정서가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현실이 또 다시 나타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써니>는 그렇게 과거의 낭만과 미래의 꿈을 말간 얼굴로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두려워했고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임을 감추고 있다. 또한 그들의 새로 시작할 인생과 핑크빛 꿈들이 춘화가 애써 일궈온 삶과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거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결코 귀여운 ‘복고영화’일 수 없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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