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공연예술로서 연극이 성립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연극이론, 공연분석의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는 극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서 극의 외부에 있는 존재라는 관객의 독특한 위치에서 기인한다. 배우와 관객은 극장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사실 그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제4의 벽’이 존재한다. 그 벽을 통해 관객은 현실과 단절된 순수한 허구의 세계(라는 유토피아)를 상상한다. 하지만 허구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고 또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기에 현실과 단절된 허구의 세계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순수한 허구란 환상으로서 존재해왔을 뿐이지만 그 환상 속에서 관객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많은 연극들이 관객에게 그런 편안함을 제공하고자 애쓴다.
그러면 왜 관객은 허구(라는 환상)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가? 원래 본다는 것은 행위의 대체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행위다. 무엇인가를 봄으로써 우리는 보고 있는 자신뿐 아니라 보는 대상에게도 영향을 주고 변화를 유발한다. 그러므로 시선에도 윤리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현실과 단절된 허구라는 환상 속에서 관객은 그러한 행위의 책임을 외면한 채 무대를 향해 편안히 관음증적인 시선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시선은 대상을 향한 일종의 폭력이며, 대상을 단순히 소비해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퇴행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이러한 연극과 관객사이의 암묵적 합의를 폭로하고 깨트리기 위한 시도들이 1960년대 이후로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리고 연극 <디 오써(The Author)>는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 시도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디 오써>에서 ‘작가’와 ‘남자배우’, ‘여자배우’, 그리고 ‘관객’ 역의 네 명의 배우는 관객 사이사이에 앉아 있다. 반으로 나뉘어 서로를 마주 보도록 되어 있는 관객석이 무대의 역할을 겸한다. 허구와 진실을 가르는 ‘제4의 벽’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로, 배우와 관객의 구분이 사라진 채로 연극은 진행된다. ‘관객’은 연극과 관객간의 은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 이야기하는 반면, 배우들은 허구로서의 연극이 그들의 현실을 어떻게 잠식해 들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들은 ‘관객’이 나누어준 초콜릿을 먹으면서 은밀한 공범자가 되어 늘 해왔던 것처럼 배우들의 혼란과 고통을 훔쳐보려 하지만 앞과 옆, 어느 쪽을 보아도 허구(배우)와 현실(관객)을 동시에 봐야 하는 시선이 낯설고 불편하다. 배우들은 바로 옆 혹은 맞은편에 앉은 관객에게 중간 중간 말을 거는데 배우와 관객이 대화를 나누는 순간 이미 배우와 관객을 구분하는 경계는 형태만 남게 된다. 이러한 연출은 우리 역시 우리의 삶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일종의 배우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캉(J. Lacan, 1901~1981)에 의하면 개인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해진 자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역할의 이상적인 상(ego-ideal)에 자신을 동일시(identification)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직장인이 과장으로 승진한다면 그는 그 순간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과장의 상에 따라 과장의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하는 한편 부인에게는 남편의 역할을, 아이 앞에서는 아버지의 역할을 연기한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남들 앞에서 쿨한 척, 강한 척, 도도한 척 이상적인 자신의 이미지에 맞춰 연기를 하지 않던가. 즉 우리 안에 배우가 있고 배우는 곧 우리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가 훔쳐보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우리가 소비하고 있던 것은 우리의 현실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선뜻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의 불완전한 모방을 통해 현실의 갈등과 고통을 비롯한 균열들을 단순화하고 우리가 견딜 수 있는 형태로 치환함으로써 위안을 얻길 원한다. 시선의 윤리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대상을 소비하기를 원한다. 배우들이 관객에게 말을 건넬 때 그에 선뜻 대답하는 것이 곤란한 것은 그것이 은밀한 합의를 깨트리는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 오써>는 관객을 그 이상으로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관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것이나,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 등은 극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아니라 허구와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자신들의 수동적인 태도를 관객이 자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에 가깝다. 어쨌거나 불편함 속에서도 극은 진행되고 배우는 연기를 하고 있으며, 서사는 지속된다. 섞여 앉아 있어도 누가 배우고 관객인지는 웬만큼 티가 난다. <디 오써>는 은밀한 합의를 완전히 깨트리려 하거나, 그것이 깨어진 이후를 생각하고자 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 이전에 대체된 상징으로 메워진 현실의 균열을 드러내고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린다면 우리는 과연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를 회의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만한 태도로 허구와 현실의 벽을 허물려 했던 작가 역시, 허구가 주는 위안을 욕망하고 성적욕구를 위해 허구(아기의 이미지)를 소비해버리는 것처럼 결국 그럼에도 우리는 위안을 필요로 하고 환상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작가의 자살은 그 시도들의 불가능에 대한 절망적인 토로다. 즉 <디 오써>는 연극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 연극은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에서 선택을 권하는 모피어스와도 같다. 초콜릿처럼 달콤한 환상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절망적인 것을 알면서도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발을 디딜 것인가를 묻는다. 그런데 다만 이 모피어스는 네오를 믿지 않는다.

이미지 제공_ 두산아트센터